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징벌적 손배제, 이번엔 통과?
언론사 징벌적 손배제, 이번엔 통과?
  • 안선혜 기자 (anneq@the-pr.co.kr)
  • 승인 2020.07.2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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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등장 이후 수차례 무산, 21대 국회서 정청래 의원 재발의 주목
전문가 “권력자 아닌 개인 피해 구제 위한 차원서 접근돼야”
최근 10년간 최고배상금 증가 추세, 손배 평균 인용액은 낮아져
21대 국회에서 언론에 최대 3배까지 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자는 법안이 발의됐다.
21대 국회에서 언론에 최대 3배까지 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자는 법안이 발의됐다.

[더피알=안선혜 기자] 지난 6월9일 21대 국회에서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자는 법안이 발의됐다. 80%에 달하는 찬성 여론 속 정치권의 불 지피기는 지속되는 상황이다. 

과거 무산됐던 수차례 시도와는 다르게 이번엔 제대로 불을 지필 수 있을까. 자본 권력으로 분류돼 있으나 악의성 띤 보도에 약자가 되곤 하는 기업 홍보인에게도 주목할 거리다.

“언론에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하려 한다는 데 어때?”라는 질문에 돌아온 주변 지인의 대답은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난 찬성”이었다. 방송 한 번으로 사업이 망하고 생활이 망가진 사람에 대한 구제는 어떻게 하냐는 생각이었다.

여기에는 과거 소비자고발 프로그램과 황토팩 사업을 하던 배우 간 빚어진 분쟁의 기억이 크게 작용한 듯했다. 중금속 황토팩이란 오명은 벗었지만, 결국 사업은 접고 담당 PD는 상당성의 원리(사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주어지는 면책 조항)를 인정받아 처벌을 피했던 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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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디어오늘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견해에 81%가 찬성하는 압도적 결과가 나왔다. 실질적 피해에 대한 구제 장치 내지 언론에 대한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이같은 결과를 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번에 발의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을 허용하는 걸 골자로 한다. 언론사가 악의적으로 인격권을 침해한 행위가 명백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이같은 손배를 명할 수 있다.

정 의원은 법안을 발의하며 이미 국내에서도 손해의 3배 이내에서 배상책임을 지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조물 책임법, 개인정보 보호법, 공익신고자 보호법, 환경보건법,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등에서 손해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책임을 지도록 명시하고 있다.

형사처벌 폐지하고 민사에 집중 의견

언론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이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4년 참여정부 당시 언론피해구제법을 논의하며 등장했으나, 최종적으로 법안에 담기진 못했다. 19대 국회서도 정 의원이 유사한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했지만 폐기됐고, 지난해 10월 민주당 허위조작정보대책특위의 시도도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이번 시도 역시 폐기 수순을 밟을지 입법으로까지 연결될지 알기 어렵지만, 정치권에서 꾸준히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은 명확해 보인다.

기자협회 등 현업 언론단체들은 우려를 표하는 기류가 지배적이다. 자칫 정치권의 입맛에 맞춰 언론 재갈 물리기가 될 수 있는 데다, 대안언론이나 군소언론이 위축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해외에서는 징벌적 손배로 인해 언론사가 문을 닫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중소언론들은 알아서 몸조심하게 되는 이유다.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려면 언론에 민·형사적 책임을 동시에 묻는 현행 제도에 대한 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손해배상액을 높여 실질적 피해 구제 효과를 높이는 대신 외국처럼 형사 대신 민사 중심으로 가자는 의견이다.

지금의 문제 제기가 개인의 피해 구제에 방점이 찍힌 게 아닌 정치권의 언론 견제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존재한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2004년부터 도입을 주장해왔고, 지금 논의에서도 기본적으로 도입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누구를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이란 화두를 꺼낸 것인지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권력자가 아닌 개인 피해 구제를 위한 차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입법 가능성이 있겠나. 정치적 사감(私憾)으로 악의성 있는 기사를 판단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며 “이미 언론에 대한 손해배상 제기가 많이 이뤄지고 있고, 단위도 점점 커지는 방향으로 법원 판결이 나고 있다. 지금도 심각한 사안에 대해서는 억대 판결이 나오는데, 굳이 징벌적 손배 제도까지 도입해야 하나 싶다”는 의견을 전했다.

실제 언론중재위원회에서 매년 발간하는 ‘언론판결분석보고서’를 살펴보면 근 10년인 2009년에서 2018년까지 법원이 부과한 배상금 최고치는 점진적으로 느는 추세다. 중간중간 널뛰기를 거쳐 최근 4억원대까지 올라왔다.

언론판결 분석 보고서

*중앙액: 사례를 순위대로 배열해 한 가운데 위치한 값. 짝수인 경우 한 가운데 위치한 두 개 값의 평균 *최빈액: 전체 사례 중 건수가 가장 많은 값. (출처: 언론중재위원회) 이미지 클릭시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액: 사례를 순위대로 배열해 한 가운데 위치한 값. 짝수인 경우 한 가운데 위치한 두 개 값의 평균
*최빈액: 전체 사례 중 건수가 가장 많은 값 / 출처: 언론중재위원회 (이미지 클릭시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16년 이례적으로 33억원의 배상 판결이 내려졌으나, 방송사에 단독으로 부과된 금액은 아니다. 경쟁사의 불법 마케팅에 허위방송이 활용됐다며 제기한 소에서 함께 피소당한 대기업에 공동으로 선고된 금액이다. 방송사에는 공동불법 행위자로 배상책임을 부과했다.

양극화된 언론사 배상금, 징벌제가 ‘보도피해’ 줄일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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