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인의 밥상] ‘너똑’이란 이름의 메뉴
[홍보인의 밥상] ‘너똑’이란 이름의 메뉴
  • 이지용 (thepr@the-pr.co.kr)
  • 승인 2020.03.30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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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의료원 홍보실 이지용 사원

[더피알=이지용] 인생에는 가벼운(?) 난제들이 많다. 그중 하나는 바로 ‘뭐 먹을까?’다. 과거에는 ‘배를 채우다’라는 행위에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먹느냐 등 여러 조건을 고려한 후, 최상의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고민은 본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식(食)은 현대인의 크나큰 숙제가 되어버렸다. 으레 구성원 중 막내에게 이 질문을 하는 이유도 배려를 가장한 고민을 떠넘기기 위한(!?) 술수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수십 번 생각 끝에 막상 답을 내도 반응은 차갑기 일쑤다.

경험에 비춰보면, 어울림의 시작은 ‘식’이다. ‘밥 한번 먹자’며 안부를 묻는 우리나라의 고유한 문화를 고려해보면, 적은 노력으로도 충분히 기약 있는 약속을 잡을 수 있다. 새롭고 다양한 사람들과 낯선 곳에서 소통해야 하는 홍보인의 업무 특성을 고려해볼 때, ‘식사미팅’은 치트키와 같은 기능을 한다. 하지만 효과적인 식사미팅에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편안함’이다.

모 출입기자와의 식사미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편안함은 곧 배려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던지라 상대방이 어떤 메뉴를 좋아하는지 몰래 수소문했다. 평소 해산물을 즐겨 먹는다는 정보를 어렵게 입수한 후 식당 예약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날이 나의 흑(黑)역사로 남을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말이다.

갑각류 이상반응을 무시하고 용감히 출입기자와 갑각류를 먹으러 갔다. 

나는 먹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해산물이다. 특히, 바닷가재, 대하, 새우 등으로 대표되는 갑각류 음식은 피부에 스치기만 해도 이상 반응을 보인다. 갑각류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는 내가 새우로 유명한 해산물집을 미팅장소로 정한 것이다. 일명 신입의 오기(傲氣)라고 해야 할까? 직접 새우를 까서 건네던 그 기자의 손을 극구 거절했으나, 결국 나는 억지로, 맛있는 척 연기하며 먹었다.

몸에 이상반응이 올라오자 식사자리는 더 이상 상대방에게 집중할 수 없는, 오로지 나의 생존을 위한 시간다툼으로 변질되기 시작됐다. 안절부절못하며 불편해하는 내 모습에 맛집이라며 극찬하던 출입기자의 낯빛은 시간이 갈수록 어두워져만 갔다.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온통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 이 자리를 빨리 마무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뿐이었다. 지금에야 웃픈 추억이지만 당시에는 너무나 무모했던, 다음 날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던 기억이다.

보기 좋게 익은 새우는 막막함을 안겼다 .
보기 좋게 익은 새우는 막막함을 안겼다.

이후 나는 식사미팅을 잡을 때 항상 상대방에게 사전 양해를 구한다. ‘저는 물보다는 산과 들이 좋다고’.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인다. ‘저는 너저분한 곳이 좋다고’

사람은 ‘평소’에 어긋날 때면 항상 실수를 하게 되며, 가식적인 모습 속에 무언가를 꾸미느라 애를 쓰게 된다. 식사미팅은 직책과 직함을 들고 계약서를 작성하는 자리가 아니다. 가면을 벗어둔 채 격식 없이 서로 소통하며 자연스레 어울리는 시간이다. 어울림 속에 내가 가진 정보를 상대방에게 전달하기도 하고, 상대방이 가진 정보를 얻어내기도 하는, 일명 ‘정보교환’이 이뤄지는 홍보업무의 시작점이다.

가보지 않은 곳은 가지 않는다는 철칙 때문인지, 단골식당이 주는 편안함 속에서 상대방에게 더욱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너와 내가 아닌, 우리가 되어 출입문을 나서곤 한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 따뜻함을 채워주는 홍보인, 얼마나 멋진 말인가? 편안함이야말로 홍보인이 추구해야 할, 내세워야 할 덕목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서로를 형·동생이라고 칭하는 N 기자와의 식사 전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의 밥상이 얼마나 솔직하고 편안해졌는지 엿볼 수 있다. ‘뭐 먹을까?’ 메뉴를 항상 고민하던 우리의 모습은 이제 추억이 됐다. 때마침 점심을 같이 먹게 된 친한 기자 중 한 명의 대답은 오늘도, 내일도, 항상 똑같다. ‘너(랑) 똑(같은 걸로)’

나는 ‘뭐 먹(을까)?’보다 ‘너(랑) 똑(같은 걸로)’라는 말이 참 좋다. 똑같은 말 같아 보이지만, 은근슬쩍 귀찮음에 숙제를 건네는 것이 아닌, 편안함 속에 ‘너를 믿어’라는 신뢰의 시그널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홍보인으로서 ‘뭐먹’이라는 난제를 ‘너똑’이라는 답으로 풀기 위해 오늘도 나에게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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