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장애 리더와 함께 한다는 것
결정장애 리더와 함께 한다는 것
  • 김영묵 (brian.kim@prain.com)
  • 승인 2020.01.17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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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묵의 리더십 원포인트]
전략적 의사결정, 상황 따라 궤도 수정할 줄 알아야
리더가 무지하거나 변덕스러우면 엄청난 파국을 맞을 수 있다.

[더피알=김영묵] 나폴레옹의 “이 산이 아닌가 보다” 일화가 한동안 회자됐었다. 100만 대군을 이끌고 알프스산맥을 넘던 나폴레옹이 한 봉우리에 오르자 “이 산이 아닌가 보다”라며 탄식하고는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간 뒤 다른 봉우리에 올랐다. 그리고는 “아까 그 산이 맞았나 보다”라고 했고, 결국 많은 병사가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 전투를 하기도 전에 탈진해 숨졌다는 이야기다.

우스갯소리일 뿐 역사적 사실(史實)은 아니다. 리더가 무지하거나 변덕스러울 경우 엄청난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유머인데, 필자는 다른 관점에서 이 ‘추억의 개그’를 풀어보려고 한다.

나폴레옹의 첫 번째 탄식에서 마무리됐다면, 어렵게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는 결단을 높이 평가하며 오히려 훌륭한 리더의 면모를 보여주는 사례로 알려졌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 궤도를 수정(adjust)할 줄 아는’ 리더의 전형을 보여주는 일화가 됐을 것이란 얘기다.

그만큼 ‘LEAder’는 경청(Listen)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하고, 권한을 이양(Empower)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하며, 본인이 내렸던 결정을 상황에 따라 수정(Adjust)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1990년대 중반 필자가 기자로서 막 시작하던 때의 일이다. 보통 기자들은 2년마다 부서를 바꾸며 순환 근무를 했고, 부서장의 임기 역시 통상 2년이었다. 필자가 수습을 마치고 첫 부서에 배치됐을 때 당시 부서장은 공교롭게도 임기의 절반을 지낸 분이었다.

결국 그 부서에서 지낸 지 1년 만에 새 부서장을 모시게 됐다. 또 1년이 지나고 나서 필자는 다른 부서로 옮겨 새로운 부서장(이미 그 부서에서 부서장으로 1년을 보낸)과 일하게 됐는데, 이러한 패턴이 반복돼 언론사에서 10년간 모셨던 부장이 정확히 10명이었다. 그만큼 많은 리더를 모신 경험이 필자가 리더십에 관심을 갖고 천착하게 된 배경이다.

최악의 리더십이란

이어진 10년간의 기자생활 후반기에 모셨던 분들, 그리고 PR컨설턴트로 전직한 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상사들로부터 두 부류의 ‘최악의 리더십 유형’을 그릴 수 있었다. 한 부류는 ‘결정장애/회피형’ 리더이고, 다른 부류는 “내가 해 봐서 아는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리더이다.

우선, ‘결정장애/회피형’ 리더를 보자. 나폴레옹 유머에 대입하면, 여러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알프스산맥의 한복판에서 어느 봉우리에 올라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100만 대군을 그 자리에서 얼어 죽게 만들 우려가 큰 유형이다. 어느 조직에서든 이러한 유형의 리더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필자는 첫 회 칼럼에서 리더를 ‘전략적 의사결정을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관련내용 바로보기

세분하자면, 결정장애형 리더는 제한적인 정보로 가장 합리적이며 합목적적으로 판단할 능력과 자질이 부족한 반면, 결정회피형 리더는 본인의 의사결정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책임을 질 용기가 없는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나쁜 결정이 무결정보다는 낫다(Any bad decision is better than no decision)”는 말이 있다. 자신이 없더라도, 확신이 없더라도 - 이 세상에 100% 확실한 건 없다! - 봉우리 하나를 선택해 올라봐야 그 길이 맞는지 틀리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주어진 정보가 좀 더 상세하고, 그를 바탕으로 좀 더 합리적으로 판단했다면 그 길이 맞을 확률이 높은 것은 자명하다.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고 자기가 이끄는 조직을, 그리고 조직의 구성원을 방치하는 리더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

최근 모 대기업의 광고카 피가 눈에 쏙 들어왔다. “오늘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내일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죽이든 밥이든 마음을 정하고 쌀을 씻어 조리하지 않으면 쫄쫄 굶어 죽기밖에 더하겠는가? 리더에게 주어진 사명, 즉 의사결정의 엄중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승.전.따르라’의 위험성

다음으로 “내가 해 봐서 아는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유형이다.

본인이 내렸던 결정, 판단을 상황에 따라 수정할 줄 안다는 것은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이긴다는 의미이자 유연한 사고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해 봐서 아는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리더는 몇 차례 경험했던 과거의 성공에 매몰돼 새로운 도전을 거부하는 유형이며, 사고가 전혀 유연하지 않고 완고한 사람이라 볼 수 있다.

과거 신화에 매몰된 리더의 과신은 조직을 후퇴시키기 십상이다. 

이런 리더의 사고에 깊이 박혀 있는 성공 기억이 10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래 전의 것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요즈음의 경영 환경 속에서 10년 전, 20년 전 성공신화에 매몰돼 ‘기.승.전.따르라’가 된다면, 현상 유지는 고사하고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테라바이트급의 정보가 초 단위로 유통되고, 리더보다 더 많은 정보로 무장된 직원들이 협업과 토론으로 합리적 판단을 모색하는 이 시대에 “내가 해 봐서 아니까 나를 따르라”를 만트라처럼 읊어대는 리더가 설 자리는 없다.

리더십에 대해 설파하는 학자, 전문가들 가운데 “조직 구성원들로 하여금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라!” “직원들이 실패를 통해 배우는 기업 문화를 만들라!”라고 역설하는 이들이 많다. 필자 역시 이 견해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꼽히는 기업들을 보면, 리더가 앞장서서 이를 실천한 사례가 대부분이다. 그러한 기업에서는 리더들 스스로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회피하지 않는 모습을 솔선해 보임으로써 실패를 통해 배우는, 실패를 통해 뭐가 잘못됐는지 깨닫고 제대로 된 길로 궤도를 수정(adjust)하며 성공으로 나아가는 기업 문화를 일궜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만히 있는 것. 현실에 안주하는 것. 과거의 성공에 매몰돼 있는 것. 실패를 맛보지 않는 안전한 길일 수 있지만, 그래서는 결코 성공도 맛볼 수 없음을 깨닫고 상황에 따라 궤도를 수정하는, 유연한 사고로 조직을 이끄는 21세기형 리더들을 더 많이, 더 자주 만나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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