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대기업 상대로 낸 특허소송
개인이 대기업 상대로 낸 특허소송
  • 유성원 (david@jeeshim.com)
  • 승인 2020.04.2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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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원 지식재산 Coaching]
‘플래시 오브 지니어스’로 보는 다윗 vs. 골리앗
미 지재권 특수성 엿보여
영화 ‘플래시 오브 지니어스’의 한 장면. 시간 간격 조절 와이퍼를 둘러싼 특허 소송전을 그렸다.
영화 ‘플래시 오브 지니어스’의 한 장면. 시간 간격 조절 와이퍼를 둘러싼 특허 소송전을 그렸다.

[더피알=유성원] 비가 올 때 자동차 운전자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와이퍼다. 자동차에 와이퍼가 없다면 비 오는 날에는 이곳저곳에서 교통사고가 속출할 것이다. 와이퍼의 가장 편리한 기능은 와이퍼가 움직이는 시간 간격을 마음대로 조절해 비 오는 양에 따라 알아서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요즘은 어느 차량에나 기본 옵션으로 있는 기능이다.

시간 간격 조절 와이퍼를 누가 처음으로 발명했을까?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거의 모든 차량에 시간 간격 조절 와이퍼 기능이 들어가 있는데, 이에 대한 특허권을 가진 사람은 도대체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을까?

몇 년 전 개봉한 영화 ‘플래시 오브 지니어스’(Flash of Genius)는 바로 이 시간 간격 조절 와이퍼를 발명해 미국 최대의 자동차 기업인 포드(Ford)사를 상대로 파란만장한 특허소송을 벌였던 로버트 컨스(Robert William Kearns) 교수에 대한 실화를 담고 있다. 영화는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한 개인이 변호사도 없이 혈혈단신으로 미국 거대기업을 상대로 특허소송에 승리하는 멋진 이야기를 그려냈다. 미국 법정에서 일어나는 특허소송의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일상의 불편을 발명으로

컨즈 교수는 미국의 한 지방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자신의 결혼식 저녁 파티에 샴페인을 따다가 코르크 마개에 눈을 맞아 한쪽 시력을 거의 잃게 되는데, 향후 이 사건이 시간 간격 조절 와이퍼를 발명하는 데 큰 영감을 주는 계기가 된다.

시력이 손상된 후 약 10년 정도 지난 어느 비가 가볍게 오던 날, 컨즈 교수는 포드사의 갤럭시(Galaxie) 모델을 운전하다 쉬지 않고 움직이는 와이퍼 블레이드가 한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은 자신의 시야를 상당히 방해하는 걸 느낀다.

집에 돌아온 컨즈 교수는 한쪽 눈이 불규칙한 간격을 두고 깜빡이면서 눈이 건조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을 보며 영감을 얻는다. 와이퍼 블레이드도 간격을 두고 움직이게 하고, 그 간격을 조절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개발에 매진, 결국 본인이 가진 전기공학 지식으로 설계에 성공한다.

특허출원을 마치고 당시 미국 최고의 자동차 회사였던 포드사의 기술진과 경영진을 만나 직접 와이퍼 블레이드 생산을 담당해 납품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지만 사측 생각은 달랐다.

포드사는 컨즈 교수의 발명에 상당히 놀랐지만 직접 공급 계약을 맺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다만 제품 적합성 테스트를 위해서 필요하니 시제품과 제품 설계도를 넘겨달라고 한다. 포드는 제품이 부적합해 채택할 수 없다는 통보를 컨즈 교수에 건네고, 이후 자사의 대표 스포츠카인 머스탱(Mustang) 신형 모델을 발표하면서 시간 간격 조절이 가능한 와이퍼 기능을 옵션으로 공개했다.

이미 집을 담보로 공장과 제품 원자재를 매입하며 엄청난 손해를 본 교수는 방황 끝에 자신이 보유한 특허권을 갖고 포드사를 상대로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한다. 변호사 선임도 없이 말이다.

미국의 특허소송은 우리나라와 달리 상당히 그 절차가 복잡한데, 한 개인이 이를 다 수행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미국에서 일단 특허소송이 제기되면 미국 소송의 특유의 절차인 증거조사(discovery) 절차가 개시된다. 소송의 승리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절차로써 원고와 피고 모두 상대방으로부터 최대한 유리한 증거를 확보하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한다.

또한, 미국 특허소송에서는 마크맨 청문회(Markman Hearing)라는 특허청구범위의 권리범위를 확정하는 심리를 거치는데, 법원에 의해 진행된다. 이후 사실심리가 진행되는 공판(Trial)절차가 이뤄지고, 이 공판은 판사에 의한 재판(Bench Trial)과 배심원에 의한 재판(Jury Trial)으로 나뉜다. 배심원에 의한 재판은 당사자 일방의 의사로도 진행될 수 있다.

커린 교수는 이 복잡한 소송 절차를 모두 자신의 아들과 함께 직접 수행한다. 그리고 무려 12년에 가까운 소송 끝에 1990년 포드사로부터 무려 1000만 달러(약 123억원)라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손해 배상 판결을 얻어내게 된다.

징벌적 손해배상 필요성

다만, 커린 교수는 법원으로부터 포드사가 고의적인 특허침해(willful infringement)를 했다는 판결을 얻어내지는 못했다. 미국은 고의적인 특허침해인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해 실제 발생한 손해의 3배까지 금액을 올려 선고할 수 있다. 이 점은 대륙법 체계에 속하는 우리나라와 다른 점 중 하나다.

최근 들어 특허손해배상액이 너무 적게 인정돼 특허권자 보호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목소리가 많아 대륙법계에 속하는 우리나라도 지식재산침해에 있어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극 도입하려는 추세이다.

커린 교수는 포드사 외에도 크라이슬러사를 상대로도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 소송에서도 직접 소송을 수행해 무려 1870만 달러의 손해배상 판결을 얻어냈다. 하지만 연이은 GM, 토요타, 메르세데스 벤츠 등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는 어이없게도 소송 기일을 지키지 못해서 패소하게 된다.

커린 교수는 특허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발명과 권리에 확신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 결국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소송에 직접 뛰어들어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거대 대기업을 상대로 승소할 수 있었다. 아무리 작은 개인이나 중소기업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발명에 대한 특허권은 강하고 확실한 무기가 된다. 이 특허권 보호에 힘을 쓴다면 커린 교수와 같은 성공 신화가 불가능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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