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미꾸라지’ ‘DNA’…청와대식 은유가 점점 부담스러워진다
‘첫눈’ ‘미꾸라지’ ‘DNA’…청와대식 은유가 점점 부담스러워진다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8.12.20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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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청와대 입’들의 불필요한 비유·표현, 말이 말을 낳으며 상황 악화시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뉴시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뉴시스

[더피알=문용필 기자] 특정 사안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릴 때 유념해야 할 룰이 있다. 쓸데없이 감정적인 표현을 쓰거나 ‘우린 절대 안 그래’ 식으로 맹목적인 방어태세를 취한다면 오히려 설득이 안 된다는 점이다. 때로 역공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애들 동네싸움에서도 작동하는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원리다.

이런 관점에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18일 브리핑은 설득과는 거리가 멀다. 이날 김 대변인은 청와대 민간인 사찰 의혹 관련 언론보도를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브리핑 말미에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김 대변인 입장에서는 청와대의 결백을 강조하려 했는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사족이 돼버렸다. 낮은 자세로 소통해야 할 사안임에도 오히려 오만하게 비쳐졌다. ‘요건에 비춰봅시다’ ‘뒤집어 생각해봅시다’ ‘납득이 되는지요’ 등 통상적인 대변인 논평에서는 잘 쓰지 않는 표현들도 등장했다. 격앙된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대목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지난 15일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온통 흐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의혹을 촉발시킨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는 발언이다.

하지만 ‘청와대 입’들의 거친 표현은 오히려 여론 악화를 부추긴 꼴이 됐다. 당장 보수 언론과 야당에서는 김 대변인과 윤 수석의 언사를 비꼬거나 비판하는 사설과 논평이 이어졌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청와대 홍보라인 두 축의 감정 섞인 비유가 논란만 키운 셈이다.

정말 아무 문제가 없다면 팩트에 기반한 논리적 반박을 하면 될 일이었다. 게다가 민간인 사찰 의혹은 사실 여부를 떠나 국민들에게 민감하게 다가오는 사안이다. 감정보다는 팩트에 기반한 정제된 언어가 필요했음은 더할 나위가 없다.

청와대식 은유가 논란을 키웠던 케이스는 또 있다. 탁현민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사의를 표명하자 임종석 비서실장은 “첫눈이 오면 놓아주겠다”는 말로 만류했다. 이 발언은 김의겸 대변인에 의해 공개됐다. 탁 행정관은 과거 저서로 인해 여성비하 표현 논란에 휩싸인 인물이다.

남북정상회담 등 굵직굵직한 국가이벤트에서 남다른 역량을 발휘했던 탁 행정관이기에 임 실장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간절함을 은유한 표현이겠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첫 눈이 내리자 약속을 지키라는 야당의 요구가 쏟아졌다. 임 실장은 결국 국정감사에서 ‘첫눈 발언’을 해명해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0일 취임사에서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낮은 자세로 일하겠다.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감정을 앞세운 불필요한 수사나 비유는 소통의 본질과도, 국민 눈높이와도 맞지 않다. 최고권력기관인 청와대의 소통에는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정확함과 겸허함이 뒤따라야 한다. 과연 청와대 커뮤니케이션의 DNA는 어떤 구조로 형성돼 있는지 묻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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