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 속 짠함 보이는 MBC 편성 변화
파격 속 짠함 보이는 MBC 편성 변화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9.05.1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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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1시간 앞당긴 드라마로 십수년 공식 타파
과감한 시도지만 경쟁 버거움도 느껴져
MBC가 평일 밤 10시대 미니시리즈를 1시간 앞당겨 방송한다. MBC 뉴스레터 캡쳐
MBC가 평일 밤 10시대 미니시리즈를 1시간 앞당겨 방송한다. MBC 뉴스레터 캡쳐

[더피알=문용필 기자] 메인뉴스의 시작 시간을 지난 3월부터 오후 7시대로 옮긴 MBC가 또 다른 변화에 나섰다. 밤 10시대로 고정돼 있던 평일 미니시리즈 드라마를 한 시간 앞당기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스타트는 오는 22일 첫 방송되는 수·목 미니시리즈 ‘봄밤’이 끊는다. 월·화의 경우 현재 방영하는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시간을 그대로 유지하되 다음달 3일 방송되는 후속작 ‘검범남녀 시즌2’부터 9시대로 옮기게 된다. 정리하면 6월 3일부터 MBC의 모든 평일 미니시리즈가 밤 9시대에 방송되는 것이다. 기존 10시대 프로그램과는 자연스럽게 자리를 바꾸게 된다.

MBC의 편성 변화는 ‘파격’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 하다. 보통 평일 밤 10시대는 ‘드라마 타임’으로 시청자들에게 인식돼 왔다. 수십 년 간 이어져 온 지상파의 불문율이다.

게다가 MBC는 지난 1980년 ‘백년손님’(월·화)으로 ‘10시대 미니시리즈’를 탄생시킨 원조다. 자랑스러워할 만한 전통까지 깨버린 만큼 개편에 대한 부담감이 뒤따랐을 것으로 짐작된다. 회사 관계자도 “내부적으로 오래 고민해왔다”고 말했다.

MBC가 밝힌 편성 변화의 근거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라 바뀌고 있는 시청자 라이프스타일이다. 저녁 여가시간이 확대되고 빨라짐에 따라 주요 콘텐츠를 전진배치하게 됐다는 것. 앞서 ‘뉴스데스크’의 방송시간을 30분 앞당긴 것도 이러한 시청자 패턴을 반영한 결과물이다.

동 시간대 같은 장르의 콘텐츠들이 배치돼 시청자들의 시청권을 제약한다는 것도 명분이 됐다. 지상파의 오랜 편성공식을 탈피해보겠다는 의도다. 달라진 편성으로 인해 어쩌면 광고수익에 영향이 갈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변화의 총대를 멘 MBC의 시도는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다만 이번 편성은 MBC의 현재 상황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몰락이라 표현해도 좋을 만큼 과거의 위상을 잃어버렸다. 보수정부 시절 정권편향성 논란으로 인해 언론으로서의 신뢰도가 떨어졌고 여타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도 멀어졌다. 세간의 주목을 끌만큼 신선한 콘텐츠가 부족했다는 점도 추락의 이유로 분석된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MBC는 여전히 헤매고 있다. 변화의 몸부림 속에서 일부 예능과 드라마가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영광을 되찾기에는 부족했다. MBC가 부침을 겪는 동안 JTBC와 CJ ENM 등 비지상파 채널이 명실상부한 강자로 자리 잡았고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이 TV 시청자들을 집어삼켰다. 뭐 하나 유리한 환경이 없다. 때문에 이번 편성 변화를 두고 치열한 드라마 경쟁구도에서 벗어나려는 전략이 아니냐는 시선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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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도 경쟁의 버거움을 어느 정도는 인정하는 듯하다. 자사 뉴스레터를 통해 “최근 드라마 시장은 월·화 밤 10시대 5개, 수·목 밤 10대 4개 드라마가 혈투를 벌이고 있다. 결국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는 드라마는 겨우 한 두 작품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이러한 상황이 계속될 경우, 방송사는 물론 제작사와 시청자 모두 손해를 보는 악순환의 고리로 빠져들 우려가 있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이번 편성 변화의 기점이 되는 신작들은 나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봄밤은 ‘밀회’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이상 JTBC)와 ‘풍문으로 들었소’(SBS) 등을 연달아 히트시킨 안판석 PD의 친정 복귀작이다. 검법남녀2의 경우 지난해 방송된 전 시즌이 9.6%(닐슨코리아 기준)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할 만큼 좋은 반응을 얻었던 작품이다.

이 정도 라인업이면 충분히 겨뤄볼만 하지만 MBC는 편성 변화를 택했다. 물론 생존을 위한 행보이니 꼼수라고 비판할 순 없다. 타사와의 경쟁을 피하기 위한 편성이라고 무작정 단언할 수도 없다. 하지만 과거 ‘드라마 왕국’이었던 MBC의 영광을 목도한 시청자로서 ‘짠한 마음’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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