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어캣 기자의 트잡이] 노동요의 시그니처
[미어캣 기자의 트잡이] 노동요의 시그니처
  • 정수환 기자 (meerkat@the-pr.co.kr)
  • 승인 2020.08.04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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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의 새로운 해석…신남, 배속, 반복재생으로 디지털 문화돼
실제로 실업률 낮추기도, 기업 마케팅도 확대일로

고개를 빼고 이리저리 살피는 모양새가 비슷하다고 하여 붙은 별명, 미어캣. 본 캐릭터를 살려 ‘트렌드+드잡이(서로 머리나 멱살을 움켜잡고 싸우는 짓)’를 의미하는 트잡이 코너를 반강제로 시작합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기에 저도 360으로 돌아보면서 격정적으로 트렌드의 멱살을 움켜잡고 싸우며 최신 트렌드를 발굴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함께 잡이를 위한 제보 부탁드립니다. 물론 미어캣(meerkat@the-pr.co.kr)으로 말이죠.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MZ의 노동요편.

~~~(노래 흘러 나오는 중) 난 몰라 난 몰라 천 번 만 번. 말해줘도 몰라 몰라♬(오렌지캬라멜 - 마법소녀 中)~~~ 

이 소리는 한국의 대학생, 젊은 직장인들이 일에 집중하고 싶을 때 귀에 때려넣는 소리로, 빨라지는 비트에 반응하는 심장박동을 이용해 과제 및 작업을 신속히 처리하는 데 사용됩니다. 

[더피알=정수환 기자] 노동요가 부활했습니다. 그것도 MZ세대들에게요. 흥겨운 가락의, 모두가 입을 모아 부르는 소중한 문화유산을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그랬다간 층간 소음으로 윗층과 아랫층의 소리 많은 아우성을 보게 될 테니까요. 요즘 사람들의 노동요는 부르는 게 아닌, 듣는 것입니다.

즉흥적으로 흥얼거리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내가 끝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체크하고 마음을 가다듬은 후 비장하게 귀에 이어폰을 꽂습니다. 내가 이 분량만큼은 오늘 조져야일이나 말이 허술하게 되지 않도록 단단히 단속하다는 뜻의 표준어겠다는 생각으로 듣는 게 바로 MZ의 노동요입니다.

그런데 의문이 듭니다. 음악을 들으며 일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익숙했던 모습인데, 대체 어느 부분이 다르기에 ‘노동요’라는 이름으로 달리 칭해지는 걸까요? 저 미어캣 기자가 그 과정을 두리번두리번 살펴보았습니다. 

1. Sake L이 지정한 노동요의 조건

현대판 노동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Sake L’이라는 유튜버입니다. 그는 2015년, ‘노동요’와 ‘이마트’라는 단 두 개의 영상을 올렸습니다. 초반에는 미진한 반응이었으나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흥하며 결국 될놈될(될 놈은 어떻게든 된다)의 표본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Sake L의 노동요. 엘모와 투하된 원자폭탄이 어쩐지 긴급한 느낌을 자아낸다.
Sake L의 노동요. 엘모와 투하된 원자폭탄이 어쩐지 긴급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이 영상들은 향후 하나의 밈(meme)이 된 노동요의 기준을 정립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그 파급력이 강했습니다. 그 첫 번째 기준, 바로 ‘노동요’ 영상에 담긴 배속입니다.

‘노동요’의 경우 오렌지 캬라멜의 ‘마법소녀’부터 시작해 샤이니의 ‘링딩동’, 투애니원의 ‘내가 제일 잘 나가’ 등 신나는 댄스음악들이 50분 동안 원곡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녹음이 돼 있습니다. 안 그래도 신나는 노래들이 더 격정적으로 신나지는 셈이죠.

두 번째 기준은 ‘반복재생’입니다. ‘이마트’라는 영상은 말 그대로 이마트 시그니처 송을 틀어놓은 영상입니다. 다만 그 영상의 길이가 5시간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점점 빨라지는 이마트 시그니처 송이 5시간 동안 반복됩니다.

마지막은 Sake L의 유튜브 시그니처 탬플릿인데요. 초점을 잃은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하는 캐릭터 엘모와 원자폭탄 투하 장면이 메인입니다. ‘이마트’ 영상의 경우 이마트의 시그니처 송이 빨라질수록 엘모가 점점 다가오며, 종반에 다다르면 결국 눈만 보이게 됩니다.

4시간 58분 정도를 재생한 '이마트'. 엘모가 너무나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4시간 58분 정도를 재생한 '이마트'. 엘모가 너무나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일할 때 저 영상들을 틀면 마치 마감이 다가오는 느낌이 들어 일의 효율이 올라간다는 간증이 이어지고저 역시 이 글을 쓰면서 듣고 있는 중입니다. 들썩들썩, 다가오는 엘모와 원자폭탄 역시 급박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이야기 속에 영상은 대히트를 칩니다.

2020년 8월 현재 ‘노동요’는 조회수 1620만회, ‘이마트’는 859만회를 기록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유튜버들이 위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며 다양한 자신들만의 노동요 영상을 만들고, 그렇게 하나의 밈으로 정착되었습니다.

여담으로, Sake L은 위 두 영상을 끝으로 더이상 그 어떤 활동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신비주의 때문인지 사람들은 Sake L을 신격화하며 또 하나의 놀이를 만들어내기도 했는데요.

가령 ‘sake L은 뽀로로가 노는 것을 제일 싫어하게 만들 수 있다’, ‘sake L은 남의 떡이 더 커보였다. 그러자 남의 떡이 알아서 작아졌다’, ‘Sake L은 낫 놓고 ㅎ자까지 알았다’ 등 찬양(이라 쓰고 주접이라 읽는) 댓글을 남기는 것입니다. 혹시 인스타그램에 주접 글을 남기고 싶은데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곳의 댓글창에서 영감을 얻어보세요. 노다지가 따로 없습니다.

이 Sake L이 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다양한 사람들이 취재를 요청했으나, 현재 그 어떤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고 하네요.

2. 아이돌 팬덤의 새로운 영업 수단

결국 노동요는 신나고 빨라서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댄스와 춤을 담보로 하는 아이돌 음악의 경우 이 조건을 충족하기가 쉬운 편입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면 ‘OOO 이번 신곡 노동요로 딱이다’, ‘OOO 들으면서 파워워킹하면 살 빠질 것 같다’ 등 추천을 빙자한 영업글이 종종 올라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혹은 자신의 노동요 리스트를 공유한다며 여러 노래를 올리고, 서로 노동요를 추천받는 모습도 흔하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연예기획사 SM에서는 아예 팬들을 위해 자사 가수들의 노래로 꾸려진 노동요 모음집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SM에서 만든 노동요 영상. 자사에서 나온 노래들로 이뤄져있다. 유튜브 캡처
SM에서 만든 노동요 영상. SM에서 나온 노래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유튜브 캡처

요즘 ‘문명특급’이라는 유튜브를 통해 다시 흥하는 예전 노래들도 ‘노동요’의 밈을 타고 있습니다. 유키스, 틴탑, 제국의아이들 등 과거를 풍미했던 그룹들의 노래가 재주목을 받으며 노동요로도 손색이 없다는 평입니다.

여기서 노동요의 의미는 중의적이라고 하는데요. 실제로 일할 때 들으면 좋은 노동요의 의미도 있지만, 특정 아이돌 멤버가 노래 안에서 노동을 많이 해(예를 들어 춤도 추고 노래도 라이브로 부르는데 파트가 많다던지) 붙여진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3. 때로는 직설적인 가사가 노동 의욕을 고취한다

여태까지 알아본 사례들이 모두 그저 신나는 데 의의를 뒀다면, 소위 뼈 때리는(?) 가사들로 노동 의욕을 고취하는 노래들도 있습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Work Bxxch’(욕이라 완전한 단어를 쓸 수 없습니다)가 대표적인 노래입니다. ‘왜 이 일을 하고있나’, ‘무엇을 위해 일을 하나’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는 퇴사 위기를 꾹꾹 억누르며 일하고 계신 분들이 많을 텐데요. 다소 직설적인, 그러나 현실적인 가사로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말합니다.

“You want a hot body? You want a Bugatti? You want a Maserati? You better work bxxch (핫바디 원하니? 부가티 원하니? 마세라티 타고싶니? 그럼 일해 이 XX야)”

“You wanna live fancy? Live in a big mansion? Party in France? You better work bxxch (멋지게 살고 싶어? 큰 맨션에 살고 싶어? 프랑스에서 파티? 그럼 일해 이 XX야)”누나 알겠습니다. 열심히 일할게요...

실제로 위 노래가 발매된 뒤, 우연일 수도 있으나 미국의 실업률이 내려갔다고 합니다. 일하기 싫은 순간 이 노래를 들으며 버티고 있다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꽤 나올 정도라고 하니, 역시 노래의 힘은 만국공통인가 봅니다.

Work Bxxch 발매 후 실제로 실업률에 영향을 끼쳤다는 기사.
Work Bxxch 발매 후 실제로 실업률에 영향을 끼쳤다는 기사입니다.

그 밖에도 리암 페인의 Stack it up도 비슷한 의미로 요즘 뜨고 있는 노동요라고 합니다. 가사의 면면을 한 번 들여다 보실까요.

“그러니 많은 돈을 원한다면, 어쩔 수 없어. 그에 맞게 일을 해야지. 아무도 너를 위해 대신 일을 해주지 않으니까. 내겐 꿈과 시간, 모두 있어. 하지만 이 두 가지로 모든 걸 이룰 순 없어. 그래서 난 열심히 돈을 벌어. 싫어도 어쩔 수 없지. 일을 해야만 해. 그래, 내 머릿속엔 온통 돈 생각뿐이야”

직장인들은 누구나 옷 어딘가, 가방 어딘가, 혹은 서랍 어딘가에 사직서를 품고 있다고 하죠. 사직서를 그 안에 좀 더 고이 두고, 저희 모두 슬프지만 이 ‘노동요’들을 듣고 다시 힘내서 일을 좀 더 해볼까요. 더 멋지고 당당하게 사직서를 꺼낼 그 날을 기다려봅니다.물론 저는 행복한 회사생활을 하고 있답니다(편집장님 보고 계시죠?)

미어캣Pick! 노동요 : 트와이스 - Chillax

 

사실 날짜로만 본다면 요즘이 가장 휴가가기에 적기죠. 하지만 영 휴가기분이 안 나는 것 같습니다. 위드코로나, 코로나와는 여전히 함께하고 있으며 설상가상 장마로 미친 듯이 비가 쏟아져 어딜 가기도 무서운 요즘입니다.

저는 그래서 좀 더 나은 날짜를 물색 중인데요. 몸은 계속 지금 쉬어달라고 외치지만 떠날 수 없는 지금의 처지를 잘 담아낸 곡이라 요즘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가사를 살펴보실까요!

“바빠, 오늘은 피곤해, 입에 붙어버린 그 말. 딱 일주일만 쉬고 싶은데, 어디론가 툭 떠나고 싶은데”

“여행이 아니라도 아무 생각 없이 쉴래. 지쳐 버리기 전에 나 충전이 필요해. 내 맘이 말해, 좀 천천히 걷고 싶대. 돌아볼 시간이 필요해. 오늘 하루만 아무것도, 생각 안 할래 아무것도. 오늘 할 일은 내일로, 내일 할 일은 모레로”

듣다 보면 위로도 되고, 떠나고 싶은 마음도 커집니다. 그래도 지금 떠날 수 없는 만큼 원기옥을 잘 모아 시기적으로 더 알맞은 때가 나타났을 때, 그 행복을 만끽하겠습니다. 참는 자에게 복이 온다고 하잖아요. 

4. 기업이 그리는 노동요의 세계

리스크를 감내해야 할 밈도 아니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꾸준히 회자되고 있으니 기업 입장에서 마다할 필요가 없겠죠. 역시나 기업, 미디어도 사용 중입니다.

가장 활발한 방식은 ‘3. 때로는 직설적인 가사가 노동 의욕을 고취한다’입니다. 다만 앞서 살펴 본 미국의 노래들은 정말 직설적이었다면, 우리나라는 유교의 나라답게 ‘공감’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춥니다. 그렇게 아예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 직장인들의 뼈를 때리기도 하고, 때로는 위로하기도 합니다.

스튜디오 룰루랄라가 제작한 유튜브 채널 ‘워크맨’은 지난 7월 동명의 노래를 내놓았는데요. ‘이래도 돼? 어떻게 일을 해도 해도 왜 왜 줄어들지 않아’, ‘나도 원한다고 휴식. 일 지긋 지긋해. 뒤숭숭해 맘이. 피땀 뻘뻘. 녹아버릴 거 같애’, ‘티끌 more 티끌 모아 모아 더 시급 more 시급 more more 더’ 등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어봤을 이야기를 풀어내며 마치 ‘내 얘기 같다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런 흐름에 노동, 구직 플랫폼이 빠질 순 없겠죠. 알바몬도 ‘하게된다된다 송’을 발표했는데요. 마치 주문 같은 단순한 노래가사로 노동자들을 위로하고, 의욕을 고취하겠다는 의도를 담았습니다. 알바몬 캐릭터 ‘모니’가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며 자사 캐릭터의 홍보도 겸하는 모습입니다.차라리 박미경님의 '아아~~ 알바몬'만 연속재생하는 게 노동요로는 더 나을 것 같은데... 

알바몬 하게된다된다송.
알바몬 하게된다된다송.

그밖에도 현대자동차의 ‘르르르’ 역시 ‘불만 끝에 낙이 온다’는 콘셉트로 다양한 영상을 올리고 있는데요. 여러 불만송 중 ‘꼰대’를 저격하는 노래를 통해 우리 마음속에 ‘사이다’를 날려주고 있습니다.

다만 조금 아쉬운 흐름이 있다면, ‘1. Sake L이 지정한 노동요의 조건’을 충족하는 기업의 움직임이 생각보다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최근 링거워터의 ‘링티’가 새 TV광고를 공개하며 샤이니의 ‘링딩동’을 패러디했고, 이 노래를 1시간 동안 연속재생한 노동요 버전을 제공하긴 했습니다. 알바몬에서도 하게된다된다송을 배속해서 내놓았군요. 하지만 브랜드에서 나서서 신나고 빠른 노동요를 제공하는 경우는 이 외에 보이질 않았습니다.식빵(연경) 누나 거기서 왜 그러고 있어요ㅠ

링티의 1시간 연속재생 '링티송' 영상. sake l의 템플릿을 패러디했다.
링티의 1시간 연속재생 '링티송' 영상. sake l의 템플릿을 패러디해서 재미를 줬네요. 

버X킹, 맥XX드, 홈XX스, 야X자 등등 지금 당장 생각만 해도 떠오르는 기업들의 시그니처송이 많은 데 말이죠. 소극적인 활용이 조금은 아쉬울 따름입니다.빅맥송 한 시간 연속재생 원해요. 4딸라4딸라4딸라 붐빠도 연속재생 주세요!

노동요는 예로부터 생활의 근간입니다. 일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역할에서 더 나아가 일의 효율을 올려주기도 하죠. 일이라는 게 존재하는 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노동요 사랑은 계속될 터이니 많은 브랜드들께서는 노동요 코인에 탑승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물론 노동요를 제공하는 회사라면 건전한 노동 문화를 담보로 해야하는 건 당연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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