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홍보 특혜 시비…용역 입찰 구조적 문제 손봐야
정부 홍보 특혜 시비…용역 입찰 구조적 문제 손봐야
  • 임경호 기자 (limkh627@the-pr.co.kr)
  • 승인 2020.07.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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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신생 기획사가 정부 행사 대량 수주
업계 공분↑ “불쌍한 에이전시들 들러리로 고생시켜”
코로나19 상황서 공공 시장 입찰 경쟁 격화, 전문가 “평가 기준 때문에 중소기업 기회 박탈”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 측근이 설립한 신생 업체가 정부 행사 용역의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진은 탁 비서관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 참석해 행사 준비사항을 살핀 뒤 자리를 뜨는 모습. 뉴시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 측근이 설립한 신생 업체가 정부 행사 용역의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진은 탁 비서관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 참석해 행사 준비사항을 살핀 뒤 자리를 뜨는 모습. 뉴시스

[더피알=임경호·강미혜 기자]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측근이 설립한 신생 기획사가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정부 행사 용역을 대량 수주했다는 13일자 한겨레 보도가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공분을 낳았다.  

‘노바운더리’라는 업체가 2년 10개월 동안 청와대 행사를 비롯한 정부 용역 22건을 수주하며 30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렸다는 내용인데, 이중 5건은 법인 등기를 하기도 전에 맡은 것이어서 뒷말이 무성하다. 청와대 쪽은 관련해 법이나 규정을 어긴 게 없고 내부 감사에서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 

하지만 공공 용역에 참가하는 일반 업체들은 대부분 ‘레퍼런스’(프로젝트 수행 경험을 지칭하는 업계 관용어)를 요구 받는 실정이어서, 기울어진 운동장 속 경쟁이라는 볼멘소리가 꾸준히 제기됐었다. 실제로 조달청 나라장터에 올라오는 용역 입찰 평가표를 보면 상당수가 ‘사업 추진(이행) 실적’을 기본 요건으로 적시하고 있다.

▷관련 기사: 불경기에 공공PR 관심↑…현실은 “듣던 대로”

물론 국가계약법에 따르면 ‘경쟁에 부칠 여유가 없거나 경쟁에 부쳐서는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곤란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수의계약이 가능하다. ‘국가안전보장, 국가의 방위계획 및 정보활동, 군시설물의 관리, 외교관계, 그 밖에 이에 준하는 경우로서 보안상 필요가 있거나, 국가기관의 행위를 비밀리에 할 필요가 있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신생 업체들은 대부분 프로젝트 이행 능력을 공식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이 원천적으로 막혀 있는데, 특정 업체에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정부 주요 행사를 맡긴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중소업체 대표는 “창업하고 솔직히 저런(청와대) 일은 도대체 누가 하나 궁금했다”며 “정부 일의 특수성은 누구나 잘 아는 것이지만, 최고 기관이라면 작은 입찰에서도 공평하고 투명한 것이 정의이고 공정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보안 때문에 공개 입찰이 어렵다면 명목상 가상의 프로젝트를 걸고 1차적으로 선정된 몇 개 회사를 상대로 극비 보안으로 진행하면 된다. 방법을 찾으려고 치면 백 가지도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업체 대표 “청와대 일은 누가하나 궁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코로나19 장기화로 공공 영역에 대한 업계 관심이 그 어느때보다도 높다. 이런 상황에서 법인 등기도 안 된 회사가 정부 대형 행사를 맡아 어렵지 않게 ‘레퍼런스’를 갖췄다는 사실에 업계 종사자들은 분노를 넘어 허탈감마저 느끼고 있다. 한겨레의 해당 기사가 “과장보도”라는 청와대 해명에도 불구하고, 업계 안팎에서 특혜 의혹 자체에 강한 유감을 표하는 이유다. 

업계 다른 회사 대표는 “어차피 수주자가 정해져 있는 발주라면 차라리 수의계약으로 진행하는 것이 낫다. 괜히 감사를 피하고 형식을 갖춘다고 경쟁발주해서 불쌍한 에이전시들 들러리로 고생시키고, 회사 망하게 만드는 것 보다야 양심적”이라는 말로 에둘러 비판했다.  

공공부문 홍보 용역은 신생 업체에 '허들'이 존재한다. 화성시문화재단에서 나라장터에 게재한 ‘2020 라이징스타를 찾아라’ 운영 및 홍보 대행 입찰공고의 자체평가표. 실적이나 신용평가 등으로 사실상 신생, 소규모 에이전시가 조건을 충족하기 쉽지 않은 항목이다.
공공부문 홍보 용역은 신생 업체에 '허들'이 존재한다. 화성시문화재단에서 나라장터에 게재한 ‘2020 라이징스타를 찾아라’ 운영 및 홍보 대행 입찰공고의 자체평가표. 실적이나 신용평가 등으로 사실상 신생, 소규모 에이전시가 조건을 충족하기 쉽지 않은 항목이다.

업계 종사자들은 높은 진입장벽에도 불구하고 공공 발주 영역을 놓칠 수 없는 시장이라고 말한다. 신생이나 소규모 에이전시에게는 더욱 그렇다. 당락에 무관하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토양을 갖췄기 때문이다. “정부 발주는 완전 오픈”이라는 이야기와 “가보니 아니더라”라는 성토가 공존하는 이유다.

민간 기업은 주로 합을 맞추는 협력사 제도가 존재한다. 또 사전에 실적과 재무상태 등을 평가서로 받아보고 요건을 갖춘 회사들에 입찰 자격을 부여한다. 그러다 보니 진입 가능성이 일부 대형 에이전시에 열려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공공은 표면적으론 열린 장터다. 

계약 안정성 면에서도 공공 발주는 높은 점수를 받는다. 정부를 상대로 한 계약은 대금 처리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쉽게 말해 돈 떼일 염려가 없다. 경기 회복을 점치기 힘든 올해는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선금 처리가 잦았다는 말도 나온다.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정확한 계약 이행은 다음 한 수를 위한 요긴한 발판이 된다.

반면 민간 기업은 계약과 계약금 지급 시기 사이에 몇 개월 공백이 발생하기도 한다. 어음을 주는 경우도 있다. 기업 상황에 따른 변동성을 ‘상수’로 고려해야 한다. 당장 유동성 자금이 필요한 에이전시에게 이 같은 관행은 큰 타격으로 다가온다.

물론 공공 용역 발주를 기피하는 시각도 있다. 에이전시 업계의 팀장급 실무자는 “(조달청) 나라장터에 올라오는 것들을 보기도 하는데 대개의 경우 예산에 비해 과업이 너무 많고 수익도 남지 않는 구조라 거의 안 들어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공PR 경험이 풍부한 B사 대표는 “일반화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기업에 비해 수익성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컨설팅이나 기간, 규모 등 프로젝트의 어떤 면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판단을 달리 할 수 있다”며 “올해는 기업 일이 줄어드니까 정부 일을 피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제 개선에 회의적…업계 내부 논의로는 해결 어려워

PR업계는 문제 해결에 회의적이다. 개선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도 굳어진 문제를 풀 실타래를 찾지 못하겠다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현재 지자체 등은 기획재정부나 행정안전부 등의 예규에 따라 입찰·계약 집행기준을 정하고 있다. 기재부 산하로 공공 용역의 계약 관리와 감독을 담당하는 조달청의 경우, 나라장터를 통해 발주처의 제안요청서를 게시하는 역할에 그쳐 관행 개선을 위한 적극적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정부가 소상공인 등의 권익 보호를 위해 3년 전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시킨 바 있지만 정작 PR업계의 중소업체 문제는 공유되지 않는 모양새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 공공기관을 관리하는 혁신행정담당관 마경준 사무관은 “공공기관 발주까지 일괄적으로 파악하고 있지는 않다”며 “공공기관 종류, 구분에 따라 기재부에서 직접 관리하는 곳도 있고 부처에서 자체적으로 하는 데도 있고 워낙 다양해서 일반적으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하면 말씀드리기 곤란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공공소통 전문가인 이종혁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구조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업계 내부 논의로는 진입장벽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시각이다.

이 교수는 “프로젝트 입찰을 진행할 때 사람으로 평가하면 가장 좋겠지만 회사를 평가 주체로 삼는 현행 제도에서 실질적인 변화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프로젝트 관리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업 규모만 따지는 평가 기준 때문에 기회를 못 얻는 중소기업의 기회 박탈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또 “에이전시 규모로 업체를 선정하는 관행 속에는 (입찰을 따낸 이후) 프로젝트 관리를 결국 주니어급 인재가 맡게 되는 한계가 있다”며 “소규모 에이전시에 프로젝트를 맡기더라도 매니저급 이상의 인재가 붙어서 업무를 잘 해낼 수 있다면 기회를 줄 가치는 충분하다”고 부연했다.

다만 이 교수는 이 같은 환경 속에서 “에이전시들의 제안서 수준이 낮은 것도 많다”며 “심사기준 등에 의해 창의력이 떨어지는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력이 없는 제안서를 제출하는 업계의 문제도 있다”고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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