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박형재 기자] 기업이 첨예하게 맞서는 사회 이슈를 커뮤니케이션 활동에 녹여내려면 매우 신중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설득력이 떨어지면 대중들의 반발을 사고, 기획 의도마저 상업적으로 의심받기 때문이다. 게이머들 사이에서 불거진 ‘오버워치 솔저76 커밍아웃’ 논란은 이런 면에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온라인 FPS(1인칭 슈팅 게임) 오버워치는 최근 공개한 바스테트(게임 세계관을 담은 스토리북)를 통해 메인 캐릭터 솔저76이 사실은 게이였다고 밝혔다. 빈센트라는 연인이 있었으나 오버워치(게임 속 무력단체)를 위해 헤어져야 했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를 접한 상당수 유저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버워치가 론칭한 뒤 3년여 동안 솔저76이 성소수자라는 힌트가 전혀 없어 억지스럽다는 의견이 많다. 솔저76은 월등한 신체 능력을 가진 군인이자 영웅으로 그려지며, 초보자 입문용으로 자주 사용하는 인기 캐릭터라는 점에서 충격이 더 컸다.
라인하르트** 뜬금없는 설정… 복선이나 뭐 그런거 하나도 없이 ㅋㅋ 어거지다 진짜.
War** 스토리 진행도가 거지같음. 진행해야될 스토리들과 오픈되는 캐릭터 설정은 별 상관없음을 넘어 거의 몰입 방해 수준임
@lokit** 솔저가 게이라는 설정으로 인해 이제 오버워치 월드에서는 ‘오로지 정의와 원칙을 생각해서 스스로를 희생시키고 어둠에서 암약하는 수퍼솔저’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퍼스널 컬러를 지니고 미 독립정신을 담은 캐릭터’가 게이가 되었다.
ㅇ** 옵치는 게임을 홍보해야하는데 PC를 홍보하는 주객이 전도된 느낌
오버워치는 영웅 29명이 등장하는 팀 기반 FPS 게임이다. 각각의 캐릭터가 보유한 스킬을 활용해 서로 돕고 전투에 승리하는 것이 목적이다.
특히 연령과 성별, 국적, 인종을 불문하고 다양한 캐릭터가 출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통통한 몸매에 노출 없는 털옷을 껴입은 중국인 모험가 메이, 키 작은 남성 노인 캐릭터 토르비욘,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시메트라, 레즈비언으로 밝혀진 트레이서 등이다. 잘생기고 예쁜 주인공 위주로 돌아가던 게임판에 이런 설정은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이는 블리자드의 기업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오버워치 개발을 총괄하는 제프 카플란 디렉터는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다양성’을 강조해왔다. 관용적인 세계관을 만들고 각 캐릭터마다 다양한 정체성을 부여해 매력적인 상(像)을 탄생시키겠다는 것이다.
블리자드 관계자 역시 더피알과의 통화에서 “오버워치는 개발 초기부터 게임 내에서 영웅들의 성별, 인종, 나이 등 다양성을 유지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솔저76의 커밍아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의도된 설정으로 보인다.
문제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접근 방식이 정교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오버워치는 유저들의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 각 캐릭터에 따른 스토리를 꾸준히 공개하는데, 이들 캐릭터가 겪는 갈등은 메인 시나리오와 나름의 개연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솔저76은 특별한 연결점이 없어 성소수자를 불편한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오버워치가 성소수자를 ‘소비’하는 행태가 정치적이란 지적도 나온다. 성소수자 친목 카페인 ‘LGBTQ 너랑나랑’에 올라온 게시물에는 “스토리와 관련 있는 것도 아니고 뜬금없는 설정은 ‘우리 게임이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선언으로 밖에 안 보인다”,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를 ‘일종의 트렌디한 요소’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우리를 특별하게 여기지 말고 있는 그대로 존중해줬으면 한다”, “성소수자분들 더 욕먹겠네. 게임에서마저...” 등의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게임업계에서 성소수자 논란은 과거에도 있었다. 라이엇게임즈의 리그오브레전드(LOL, 롤)는 2017년 12월 바루스 챔피언에 관한 설정을 변경하며 무리하게 동성애 요소를 집어넣어 반발을 샀다.
기존의 바루스는 의무와 가족 중 의무를 선택하고 가족을 잃어 복수를 위해 스스로 타락하는 비극적인 스토리를 가진 챔피언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설정에서는 바루스가 동성애자(발마와 카이)와 다르킨 종족의 영혼이 하나로 합쳐져 탄생했다는 이야기로 바뀌어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반면, 성소수자를 스토리에 넣으면서도 무리 없이 받아들여진 사례도 있다. 매스이펙트 안드로메다는 주인공의 성적 취향을 플레이어가 결정할 수 있도록 열어뒀고, 심즈의 경우 동성 간 결혼을 가능하도록 했음에도 논란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방향성을 간접적으로 드러냈을 뿐, 마케팅 요소로 전면에 내세우거나 특별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대적 시각이 분명한 정치·사회 이슈 관련 기업이 메시지를 내놓을 땐 훨씬 더 신중해야 한다. 솔저76 사례처럼 개연성이 떨어지면 역풍을 맞거나 괜한 노이즈 마케팅으로 해석될 수 있다.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평등을 강조한다면서 한쪽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특별취급하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는 온라인 커뮤니티 댓글은 인상적이다.
국내에서도 젠더나 난민, 성소수자, 다문화 등 관련해 차별적 시선과 담론이 정치·사회 이슈로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만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송동현 밍글스푼 대표는 “브랜드라는 게 사람들에게 각인된 것인데, 갑자기 새로운 이야기가 튀어나오면 내가 쌓아온 이미지와 충돌하면서 뜬금없다고 느껴질 수 있다. 특히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인식차에 대해 분노하고, 심할 경우 위기로 비화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업의 메시지는 그것이 순수한 의도에서 비롯됐을지라도 마케팅과 결부돼 오해를 살 수 있다”며 “오랫동안 꾸준히 같은 목소리를 내서 진정성을 어필할 것이 아니라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예민하게 누군데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