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내공으로 컨트롤할 수 없다”
“위기는 내공으로 컨트롤할 수 없다”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9.05.2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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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위기의 남자’로 자리 잡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더피알=강미혜 기자] 짧지 않은 시간을 보아왔지만 매사 빠르고 정확한 사람이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지나가는 말이라도 뱉으면 지킨다. 성격도 쿨한데 글은 더 시원하게 쓴다. 그런 그도 정말 쉽지 않은 길이었다고 한다.

척박한 국내 PR 시장에서, 모든 서비스를 다 제공해야 명함이라도 내미는 환경에서 한 분야만 팠던 세월이 그렇다. 위기를 고객 삼아 10년을 지나온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는 위기관리 컨설팅사가 아닌 ‘위기 펌(crisis firm)’으로서 또 다른 시작을 앞두고 있다. 사무실 확장 이전 직전, 지금은 옛 공간이 되었을 장소에서 마지막 인터뷰로 위기관리 10년을 함께 돌아봤다.

정용민은... 위기관리 전문가. 미국 페어레이 디킨슨 대학원에서 기업 커뮤니케이션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커뮤니케이션즈코리아 부사장과 오비맥주 홍보팀장을 거쳐 2009년 스트래티지샐러드를 설립했다. 사진: 성혜련 기자 

위기관리로만 10년을 달려온 소감이 어떠신가요.

스스로 대견하고 외부에서도 대단하다 해요. 척박한 홍보 관련 시장에서 10년을 커왔다는 것, 그 속에서도 더 척박했던 위기관리 시장에서 커왔다는 것을요. 훌륭한 클라이언트들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짧은 답변에 ‘척박하다’는 표현이 두 번이나 들어갔어요. 하는 업무에 비해 서비스 피(fee)가 박하다는 건가요, 사회적 인식이 낮다는 뜻인가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지금 클라이언트 중에 스타트업이 한 군데 있어요. 그들이 위기라고 해서 상황을 봤더니 우리 관점에선 별일이 아닌 거야. 근데 한숨 돌릴만 하니까 그때부터 이상한 걸 요구하는 거예요. (포털에서) 기사를 밀어내자, 별도의 시나리오를 더 만들어달라 등등. 그래서 “우리는 그런 회사 아니다. 원칙상 하지 않는 일이고 역량도 그 쪽이 아니”라 했더니 당장에 “대행사가 말이야~ 하라면 하는 대로 해야지!” 식으로 나와요. 이제 막 기업을 일구겠다는 젊은 창업가들인데 말이죠.

대행사 전반에 대한 국내 인식이 아직도 그렇습니다. 합당한 대우나 관계, 업의 이해도 모든 것이 척박하니 피(fee)도 척박할 수밖에요. 정말 말 그대로 ‘대행’인 거예요. 국내에서 홍보대행업을 해 나가기가 참 어려운데 위기관리는 그보다 더 마이너한 시장이에요. 언론홍보 대행하는 회사에서 유사시 마땅히 해줘야 할 서비스 개념 정도로 보니까요.

그랬는데 저희가 “컨설팅 받으려면 타임차지(time charge) 하셔야 합니다” 하니 클라이언트 쪽에서도 처음엔 “얘들 뭐지?” 그랬었죠.(웃음)

‘얘들 뭐지’로 시작한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초창기엔 업계 사람들도 신기해했지만 이제는 대단하다 해주는 것! 얼마 전 한 기자가 그러더라고요. 정 대표 창업할 때 금방 망할 줄 알고 축하난도 안 보냈는데 10년 만에 사무실도 키우고 하는 걸 보니 아껴뒀던 그림 선물한다고.(웃음) 두 번째로 달라진 건 훌륭하고 역량 있는 인력들과 더 많이 함께 일하게 됐다는 점이고, 세 번째는 좋은 클라이언트들이 스스로 찾아와 주신다는 겁니다.

대표님에게 좋은 클라이언트는 사고 많이 치는 곳인가요, 위기시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마인드를 갖춘 곳인가요.

아무리 위기로 먹고사는 회사지만 설마 사고 치는 곳을 칭찬할라고요.(웃음) 우선 사업적으론 큰 기업이 좋은 클라이언트라고 생각해요. 또 서비스나 퍼포먼스 측면에선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완전히 이해하고 찾아오는 클라이언트들이 고맙습니다.

정 대표는 위기를 일상업무처럼 마주해야 '정상적 조직'이라 말한다. 내부에서 당황하지 않으면 바깥으로 황당한 메시지도 나오지 않는다. 사진: 성혜련 기자
정 대표는 위기를 일상업무처럼 마주해야 '정상적 조직'이라 말한다. 내부에서 당황하지 않으면 바깥으로 황당한 메시지도 나오지 않는다. 사진: 성혜련 기자

더피알 칼럼 등을 통해 꾸준히 지적한 바에 따르면 국내 위기관리 수준은 크게 나아지지 않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실제로도 그런가요?

저도 건강관리를 위해 정기적으로 의사를 만납니다. 의사는 한 번도 ‘몸 상태가 완벽하니 운동이나 식이요법은 그만하셔도 됩니다’라고 말 안 해요. 마찬가지입니다. 위기관리는 지속성이라는 개념으로 봐야 합니다.

기업들의 위기관리 수준은 전반적으로 많이 나아졌어요. 문제는 케이스별로 편차가 있다는 점입니다. 편차가 크면 그건 진짜 실력이 아니에요. 그리고 아직도 위기관리를 내공이나 기술쯤으로 생각하는 기업이 있는 게 아쉽습니다. 매번 강조하는데 위기관리는 시스템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시스템을 이루고 프로세스에 따라 착착착 해 나간다는 생각으로 토대를 계속 가꿔나가야 해요.

시스템이 있고 없고는 어떻게 판단하나요.

일단 시스템이 있는 기업은 우왕좌왕하는 게 덜합니다. 위기가 발생해도 일상 업무처럼 보고체계가 돌아가요. 정보 정확도나 공유 속도가 빠르니 대응의 신속성이 달라져요. 그리고 위기관리팀 구성원들이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겐 이슈 자체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니까요. 내부에서 당황하지 않기 때문에 바깥으로 황당한 메시지도 나오지 않습니다.

반면 시스템이 없는 기업은 위기를 ‘진짜 특별한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일상이 무너지고 패닉에 빠지다 보니 보고체계나 공유체계도 엉망이 되죠. 해야 할 건 못하고 불필요한 정보들만 중구난방으로 공유되면서 핵심의사결정자가 도저히 의사결정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됩니다. 이런 차이가 시스템 유무를 보는 하나의 리트머스예요.

지난 10년 간 한국의 위기관리사에서 이정표가 될 만한 사건을 꼽으신다면.

클라이언트나 사례를 들라고 하면 항상 고민됩니다. 업 특성상 밝히지 않는 게 원칙이니까요. 다만 나비효과에 놀라워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에 나비효과 현상이 있었다고 기억되는 중심에 저희가 있기도 했습니다. 하나의 위기관리 케이스가 다른 케이스에 영향을 주고, 더 많은 케이스에 영향을 주면서 도미노 현상이 벌어지고, 또 그 사이에 이슈가 생겨 또 다른 도미노 현상이 만들어지고… 전체적으로 나비효과 현상으로 마무리되더군요. 위기관리를 넘어 한국 역사 속에서 나름 고군분투했다는 점에 의미를 두기로 했습니다.

에둘러 얘기하시니 정확하게 와 닿진 않네요.(웃음) 나비효과라는 말을 들으니 저는 딱 두 가지 키워드가 떠오릅니다. 물컵버닝썬. 이슈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증폭되면서 정말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까지 나아갔잖아요. 반면교사 포인트라면 뭐가 있을까요.

나비효과의 사전적 의미는 ‘작고 사소한 사건 하나가 나중에 엄청난 효과를 가져온다’는 거잖아요. 위기관리 관점에서 나비효과를 보면 최초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계속 위기가 넘쳐 위기를 키우는 것과 유사합니다. 중간에 막으려 해도 돌발변수가 더해지고 그 변수가 더 다양해지면서 순식간에 상황이 손쓸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겁니다. 더욱이 지금은 이해관계자들이 다 얽혀 있는 초연결사회라잖아요. 언론이나 온라인에서 정보 공유량도 워낙 활발하니 이슈의 발생 빈도가 높을 수밖에요.

기업 홍보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미디어 환경 변화로 전통(언론) 홍보 영역에선 위기관리 기능만 남았다고 합니다. 동의하시나요?

쉽게 말해 부정기사 덜어내기 위한 언론 관리에만 집중한다는 뜻인데, 아직도 홍보실이 미디어 중심적 사고에서 못 벗어났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시각이 미디어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로 확장되면 지금처럼 얘기 안 해요. 위기관리는 이해관계자관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위기가 터졌을 때 360도 전방위에서 필요한 정보를 재깍재깍 제공하는 참모 역할을 해야 VIP 입장에서 그 사람을 진짜 위기관리맨으로 인정하지 않겠어요? 반면 홍보실이 언론 관계에 자기 역할이나 기능을 특정 짓게 되면 일 터질 때마다 매번 “쟤들(홍보실)은 기사 하나도 못 막아?”라는 소리를 피할 수 없어요.

반복적으로 강조했지만 기업 홍보실은 ‘기업 커뮤니케이션실’이 돼야 합니다. 지금 시대 커뮤니케이션 상대는 언론만이 아닙니다. 기업 주변을 둘러싼 모든 이해관계자 즉 주주, 소비자, 규제기관, NGO,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아우르며 많은 관계와 정보, 대응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그래야 위기관리 기능을 수행할 기본이 됩니다.

*인터뷰 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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