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커피집 사장을 만나보니 브랜딩의 의미를 알겠다
종로커피집 사장을 만나보니 브랜딩의 의미를 알겠다
  •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9.01.31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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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커피에 인문학 담는 김경민 오제도 대표
서울 종로 5가에 위치한 오제도 카페 내부. 사진=이윤주 기자

[더피알=이윤주 기자] 사무실 근처에 못 보던 카페가 생겼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이층집이 변신한 터라 절로 시선이 갔다. ‘시간을 되돌리는 문’이라고 적힌 철문을 열자 오래된 집 골격이 한눈에 보였다. 증조할머니댁에나 있을 법한 소품과 테이블 그리고 주인이 유학 시절 찍었다는 흑백사진이 가득하다.

종로5가다운(?) 옛 냄새가 그득하면서도 젊은층이 좋아할 만한 요소요소가 잘 어우러졌다. 한 마디로 레트로가 뭔지를 아는 카페다. 

“이런 브랜딩은 어떻게 하나요?”

감각이 남다르다고 생각했던 사장님의 이력은 꽤 독특했다. 글로벌 컨설턴시를 거쳐 정치권에 살짝 발을 담궜다가 지금은 차(茶)와 함께 하는 문화공간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김경민(32) 오제도 대표가 들려주는 스토리에는 인문학과 커피 그리고 브랜딩이 담겨 있었다.

김경민 오제도 대표. 사진=이윤주 기자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펼치자 자연스레 그가 먼저 대화를 시작했다) 제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초등학교 이후 유학길에 올랐어요. 대학은 미국에서 나왔고요. 할 줄 아는 게 공부밖에 없었어요. 제일 쉽잖아요. 공부만큼 럭셔리한 사치가 있을까요. 전 교수가 될 줄 알았어요. 학부 시절 논문을 여러 편 썼거든요. 그런데 기자님, 대학 논문을 몇 명이나 읽을 것 같으세요? 평균 데이터에 의하면 한 명도 안 돼요.

담당 교수님 한 분..?

그렇죠. 학문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나 혼자 노는 건가? 사회에 변화를 줄 수 없으면 논문을 써서 뭐하나 싶더라고요. 한국에 들어와서 첫 번째이자 마지막 직장은 경영 컨설턴트였어요. 아, 국회의원 보좌직 일도 살짝 했구나.

그런데 회사를 못 다니겠더라고요. 한국사회에서 성공하는 방법이 정해져 있더라고요. 우선 대한민국 프리미엄 대학을 나와야 해요. 그리고 유학을 다녀와요. 이게 트랙이에요. 저처럼 외국에만 쭉 살다가 오면 자리가 없어요.

두 번째는 담배를 피워야 해요. 회의가 시작돼요. ‘의견 내놔봐’ 해도 아무도 얘기를 안 해요. 담배나 한 대 피우고 오자며 나갔다 와요. 다시 들어오면 사안이 결정돼 있어요. 제가 도저히 적응하기 힘든 조직사회였어요. 한 달 백만 원만 벌어도 좋으니,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내 사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지금 이 공간만 보면 전혀 상상이 안 되는 일들을 하셨네요. 원래 커피를 좋아하셨어요?

기자를 위해 내어준 베이커리와 커피. 사진=이윤주 기자

(잠시 회상하더니) 유학 생활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게 좋은 선생님을 많이 만났던 거예요. 인문적인 토론을 많이 했는데 거기엔 항상 커피가 있었어요. 고등학생 시절, 좋아하는 이태리계 문학 선생님이 계셨어요. 주말이면 테라스에 앉아있는데, 손에는 항상 담배와 커피가 들려 있었죠. 그걸 보면서 대학에 가면 저걸 꼭 해야겠다고 했는데.. 담배는 저와 안 맞더라고요.(웃음)

커피는 달달한 카푸치노와 라테부터 마시기 시작했어요. 이후 에스프레소와 드립 커피로, 본연의 커피 맛을 찾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좋은 에스프레소를 마시기 어려워요. (커피 상식과 연대기에 대해 오랫동안 설명을 했다) 전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사람이고 커피는 마셔야겠고…. 그렇게 29살이 되던 2016년, 익선동 ‘아마츄어작업실’ 첫 삽을 떴어요. 전 돈을 벌면 책을 사서 읽거나 커피를 배우면서 도구를 모았거든요.

당시 욕도 많이 먹었죠. ‘유학 다녀와서 그 좋은 직장 때려치우고 뭐 하는 짓이냐’, ‘동네 카페나 하려고 하냐’고요. 저는 그게 아니다, 무슨 뜻이 있어서 하는 거다, 어떻게 하는지 보라고 했죠. 전 인문학도니까 이 공간에 식음료와 인문학을 융합시켜서 어떻게 손님에게 팔지 고민했어요. 그렇게 기업 철학이 ‘인문학을 팝니다’가 됐죠.

김 대표가 찍은 흑백 사진이 걸려 있다. 사진=이윤주 기자

인문학을 판다는 게 추상적이에요.

추상적인 게 아니에요. 제가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예를 들 순 있어요.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잔 지식이 있거든요.(웃음)

예를 들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의미 있게 읽었는데 그가 커피를 좋아했대요. 전 자료 찾는 건 도사잖아요? 찾아보니 ‘크리스털 마운틴’이라는 커피래요. 연관돼서 체 게바라도 그 커피를 굉장히 좋아했대요. 크리스털 마운틴은 쿠바 원두로 커피(체리)가 나오는 밭이에요. 쿠바의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열매가 빛나는 데 그게 크리스털 같다고 만들어진 말이예요.

반고흐는 비싼 커피를 좋아했어요. 세계 3대 커피 중 ‘예멘 모카 마타리’라는 커피에요. 그럼 그와 친한 폴 고갱은 뭘 마셨을까요?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이어져요. (김 대표의 커피 네이밍은 독특하다. 익선동, 가배, 흑심, 내일이휴일이라면, 반 고흐커피, 헤밍웨이커피, 황실 커피, 신의 커피 등 드립커피로 이뤄져 있다)

우리는 이러한 스토리텔링을 찾아가요. 전 그게 인문학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을 중심에 두고 찾아가는 거죠. 인간적이고 인문학 냄새 풀풀 나는 커피를 판매하고 싶어요. 그래서 가능한 기계에 의존하지 않으려 해요. 로스팅도 가장 원초적인 방식인 통돌이를 가져다 놓고 손으로 볶아요.(웃음)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바리스타 직원. 사진=이윤주 기자

당시만 해도 익선동이 지금처럼 뜨지 않았을 때죠? 그 후에 종로5가를 택하셨고요. 

‘아마츄어작업실’은 익선동에 들어선 첫 번째 카페에요. 10년간 빈집이었죠. 익선동은 서민 한옥타운이었어요. 그때는 아무것도 없고 원주민(?)만 살고 있었어요. 커피 가격이 8000원이었는데 제가 지나가면 주변 상인들이 “저기 8000원 커피 지나간다”고 했어요.(웃음) 외딴섬 같았대요. 그러다 익선동이 한옥 보전지역으로 묶이면서 순식간에 (핫플레이스로) 바뀌었죠.

모든 문화적인 콘텐츠는 종로로 다 모여요. 옛날에는 강남에 가서 놀았지만 지금은 다 죽었어요. 강남 건물이 그럴싸해 보이지만 결국 건물에 세 들어있는 중소기업들이거든요. 지갑층이 얇아요.

종로는 외국계 금융회사가 많아요. 사람들의 씀씀이나 회사 혜택이 다르죠. 사업적인 눈으로 보면 사대문에는 항상 돈이 돌았어요. 전 종로5가 상권분석을 이렇게 했어요. ‘여긴 종로다, 주변에 대기업이 많다, 종로5가 커피는 900원부터 1500원 선이다, 좋은 커피가 없어서 못 마신다’라고요. 수준 대비 그런 공간이 없었던 거죠.

오제도 내부에 있는 베이커리. 사진=이윤주 기자

지금 젊은 사람들은 내가 돈을 모아서 결혼이나 집을 살 수 없다는 의식이 강해요. 그럴 거면 내가 번 돈으로 즐기며 살아야겠다는 강한 니즈가 있어요. 미쉐린 가이드에 나오는 스테이크가 먹고 싶다면 그 정도는 자신에게 선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같은 맥락에서 1~2만 원짜리도 콘셉트와 스토리가 있다면? 마시는 거죠. 제가 고급화를 놓지 못하는 이유예요. 

그래서 커피가 종로5가 다른 카페들에 비해 비싸군요. 이렇게 빈집만 골라 다니는 이유가 뭔가요?

첫 번째는 권리금이 없어요. 이제는 오히려 권리금이 생긴 거죠.(웃음) 또 다른 이유는 제 나이 또래에게 맞아요. 골격 자체가 레트로잖아요. 젊은 사람은 빈티지라는 걸 몰라요. 겪어본 적 없는 신개념이죠.

제가 사는 곳은 신도시인데 전깃줄이 없어요. 바닥에 다 깔아요. 종로는 전깃줄이 장난 아니죠. 그게 어른들 눈에는 지저분한데, 젊은 사람에겐 작품이 돼요. 길거리에서 전봇대 사진 찍잖아요.

혼자 들러 작업하기 좋은 자리. 사진=이윤주 기자

현 사회가 암울하다고 해요. 그건 경제적인 문제일 수도, 사회적인 문제일 수도 있어요. 사회가 암울하면 나타나는 경향성 중 하나는 레트로(옛것)에 기댄다는 거예요. 레트로한 건물을 깨끗하게 해서 골격을 잡고 어느 정도 현대적 요소를 넣으면 그게 딱 좋아요. 그런데 현대 건물에 레트로한 소품을 넣고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하면 쉬운 일이 아니죠.

제가 최근 한 잡지 칼럼에 ‘카페는 현대판 툇마루다’라고 썼어요. 옛날엔 툇마루에 모여서 커뮤니케이션했다면 지금 그 공간은 카페가 됐어요. 카페 역사를 보면 프랜차이즈 전에는 다방 문화가 있었잖아요. 다방은 지식인의 공간이었어요. 음악가, 기자, 예술인이 모였어요. 그리고 이들의 브릿지(다리) 역할을 해줬던 인텔리한 다방주인이 있어요. 이 문화가 지금 새로운 형태로 부활한 거예요. 카페의 기능은 결국 말하고, 생각하고, 읽는 공간이에요. 다방 커피든, 맥심이든, 아메리카노든 커피는 그 자리에 계속 있었고요. 

타자기, 재봉틀, 계량기, 탁자와 의자…. 빈티지한 소품이 많아요. 이런 것들은 어디서 구하셨어요?

김 대표가 모은 빈티지 소품들. 사진=이윤주 기자

제가 가지고 있던 것들이에요. 빈티지와 인문학이 잘 어울리기도 하고요.

이 집은 일본 건축가가 직접 일본에서 자재를 가져와서 지은 일본식이에요. 창틀 하나하나 그대로 뒀어요. 우리나라 한옥과 달라요. 계단도 가파르고요.

일본식 목조 주택에 골격만 남았다. 사진=이윤주 기자

여기가 오제도란 공안 검사가 살았던 집이에요. 역사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그 헤리티지는 그대로 가져가자고 생각했어요. 단, 한자어는 바꿨어요. 우리는 종로 중심지에 외딴 섬을 지었어요.

지금 시간대(4시)면 노트북만 들고 일렬로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전 그 모습이 좋아요. 다른 카페는 오랫동안 죽치고 앉아있다면서 싫어하지만 저는 그런 거 상관없이 행복해요. 그래서 일부러 콘센트도 테이블당 하나씩 만들었어요. 전기업자가 저에게 미쳤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창문 밖 다른 건물의 옥상이 보이는 오제도 뷰. 사진=이윤주 기자 

대표님의 사업 목적은 돈이 아닌 인문학….

돈이죠. 어떻게 사업하는 사람인데 돈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웃음) 초기 투자비용에 인건비에…. 저도 돈에 쪼들릴 때가 있어요. 세금이 훅훅 나가요. 세금 낼 돈이 없어서 망한다는 게 맞아요. 세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절대 돈을 가지고 있지 마! 다 써!’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고급화를 하는 거예요. 예술과 접목하면 가능하거든요. 오제도에선 소주를 안 파고 와인을 팔잖아요.

지금 기획하고 있는 새로운 아이템이 있어요. 우리나라 전통술이 굉장히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보틀로 디자인돼서 나와요. 맛도 좋고요. 그럼 동양 위스키를 베이스로 칵테일을 만들어보려고 기획하고 진행 중이에요. 이게 되면 재밌을 거예요.(웃음)

오제도에서 조만간 맛볼 수 있기를 바라요.(웃음) 최근 방송인 홍석천 씨는 임대료와 최저임금 등 복합적 문제로 가게를 접었다고 인터뷰 했어요. 이에 대한 대표님 생각도 궁금하네요. 

이 대답은 기자님도, 직원도 안 좋아할 수 있어요. 임대료와 인건비. 그 두 가지가 다 문제예요. 

일단 임대료는 많이 해결됐어요. 지난해에 임차인 계약갱신요구권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됐어요. 5년 안에는 (성패를) 가늠하기 쉽지 않아요. 버티기가 어려워요. 갑자기 임대료가 백만 원에서 천만 원으로 올라가는걸요. 그런데 이젠 10년으로 바뀌었어요. 해볼 만한 싸움이에요. 그러나 이건 저 같은 사람의 이야기고, 보통의 경우는 5년 10년 문제가 아니라 1년을 못 버텨요. 자본주의 사회구조는 90%가 망해야 10%가 성공하니까요. 

사업에 성공하고 싶으면 무조건 독점체제로 가야 해요. 제가 예술을 말하지만요, 결국은 독점구도로 가기 위한 저만의 무기들이에요.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나의 무기를 갖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냐면 내가 가진 장점을 극대화해야 해요. 내가 인문학적 기질이 있으면 강하고 진득하게 만들어서 그 누구든 따라 할 수 없게 만들면 돼요.

1층에서 인증샷을 찍는 사람들. 사진=이윤주 기자

또 하나는 인건비요. 전 일단 최저임금은 인간의 기본 권리를 지켜주는 최소 금액이라고 생각해요. 이해가 안 가는 건 주휴수당이에요. 일주일에 하루는 유급휴가를 줘야 한다는 거잖아요. 전 자선사업가가 아니에요. 주휴수당은 하나의 복지 제도로 만들어진 거예요. 복지는 국가가 해야지, 개인이 하는 게 아니에요. 기업에도 복지 제도가 있지만, 그건 그 기업 사이즈에 맞게 해야지 국가에서 강요할 순 없죠.

차라리 최저임금이 만 원이다? 거기에 대해선 할 말이 없어요. 국가가 정한 경제적인 룰 안에서 버텨야죠. 주휴수당은 이해가 안 가요.

미아사거리에 세 번째 공간을 준비 중이시라고요.

1인이 앉을 수 있는 독실. 사진=이윤주 기자

구여관이 모텔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비어있어요. 여성전용 쉐어하우스와 카페를 만들고 있어요.  기능은 커뮤니티. 마침 버지니아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고 있었거든요. 그 당시 미국 사회는 여성이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하던 시기였어요. 여자가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것, 자기만의 직업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 다룬 문학 각론서예요. 그래서 이 건물에 ‘자기만의 방’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1층에 라운지 카페, 옥상에는 정원과 루프탑, 별관에는 셀프 스튜디오가 생겨요.

제가 시집이 많거든요. 커피잔이 나갈 때마다 시집 한 장씩 찢어서 컵 받침으로 주면 어떨까요. 시를 받는 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도, 아무 의미도 없을수도 있고요. 고민 중입니다. 

2월 말쯤 공사가 끝날 거에요. 한 번 놀러오세요. 초대할게요.

현실로 돌아가는 문. 사진=이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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