‘군살빼기’ 들어간 지상파, 그런데 콘텐츠는요?
‘군살빼기’ 들어간 지상파, 그런데 콘텐츠는요?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8.12.13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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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난 타개 위한 대대적 조직 개편…기존 문법 탈피 방안 안 보여
MBC는 연말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함께 단계별 명예퇴직을 예고했다. 사진은 최승호 사장. 
MBC는 연말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함께 단계별 명예퇴직을 예고했다. 사진은 최승호 사장. 뉴시스

[더피알=문용필 기자] 미디어 환경 변화로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해 있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조직개편’ 카드를 꺼내들며 돌파구를 찾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경쟁력 강화의 핵심인 콘텐츠 품질을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남는다.

시작은 SBS였다. 사장 직속이었던 아나운서팀이 편성실로 복귀하고 미디어비즈니스센터 산하에 콘텐츠사업팀을 새로 만들었다. 보도국의 경우에는 탐사보도와 정치, 경제, 사회부 에디터를 신설하고 각 에디터 산하에 관련 팀을 두는 방식으로 조직을 개편했다.

MBC가 선택한 변화의 폭은 훨씬 컸다. 우선 기존 ‘9본부 24국 9센터 109부’ 조직체계를 ‘9본부 21국 11센터 96부’로 개편했다. 

또한, 지난 2015년 퇴사한 김영희 전 예능본부장을 재 영입해 콘텐츠 총괄부사장으로 임명해 드라마와 예능 등 전반적인 프로그램 제작을 총괄하도록 했다. 기존 OTT 클립사업팀은 디지털랩으로 확대 개편하고 보도본부산하 뉴미디어뉴스국이 보도국 산하로 이동하는 등 디지털 역량 강화에도 나섰다. ▷관련기사: MBC ‘뉴스 실험’ 위축되나

본격적인 인원감축에도 들어갔다. MBC는 오는 18일까지 명예퇴직 신청을 받는다고 사내게시판을 통해 공고했다. 대상은 입사 1년 이상(만 59세 미만) 일반직, 전문직 직원이다. 이번 명예퇴직은 올해 말과 내년 2월, 4월 등 3차례에 걸쳐서 실시된다.

앞서 최승호 사장은 사내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고통스럽더라도 이제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며 “지속해서 몸집을 줄이고 효율화하는 노력을 하겠다”고 명예퇴직 시행을 예고한 바 있다.

시청률 하락과 광고 이탈로 경영난에 처한 지상파 3사가 조직개편을 통해 군살빼기에 나섰다. 하지만 돌아선 시청자를 돌려세우는 콘텐츠 혁신 방안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시청률 하락과 광고 이탈로 경영난에 처한 지상파 3사가 조직개편을 통해 군살빼기에 나섰다. 하지만 돌아선 시청자를 돌려세우는 콘텐츠 혁신 방안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경영 효율성 강화와 업무생산성 제고라는 조직개편의 기본 원칙과 맞닿아있다. 특히, MBC의 경우에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는 경영악화를 타개하기 위한 조직 슬림화 시도로 받아들여진다.

다만, 지상과제로 삼아야 할 콘텐츠 강화와는 다소 동떨어진 조직개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종편과 CJ ENM등 비(非)지상파 강자들이 신선한 포맷의 프로그램으로 채널 영향력을 잠식하고 있는데다, 이로 인해 광고수익 마저 가져가는 상황에서 지상파가 정작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고 있다는 비판이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지상파의) 현재 노력은 (콘텐츠 강화와) 연결 짓기 어렵다. 물론 (조직의) 규모를 줄이는 건 필요하지만 콘텐츠 경쟁력 확보는 별개로 진행돼야 한다”며 “단순히 조직을 슬림화 하는 정도로 끝난다면 약간의 경제적 이익은 될지 몰라도 근본적인 콘텐츠 강화에 직접적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윤직 오리콤 IMC미디어본부장도 조직개편이 콘텐츠 역량 강화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시스템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팀 명칭이 바뀐 것 정도 외에는 (크게) 보이는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하지만 인력이 줄게 되면 콘텐츠 투자도 약해지고 경쟁력이 오히려 약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맥락에서 아직 조직개편안을 발표하지 않은 KBS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양승동 사장은 12일 취임식에서 “조직과 인력, 재원을 콘텐츠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며 “뛰어난 콘텐츠가 제작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이 집중되는 민첩하고 역동적인 조직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나타냈다. KBS는 내년 상반기 중 전사적 조직개편을 단행할 예정이다.

방송문법 바꿔야 하는 지상파, ‘외부수혈’ 고려해야

지상파 콘텐츠 경쟁력의 바로미터인 시청률은 해가 갈수록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다. 미디어오늘이 닐슨코리아에 의뢰해 지난 2000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프라임타임(오후 7시~11시) 수도권 시청률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MBC는 2000년 18.2%에서 2010년에는 11.22%로, 올 상반기에는 5.9%까지 감소했다. 반토막 정도가 아니라 3분의 1수준까지 떨어진 셈이다.

MBC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지상파도 시청률 하락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KBS 2TV는 같은기간 11.26%에서 9.16%로 시청률이 감소했으며 SBS는 15.08%에서 8.29%로 내려앉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광고주들의 관심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017년도 방송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3년 2조 6565억원이었던 지상파 광고 매출액은 2016년 1조 6228억원으로 1조원 가량 감소했다.

최근 도입이 기정사실화된 지상파 중간광고가 어느 정도 숨통을 틔어줄 수는 있지만 이 마저도 매출에 큰 도움이 안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상파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법은 콘텐츠 경쟁력 강화밖에는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관련기사: 지상파 중간광고 기정사실화…광고 시장에 어떤 영향?

지상파 3사 역시 이를 모를 리 없다. 콘텐츠 강화를 위한 묘수들을 고민하고 있다. SBS는 현재 드라마본부 분사를 진행 중이다. CJ ENM의 ‘스튜디오 드래곤’과 비슷한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

MBC 관계자는 “신규 포맷을 계속 개발하면서 내년도에도 새로운 프로그램을 내놓을 생각”이라며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희 부사장을 영입한 것도 콘텐츠 경쟁력 강화와 무관치 않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방송계에서는 MBC가 젊은 PD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부여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KBS의 경우에는 ‘VJ특공대’ ‘콘서트 7080’ 등 중‧장년층이 즐겨보는 장수프로그램들을 잇따라 폐지했다. 양승동 사장이 강조한 ‘젊은 KBS 만들기 위한 세대교체’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지상파의 콘텐츠 품질 강화를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양윤직 본부장은 “기존 (지상파의) 질서나 문법, 편성조차도 다 바뀌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외부의 힘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든 뭐든 외부네트워크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존 자산에서만 수익을 내려고 하면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양 본부장은 “프로스포츠에 용병제도가 도입돼 시장을 바꾼 것처럼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다른 아이디어로, 다른 콘텐츠를 만들어왔던 인물을 영입해 기존 질서와 믹스해야 한다”며 “선수들이 그대로 인데 전술만 바뀐다고 과연 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서는 지상파 내부에 팽배한 이른바 ‘순혈주의’ ‘공채부심’을 탈피할 필요가 있다. 방송계 한 관계자는 천적인 메기를 연못에 풀면 미꾸라지들이 더욱 활력을 찾는다는 이른바 ‘메기이론’을 언급하면서 “(지상파 내부에서는) 외부 인력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내부에서는 잘 모른다. 월급은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지표를 보는 경영진들만 심각성을 안다. 그게 (지상파의) 현실”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최진봉 교수도 비슷한 점을 지적했다. 최 교수는 지상파 콘텐츠 영향력이 하락한 이유에 대해 “지상파 인력들의 창의성과 위기감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케이블 방송은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시청자들의 취향과 트렌드를 분석해서 거기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는데 그 사이에 지상파는 아무 대책이 없었다”고 일침했다.

또한 “최근 보면 대체적으로 (케이블 포맷을) 따라하는 경향이 있다. 음악프로그램 같은 경우가 그렇다. 트렌드를 선도하는 부분에서 뒤떨어진다”며 콘텐츠 차별화 문제를 꼬집었다.

KBS PD 출신인 이상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교수는 다른 각도에서 지상파의 콘텐츠 차별화를 언급했다. 이 교수는 “보편적 가치를 담은 고품질의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심층탐사나 토론 프로그램이 그렇다. 글로벌한 가치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브랜드 가치를 확고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교수는 지상파의 콘텐츠 경쟁력 강화는 단순히 콘텐츠를 잘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는 “JTBC의 경우에는 저널리즘 신뢰도가 올라가니 콘텐츠 경쟁력도 따라 상승하는 경우”라며 “그런데 KBS나 MBC는 신뢰도가 회복되지 않으니 다른 콘텐츠도 시너지 효과를 못 거두는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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