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 위한 컨트롤타워가 안 보인다
국민건강 위한 컨트롤타워가 안 보인다
  • 박형재 기자 (news34567@the-pr.co.kr)
  • 승인 2019.03.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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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무능 부르는 조직문화…식약처 중심으로 상호 협조 안돼
이원식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안전국장이 지난 8월 고혈압약(발사르탄) 관련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이원식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안전국장이 지난 8월 고혈압약(발사르탄) 관련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더피알=박형재 기자] 발암물질이나 이물질 등 국민건강 이슈가 한 달에 한번 꼴로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등장한다. 생활과 밀접한 식품·의약품 등의 안전성 논란이 잇따르지만 국민 불안을 해소해야 할 정부는 미숙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데도 왜 관리되지 않는지 현황을 집중 점검했다.

①국민건강이 매번 불안한 이유
②국민건강 위한 컨트롤타워는?
③지금 우리사회에 필요한 과학적 커뮤니케이션 

한 달에 한 번꼴로 국민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이슈가 돌출돼 혼란을 낳고 있지만 정부의 관리능력이 매번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정부의 뒷북 대응의 이유는 크게 7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사전점검보다 사후규제에 특화된 관리감독 기관의 한계△국민 정서와 괴리가 있는 커뮤니케이션 스킬 △공식 발표자료의 부적확성 등이 지적된다.   

네 번째 문제로는 정부의 이슈대응 창구가 일원화되지 않고 각 부처가 따로 논다는 점이다.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식품 안전의 컨트롤타워는 식약처다. 2013년 식약청이 격상되면서 각 부처로부터 관련 업무를 이관 받았다. 그러나 부처 간 이견과 현실적 제약 등을 이유로 일부 기능은 여전히 이전부처에서 위탁 관리하는 상태다. 따라서 무슨 일이 발생하면 각 부처와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문제는 상호 협조가 원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살충제 계란 사태 당시 식약처는 양계 농가 현장 관리를 농림축산식품부에 맡겼는데 부처간 이견이 드러났다. 위탁 업무 특성상 식약처가 농식품부에서 관련 내용을 보고받고 책임져야 하지만, 서로 상대가 발표할 내용이라며 책임을 미루거나 한 곳이 발표한 결과를 번복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라돈 침대의 경우 방사능 이슈는 원안위 소관이지만 침대는 산업부 소관이다. 주무부처가 완전히 다르니 라돈 이슈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다. 국민들은 그저 사태가 신속하게 해결되길 바랄 뿐이지만 결론이 오래걸리니 답답하게 느껴진다. 언론 등에서 문제가 불거지면 부처간 책임 떠넘기기나 선긋기도 자주 목격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우리나라 공무원이나 정부기관들의 공통된 문제점이 각 부서간의 소통 부족”이라며 “문제가 불거졌을 때 그걸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면 함께 논의하고 협업해야 하는데 그런 전담인력도 없고 업무협조도 잘 안된다”고 지적했다.

다섯째로는 투명하고 선제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아쉽다. 혼란을 최소화하려면 빠르고 명료한 브리핑을 통해 국민들의 정확한 사태파악을 도와야 한다. 단계별 진행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커뮤니케이션 양을 늘려야 불안을 줄일 수 있는데 이 과정이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라돈 생리대의 경우 원안위가 안전하다고 밝혔으나 국민들은 여전히 불신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라돈(Rn)은 기체 형태로 존재하는 무색무취의 방사성 원소로 심각한 독극물이 아니라 자연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물질이다. 라돈이 문제되는 건 실내 중에 쌓여 있다가 인체 호흡기로 들어갈 경우인데 인체와 가까운 침대와 달리 호흡기와 거리가 있는 생리대 특성상 문제를 일으킬 확률은 희박하다. 이런 점을 자세히 밝히고 국민들을 설득했다면 지금보다 불안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독감에 걸린 중학생이 타미플루 처방을 받고 부작용으로 환각증상을 보이다 사망한 사건도 마찬가지다. 타미플루 자체는 효과적인 치료제지만 아동·청소년 환자 일부에서 이상행동이 발생한 사례가 있었던 만큼 독감이 크게 유행하는 상황이라면 보건당국에서 좀 더 일찍 약의 부작용을 알렸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독감 치료제로 널리 쓰이는 타미플루 부작용으로 지난해 말 10대 청소년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독감 유행 시기에 소화아동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는 모습. 뉴시스
독감 치료제로 널리 쓰이는 타미플루 부작용으로 지난해 말 10대 청소년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독감 유행 시기에 소화아동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는 모습. 뉴시스

여섯째, 공무원의 폐쇄적인 조직문화와 복지부동이 대국민 소통 걸림돌이란 의견도 있다. 공무원은 법대로 움직이니 꼭 필요한 것들만 점검하고 소극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공무원 입장에서 제일 두려운 것은 징계다. 만일 발빠르게 조치했는데 결과적으로 실수한 것으로 드러나면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차라리 전략적 무능을 택하고 욕 먹는 게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 상명하복의 정부 조직문화를 단번에 바꾸긴 어렵지만 정책적으로 공무원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일곱째, 정부 규제기관을 둘러싼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고 노이즈가 낀다. 식약처가 담당하는 식품 의약품 의료기기는 모두 국민 생활과 밀접하다. 이슈 때마다 언론에서 대서특필하고 이권을 다투는 생산자, 소비자단체, 전문가, 국회 등이 다양한 주장을 펼친다. 달걀껍데기 산란일자 표기를 두고 대한양계협회와 식약처가 대립각을 세운 것이 대표적이다. 사공이 많으니 배가 산으로 가기 쉬운데 정부부처의 일관된 가이드라인도 없어 여론에 휩쓸리고 원칙이 흔들린다.

김장열 콜로라도주립대 교수(전 식약처 소비자위해예방국장)는 “식약처가 사전 모니터링을 강화하면 산업 전반에서 ‘규제 때문에 일 못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반대로 좀 풀어주면 소비자단체에서 ‘일 안하고 뭐하냐’는 비판이 나온다. 식약처를 둘러싼 이해관계자가 많다보니 어느 장단에 맞출지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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