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재미없게 하는 일을 11년째 하고 있다”
“세상을 재미없게 하는 일을 11년째 하고 있다”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9.05.2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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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위기의 남자’로 자리 잡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더피알=강미혜 기자] 강산이 변하는 시간 동안 위기라는 우물을 파온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오너(가)리스크에 대한 얘기로 그와의 대화를 계속했다. 

▷“위기는 내공으로 컨트롤할 수 없다”에 이어..

정용민은... 위기관리 전문가. 미국 페어레이 디킨슨 대학원에서 기업 커뮤니케이션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커뮤니케이션즈코리아 부사장과 오비맥주 홍보팀장을 거쳐 2009년 스트래티지샐러드를 설립했다. 사진: 성혜련 기자
정용민은... 위기관리 전문가. 미국 페어레이 디킨슨 대학원에서 기업 커뮤니케이션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커뮤니케이션즈코리아 부사장과 오비맥주 홍보팀장을 거쳐 2009년 스트래티지샐러드를 설립했다. 사진: 성혜련 기자

최근엔 마약 등 예민한 사회이슈와 얽혀 이른바 ‘손주리스크’도 불거지고 있습니다.

방치가 문제에요. 우리나라 기업이나 셀럽 위기의 대부분이 방치 때문입니다. 알고는 있지만 내버려 두는 거지, 몰라서 미처 손을 못 쓴 경우가 아니에요. 가족 문화에 관한 것이라 함부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상호 간 방치라는 개념에는 좀 주목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스로 관리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외부에 의해 관리당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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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리스크는 어떤가요. 대개 오너나 최고경영자의 인성과 관련 있는데 모든 리스크는 관리돼야 한다고 봤을 때 과연 인성도 관리 가능한가요?

우리나라 기업 역사상 두고두고 회자되는 어록 하나가 있어요. IMF 외환위기 서막을 열었던 한보 사태 당시 정태수 회장은 뇌물 줬다는 직원 진술을 확보했다는 검사를 향해 “머슴이 어떻게 압니까” 하고 쏘아붙였어요. 그게 그 유명한 ‘머슴론’이에요.

지금이라고 달라졌을까요? 바깥에선 아무리 스타임원으로 추앙받아도 오너 눈엔 그냥 머슴들인 겁니다. 머슴 얘기 들을 주인이 누가 있겠어요. 설령 잘못돼도 주인 잘못 모신 그 머슴을 탓하지. 결국 답은 하나에요. 본인들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 안 바뀌면 땅콩회항 때처럼 사회적인 압박에 못 이겨 관리당하게 됩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언론도 지속가능경영을 고민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광고협찬 등의 목적성을 띠고 ‘만들어지는 위기’도 많다는 게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실제 더피알에 들려오는 가장 빈번한 제보 중 하나이기도 한데, 홍보실이 ‘나쁜 기사’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광고협찬을 원하고 이를 빌미로 부정기사나 마타도어(흑색선전)를 일삼는 매체도 사실 기업 주변의 이해관계자입니다. 고객 파트에는 블랙 컨슈머라는 골칫거리가 있고, 기술 파트에는 기술 유출 직원이, 인사 파트에게는 불평불만 직원이 있어요. 또 생산에는 삐딱한 노조위원장이 있는 등 각 파트별로 늘 골칫거리 이해관계자가 있습니다. 홍보실만 괴로운 건 아니에요.

과제는 그런 이해관계자를 어떻게 긍정적으로 관리해 나가는가 하는 점입니다. 기준은 회사의 성공이에요. 회사 성공을 위해 어떤 전략과 원칙이 필요한지를 고민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물론 그 성공의 잣대는 VIP가 가지고 있고요. VIP 의중에 따라 성공적인 방향으로 조율하는 것, 그것이 홍보실의 현실적 과제겠죠. 간단히 말하면 홍보실의 정치력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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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하는 위기 이상으로 요즘은 위기를 진단하는 여론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한국만의 특수성인 건지?

한국에서만 특수한 경우는 드뭅니다. 우리가 다른 나라를 몰라서 우리만 이상해 보이는 거죠. 사실 여론은 원래부터 역사적으로도 이상한 것이었습니다.

얼마 전 오마바 전 미국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어요. “여론은 예측가능하다.” 굳이 미디어를 보고 미디어를 통하지 않아도 우리는 여론을 이미 느낀다는 겁니다.

가공식품에서 벌레가 나왔는데 꼭 조중동에 실려야 그게 문제인 줄 아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기업이 보다 합리적이고 사회적인 감수성을 강화시키면 여론 예측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러면 대응 타이밍이 빨라지고 훨씬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거고.

주체를 막론하고 위기 시 매번 컨트롤타워 타령을 합니다. 바꿔 얘기하면 매번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의미고, 그럴 때마다 해외 사례를 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입니다. 선진국과 비교해서 우리나라 위기관리 수준이 그렇게 떨어지나요.

이번 강원도 산불 사고 대응을 기억해 보세요. 분명 이전보다 나아졌습니다. 일사불란함이 생겼다고도 해요. 동의합니다. 다만 아까도 언급했듯이 케이스별로 편차가 크면 문제입니다. ‘그때는 잘 했는데, 왜 이번엔 못했어?’ 반대로 ‘저번엔 못했는데, 어떻게 이번엔 잘했어?’ ‘바다에선 안 되는데 산에서는 되네?’ 이러면 안 된다는 거예요.

미국은 FEMA(연방재난관리청)라는 관제 및 실행 기관이 있고 시뮬레이션이나 훈련, 대비 역량도 매우 높습니다. 그런데도 대형 허리케인이 오면 어느 땐 엉망이고 또 어느 땐 제대로라고 엇갈린 평가를 종종 받습니다. 상황별로 변수가 많아서 관리능력의 편차가 생기는 거죠. 그래서 그 편차를 좁히는 노력을 합니다. 우리도 그래야 해요.

화제를 조금 돌려볼까요. 창립 10주년이니 개인적 이야기도 여쭤보겠습니다. PR 영역 중에서 특별히 왜 위기관리에 주목하셨어요?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국내 PR회사에 바로 입사했어요. 그 전에는 홍보를 학문으로 이해했는데 입사 후부터는 비즈니스로 이해하게 됐어요. 그러다 글로벌 파트너사에서 위기관리 매니저 세션을 한다 해서 트레이닝 파견을 갔는데 영국과 미국 컨설턴트들이 위기관리 서비스들을 쭉 설명하고 제공하는 것을 보고 비즈니스적인 매력을 느꼈죠.

그때부터 위기관리로 비즈니스를 해야 하겠다는 플랜을 세웠어요. 그 후의 인하우스 홍보실 경험(오비맥주 홍보팀장)도 지금의 위기관리 비즈니스를 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습니다. 20여년 전부터 저를 잘 아는 업계 사람들은 이미 알았어요. 이 비즈니스를 할 거라고.(웃음)

정 대표는 위기관리는 깨끗하게 성공하고 만세 부르는 게임이 아니라, 상황과 이해관계자를 관리하며 견뎌내야 하는 싸움이라고 강조한다. 사진: 성혜련 기자

지금도 여전히 스트래티지샐러드란 사명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어요. 위기하면 심각한 느낌인데 귀염귀염(?)한 느낌도 있고요.(웃음)

샐러드의 종류는 많아요. 뭐든 섞으면 샐러드가 됩니다. 전략도 마찬가지예요. 방법론, 인력, 예산, 타이밍, 이해관계자 어프로치, 메시지 등 다양한 전략적 요소 중에서 무엇을 주로 섞느냐에 따라 맛과 효능이 달라집니다. 그 관점에서 클라이언트 입맛과 몸에 맞는 전략 요소들을 찾아 섞어 제공한다는 의미에요.

위기관리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찼고, 반대로 가장 아쉬웠던 순간을 얘기한다면.

보람찬 순간은 당연히 클라이언트의 위기가 조용해질 때입니다. TV에 출연하는 클라이언트들을 보면 항상 조마조마하지만 준비한 대로 잘 해내는 모습을 보면 참 뿌듯해요. 그 이후로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조용해지면 더 좋은 거죠. 어떻게 보면 세상을 재미없게(?) 하는 일입니다.(웃음)

아쉬운 건 VIP 얼굴도 못 본 채 위기관리를 할 때입니다. 99% 잘 안 돼요. 우리 컨설턴트들도 보람 없고 자존감도 떨어지고 성과 역시 좋지 않습니다. 위기관리 컨설턴트와 VIP 간 물리적 거리는 가까울수록 좋습니다.

그러면 위기 때 직접 마주한 최고경영자 중에서 진짜 멋있다 하는 분은 없나요?

있죠. 모 홈쇼핑 오너가 그랬어요. 해외 수입 화장품을 판매했다가 문제가 생겼어요. 미국서 FDA(식품의약국) 검사도 다 통과한 제품을 한 수입업체로부터 납품 받아서 팔았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안 되는 성분이 들어있었던 거예요. 식약처 샘플링 과정에서 발견됐고 결국 리콜 명령이 떨어졌어요. 근데 납품 업체는 손들고 나몰라라하는 상황이고 소비자들은 홈쇼핑 콜센터로 계속 전화하고…

실무진이 어떻게 할지 의논할 때 상황을 들은 오너가 “현금으로 다 교환해 드려”하고 한 번에 정리하더군요. 문제 생겼을 때 수입업자 탓하고 우린 쏙 빠지면 나중에 어떻게 고객에 물건을 팔겠냐며. 돈이 많아서 그렇게 했던 게 아니에요. 철저히 고객 관점에서 의사결정한 거지. 그러고 났더니 이슈가 금세 사라졌어요. 위기가 그대로 종결돼버린 거죠. 위기시 그런 결정은 오너만이, 최고경영자만이 할 수 있는 거예요.

위기관리 대표 컨설턴트로서 더피알 독자들에 현 시점에서 제일 강조하고픈 딱 한 가지만 이야기해주세요.

맷집을 키우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위기관리는 깨끗하게 성공하고 만세 부르는 게임이 아니에요. 일단 발생했으면 어떻게든 충격을 줄이고, 상황과 이해관계자를 관리하면서 견뎌내는 게임입니다. 누구는 한 방 맞고 쓰러지기도 하는데 누구는 죽을 정도로 맞아도 안 쓰러지기도 해요. 관리는 바로 그 차이입니다. KO만 안 당하고 버티면 위기는 지나가요.

앞으로 10년 뒤를 생각해 본다면.

영향력. 이 가치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회사 설명도 이제 바꾸려고요. ‘위기관리 커뮤니케션 컨설팅 펌’ 스트래티지샐러드가 아닌 그냥 ‘위기 펌(crisis firm)’으로. 법을 다루면 로펌이고 회계를 전문으로 하면 어카운팅펌이듯이 위기를 전문으로 하면 크라이시스 펌이 맞는 거더라고요. 이 또한 하나의 영향력 변화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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