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이 만우절? 온라인 놀이가 된 거짓말
365일이 만우절? 온라인 놀이가 된 거짓말
  • 정수환 기자 (meerkat@the-pr.co.kr)
  • 승인 2020.04.01 16: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허구의 인물·스토리 유희 소재로…거짓에 속고 거짓 재생산하며 연결
전문가 “일상생활에 있을 수 있을법한 보편적인 상식에 기반 둬야”

[더피알=정수환 기자] 거짓말에 대한 시선은 보통 부정적이다. 거짓인 사실이 탄로 나면 거짓의 주체를 비난하고 믿었던 자신을 통탄한다. 하지만 요즘 거짓은 다르다. 온라인상에서 Z세대를 중심으로 하나의 놀이로서 기능한다. 실제로 속인 게 들통 나더라도 유쾌하게 넘기며, 오히려 자신이 거짓의 재생산자가 되어 비슷한 놀이를 이어간다. 

게시물발(發) 유니버스, 폰은정

“폰은정이란 이름 첨 봄.. 성이 폰씨래.. 폰씨라는 성이 있음? 한명도 없는 것 같은데..”

2018년 1월, 한 커뮤니티에 문득 이런 게시글이 올라왔다. 네티즌들은 댓글로 먼저 진위 여부를 물었다. 몇 댓글을 받자 글쓴이는 “실제로 존재는 안 해 사실.. 내가 만들어낸 가상인물임 ㅋㅋ 근데 성이 폰씨라서 신기해ㅋㅋ”라고 답했다.

폰은정 시리즈의 시작이 된 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폰은정 시리즈의 시작이 된 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자신이 거짓글을 올려놓고 혼자 신기해하는, 전례 없던 모습에 충격(?)을 받은 네티즌들은 원 글쓴이의 안부를 물었다. 분노가 아닌 걱정을 자아낸 이 게시물은 한동안 다른 커뮤니티에도 퍼지며 소소하게 이목을 끌었다.

그렇게 이따금씩 회자되며 묻힐 줄 알았던 이 글은 어느 날 갑자기 화제가 되며 온라인 밈(meme)이 됐다. 부활의 근원은 알 수 없으나, 삼인성호라고 했듯 여러 사람들이 계속 해서 비슷한 형식의 글을 올리자 곧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추측된다.

아무(거짓)말 유행에 일조한 대표적 사례가 로로엘스 빵집 글이다.

“로로엘스라고 프렌차이즈인지는 모르겠는데, 다른 빵은 그냥저냥한데 식빵이 진짜 대박이야. 우유 없이 먹어도 빵결에 수분이 있어서 사르륵 녹고, 밤식빵 이런 건 위에 러스크 엄청 올라가고 밤 엄청 많고 초코식빵이던 치즈식빵이던 재료 가득가득 들어가서 진짜 맛있어”

이렇게 글을 올린 뒤 “얘들아 나 사실 거짓말쳤어... 저런 식빵이 먹고 싶어서 지어낸 이야기야..”라고 했다. 그럼에도 글쓴이는 로로엘스는 진짜 있는 빵집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네티즌이 로로엘스를 쳤는데 아무데도 안나온다고 반문하자 “검색까지 할 줄 몰랐어. 사실 그것도 거짓말이야”라며 다소 황당한 거짓을 이어나갔다.

로로엘스 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로로엘스 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이 외에도 ‘폰은정 원글은 다들 웃고 넘기지만 사실 다양한 이유로 올라온 글’이라고 말한 뒤, 이 역시 사실 자신이 거짓말로 분석한 거라고 한다든지, 컵쌀국수 건더기 실화냐며 소고기가 컵라면 안에 들어있는 걸 보여준 뒤, 자기가 넣었다고 하는 등 네티즌들 사이에서 소위 ‘기출변형’(기출문제를 변형해서 올린다는 말로, 커뮤니티에선 원글을 패러디하거나 비슷한 형식으로 올리는 것을 말함)이 자유자재로 올라오고 있다.

파생효과(?)로 이름붙이기 또한 하나의 놀이가 되고 있다. 이 현상의 시발점이었던 ‘폰은정’을 기리며 모든 사례에 ‘폰’을 붙이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빵집 글은 ‘폰로엘스’, 자신의 분석을 담은 글은 ‘폰폰은정’, ‘폰자식 구성(폰은정 + 액자식 구성)’, 컵쌀국수 글은 ‘Pho은정’으로 명명한다. 폰을 접두어로 올라온 모든 게시물은 ‘폰니버스(폰은정 + 유니버스)’로 칭해진다. 대체로 재미있다는 반응이다.

폰니버스 속 또 다른 사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폰니버스 또 다른 사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거짓이 유희가 되는 온라인 문화 현상에 대해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진실만이 콘텐츠가 된다고 생각하는 기성세대와 다르게, 새로운 세대는 페이크(fake)도 수요만 있다면 선호되는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며 “다만 그냥 거짓말이 아닌 재미요소, 등장인물, 서사구조 등이 존재해야 놀이로서 기능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편으로는 거짓말을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심리도 존재한다. 지어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진짜인 것처럼 반응하도록 만드는 것을 하나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커뮤니티의 콘텐츠 축제, 만우절

4월 1일 만우절마다 찾아오는 거짓말 놀이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참신해지고 있다. 이런 흐름에 맞춰 기업들도 만우절 콘텐츠를 짜느라 골머리를 썩기도 한다. 거짓이 공식적으로 용인된 날인 만큼, 각종 커뮤니티에선 날고 기는 거짓말이 유쾌함을 자아낸다.

커뮤니티 만우절 문화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홈페이지 바꾸기’다. 연예인 홈마(홈페이지 마스터)들이 이날 하루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가 아닌 다른 스타 사진을 올리고, 홈페이지 이름마저 바꿔버린다. 최근에는 재미에서, ‘다른 연예인 홈마가 올린 내 아이돌 고화질 사진’을 감상하는 시간으로 의미가 약간 바뀌긴 했다.

예전에 노출된 기사를 다시 올리며 노는 경우도 다분하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에서 갤럭시 S2를 곧 발매한다는 기사를 현 시점에 올리면, 네티즌들은 “금방 망가질 것 같다”, “떨어지면 바로 깨질 것처럼 생겼다”며 댓글을 단다. 이는 갤럭시S2가 튼튼한 스마트폰의 대명사라는 것을 알고 장난을 치는 것이다.

그밖에도 ‘한때 국민아이템이었는데 요즘은 잘 안 신는 신발’이라는 게시물을 클릭하면 ‘짚신’ 사진이 나온다던지, ‘의외로 요즘 면접 볼 때 입으면 안 되는 옷’이라는 게시물의 답은 ‘갑옷’인 등 황당한 게시물도 많이 올라온다.

네티즌들은 해당 게시물에 “요즘은 주인 의식을 갖고 일해야 한다며 오히려 갑(甲)옷을 추천하는 추세다”, “나 때는 다 갑옷 입고 면접 보게 해줬다. 세상 참 팍팍해졌다”며 장단을 맞춘다.

불쾌감을 주지 않는 것이 관건

소위 ‘주작(조작)’ 게시물에 대한 반응은 본래 냉담하다. 네이트판과 같은 사이트에서 올라오는 디테일하며 분노를 돋우는 글이 거짓으로 판명날 경우 네티즌들은 쓴소리를 내뱉으며 두 번 다시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현재의 거짓 콘텐츠는 하나의 밈으로 작용한다.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커뮤니티에 상주하는 시간이 길다는 20대 A씨는 “요즘 올라오는 거짓 콘텐츠는 ‘내가 너희를 속일 것이다’는 의도가 게시글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글을 올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임을 밝힌다”며 “분노를 사는 거짓 게시글은 철저히 속이려고 하며, 속인 게 밝혀져도 그 사실을 부인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30대 직장인 B씨는 현 상황을 보며 “어렸을 때 이런저런 얘기를 한 뒤 사실 ‘뻥이야!’라고 밝혀주는 놀이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유치한 유머였는데 이와 비슷한 현상이 아닌가 싶다”며 “본래 이런 식의 거짓은 옛날부터 놀이로 작용해왔다. 그게 현재의 형태로 발전해온 것”이라고 봤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요즘 거짓 콘텐츠에는 혐오, 차별 등의 정서가 없고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우선한다. 또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하거나, 착취적 관계로 만들지 않는다”고 거짓말과 거짓놀이의 차이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거짓 콘텐츠는 잘 사용하면 화제도 되고 평판, 더 나아가 수익까지 연결될 수도 있다. 요즘 유행하는 페이크 다큐나 페이크 콘텐츠가 그렇다. 사실은 아니지만 일상생활에 있을 수 있을법한 보편적인 상식에 기반을 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걸그룹 (여자)아이들이 최근 선보인 페이크 리얼리티 '유출금지'. 유튜브 캡처
걸그룹 (여자)아이들이 최근 선보인 페이크 리얼리티 '유출금지'. 유튜브 캡처

다만 한창 거짓뉴스로 홍역을 치른 직후라 남발할 경우 강한 불쾌감을 심어줄 수도 있다.

일례로 앞서 말한 ‘폰 시리즈’의 경우에도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있는 시점에서 ‘충원대라고 개강 연기된 기간만큼 등록금을 환불하기로 결정한 대학교가 있다’는 글로 활용된 바 있다. 충원대학교 역시 없는 학교로 밝혀졌다. 대체로 웃어 넘기는 분위기였지만, 실제로 등록금 반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눈살이 찌푸려진다는 반응도 있었다.

가수 김재중 역시 만우절에 코로나19에 걸렸다는 SNS 글을 올렸다가 빈축을 샀다. 코로나19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지만 대중의 시선은 싸늘하다. 김재중을 처벌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온 상태다.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올해 만우절 마케팅은 쉬어가나요

김 평론가는 “가짜뉴스, 유언비어나 루머 형식으로 거짓이 퍼져 가면 큰 피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며 “심지어 지금 시국에서 근거 없는 가짜 정보를 만들면 인포데믹 현상이 다시 초래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