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따처럼’ 소주를 플렉스 해버렸다
‘염따처럼’ 소주를 플렉스 해버렸다
  • 전승현 (jack5404@hanmail.net)
  • 승인 2020.04.2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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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콜라보레이션 한정판 마케팅
출시 과정 자체를 콘텐츠로 젊은층에 어필
음주 ‘힙’하게 보이는 것 경계해야
혜화역 번화가에 부착 돼있는 ‘처음처럼 플렉스’ 포스터와 잠실새내역 번화가에 세워져 있는 입간판. 사진=전승현 더피알 대학생 기자
혜화역 번화가에 부착 돼있는 ‘처음처럼 플렉스’ 포스터와 잠실새내역 번화가에 세워져 있는 입간판. 사진=전승현 더피알 대학생 기자

[더피알=전승현 대학생 기자] 최근 술집이 밀집한 번화가를 방문한 사람들은 가게 앞에 놓인 입간판이나 포스터에 있는 한 남자를 보았을 것이다. 20대를 포함한 젊은층에게는 친숙한 대상인 반면 중장년층에게는 낯선 얼굴이다.

당대 최고 미녀 스타를 알려면 술집에 걸린 소주 광고 포스터를 보라는 말이 있듯이, 기존 소주 모델들은 전 연령을 아우르면서 주 소비층인 남성을 겨냥하는 젊고 아름다운 미모의 여성 연예인들이었다.

이러한 통념을 깬 이는 30대 중반의 나이, ‘동네 형’ 느낌의 데뷔 14년차 래퍼 ‘염따’이다.

그와 친한 또래의 래퍼들은 힙합씬(scene)에서 뮤지션으로 성공하고, 방송에서도 자주 모습을 보이며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다. 반면 염따는 오랜 기간 빛을 보지 못하다가 작년에 큰 이슈가 된 온라인 티셔츠 판매로 젊은층 사이에서 일약 스타가 됐다. 

‘플렉스(FLEX, 1990년 미국 힙합 문화에서 파생, 자신의 성공이나 부를 과시함을 의미한다) 해버렸지 뭐야~’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킨 장본인으로, 특유의 화제성을 바탕으로 음악 또한 주목받게 되면서 염타는 불과 일 년 만에 소주 모델 자리를 꿰 찬 ‘대세’가 됐다.

기존 중장년 소비자에게 다소 낯선 이가 모델로 등장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모델 발탁 과정 역시 유튜브가 계기가 된 것도 독특하다.

염따는 지난달 한국힙합어워즈에서 수상한 기념으로 처음처럼을 마시며 라이브 방송을 했고, 해당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했다. 이를 본 처음처럼 유튜브 공식 계정은 해당 영상에 “나 진심 형 팬이야. 근데 형 한 병이 뭐야… 주소 딱 대. 조만간 축하 선물 FLEX 할게”라는 댓글을 남겼다.

며칠 뒤 처음처럼은 소주 수십 상자를 그의 집 앞으로 보냈고, 이에 SNS와 유튜브에는 재밌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그렇게 해서 염따는 처음처럼과 모델 계약을 맺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젊은층을 공략하겠다는 처음처럼의 확고한 의지가 읽힌다.

염따는 SNS와 유튜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팬들과 소통하는 아티스트다. 단순히 게시물을 올리거나 영상을 업로드하는 것 외에도 라이브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팬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포장 없는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팬들이 남긴 댓글에도 답글을 달아주며 연예인보다는 동네형 같은 느낌을 안긴다. 보통의 연예인보다는 새로운 인플루언서 느낌이 강하다.

젊은층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소통을 잘하거나 친밀한 이미지로 어필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염따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공감대를 형성한다. 과거 기성세대는 저축에 대한 경제관념이 강했다면, 현재의 2030세대는 자기만족을 위한 지출을 아끼지 않는다. 평상시 편의점 도시락을 먹더라도 과감하게 고가의 명품을 사기도 한다.

힙합장르의 뮤지션들이 대개 그렇듯, 염따 또한 돈 자랑을 하며 과시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하지만 돈다발을 들고 명품 매장에 가서 제품을 구매하더라도 집에 갈 때는 쓸쓸히 지하철을 타고 가는 모습이 그의 유행어처럼 플렉스해도 밉지가 않은 이유이다.

처음처럼은 바이럴 마케팅에 있어 염따 자체가 좋은 매개체라 생각했을 것이다. 계약을 맺는 과정부터 포스터의 디자인과 인쇄까지 모든 과정을 라이브로 공유하고, 또 이를 영상으로 업로드하면서 거부감없이 젊은 대중에게 알릴 수 있었다. 처음처럼 공식 유튜브 계정에도 염따가 라이브 방송한 영상을 편집해 메이킹 영상으로 공유했다.

아울러 인스타그램에서는 처음처럼 병뚜껑 안쪽에 새겨진 글자 ‘염, 따, 빠, 끄’를 모아 인증하는 #염따빠끄챌린지가 유행이다. 염따의 유행어인 ‘빠그’는 욕설을 변형한 추임새이다.

인스타그램에 공유된 #염따빠끄챌린지 게시물.
인스타그램에 공유된 #염따빠끄챌린지 게시물.

 

처음처럼과 염따의 콜라보는 기존 소주모델에 대한 통념을 깬 만큼 도전적이고 이례적인 마케팅이다. SNS로 출시 전 먼저 소식을 접했다는 25세 K씨는 “원래 타사 제품을 마시는데, 마침 갔던 술집에서 팔고 있길래 궁금해서 한 번 마셔봤다”고 했다.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인플루언서를 통해 화제몰이를 하며 마케팅적으로도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다. 

재미난 주류 마케팅 사례임은 분명하지만, 음주가 ‘힙’하고 멋있는 모습으로 인식되게 만드는 것은 경계해야 할 필요도 보인다.

염따를 동경하는 이들 가운데는 10대들이 많다. 무엇보다 유행에 민감한 그들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청소년 음주문제와 관련된 사건들을 언론에서 심심찮게 접할 수 있듯, 아직 술에 대한 관념이 없는 청소년들은 알코올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음주에 대한 환상이 생길 수 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SNS에 인증하는 #염따빠끄챌린지는 자칫 술자리를 장려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실제로 염따를 좋아한다는 28세 J씨는 “마셔 보고 싶기도 하고, 챌린지 참여를 통해 인증하고 싶어서 일부러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다”며 “생각보다 뚜껑 뒤 글자가 잘 나오지 않아, 평소보다 더 마셨다”고 말했다.

사회적 파장을 고려할 수 밖에 없는 주류는 마케팅에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제재를 피해가면서도 주목을 끌 수 있는 기발한 마케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히트작이 된 ‘진로이즈백’의 뉴트로와 한정판 마케팅이 그랬고, ‘처음처럼 플렉스’의 염따 마케팅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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