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트 파이터들의 위기관리 이론 (1)
스트리트 파이터들의 위기관리 이론 (1)
  • 정용민 (ymchung@strategysalad.com)
  • 승인 2020.08.20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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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민의 Crisis Talk]
교과서·이론서가 주는 현장의 괴리감
이슈는 이슈로 잊혀진다?…‘정신승리’ 중요

[더피알=정용민] 위기관리에 있어 정답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 어떤 훌륭한 이론서도 눈앞에 맞닥뜨린 위기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자조하는 경우도 많다.

사정이 이러하니 일선에서 위기관리에 상당 시간을 보내는 기업 내부 담당자들의 평소 이야기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기회가 필요하다. 그 이야기들을 ‘스트리트 파이터들(street fighters)의 위기관리 이론’이라 이름 지어 정리해 본다.

일선에서 위기와 싸우는 실무자들 이야기이니 일부 상식과 다른 이론(?)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미리 감안하고 보자.

사전 위기관리보다 사후 위기관리가 더 편하다. 때때로 사후 위기관리가 더 싸다.

사전 위기관리처럼 경계가 넓고, 여러 부서가 얽혀 있는 주제가 없다. 정확하게 사내에서 누가 위기관리 매니저 역할을 해야 하는지도 정해져 있지 않다. 업무상으로는 정해져 있다 해도 권한이 없거나 약하다.

사전 위기관리라는 개념은 좋은데, 일단 위기가 터지면 사전에 진행했던 모든 노력들이 물거품이 된다. 10년에 한 번 발생될까 말까 하는 위기를 가지고 정기적으로 진단하고 대응 훈련하고 매뉴얼을 수정해가는 것도 소모적으로 느껴진다. 차라리 실제 위기가 발생되면 그때 가서 관리 노력을 하는 것이 더 편하고 저렴할 수 있다.

위기관리보다 사과가 더 쉽다. 때로는 사후 사과가 더 효과적이다.

위기의 핵심 분야를 들여다보면 거의 대부분 상당한 예산이 든다. 개선이나 재발방지가 제대로 되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일단 위기관리를 위해 사과를 하고 개선과 재발방지 약속은 하지만, 대체 누가 그 예산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인가는 항상 숙제다. 사전에 그런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어서 위기관리를 한다는 것은 더욱 말이 안 된다. 그래서 위기가 발생되면 사과가 가치를 빛낸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을 수 있다고 하지 않나?

잘하건 못하건 그 평가는 결국 정신승리에 기반한다. 때로는 멋진 정신승리가 진정한 위기관리보다 낫다.

위기관리를 고생해서 했는데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위기관리 문제를 지적하면 그보다 억울한 게 없다. 위기보다 억울한 게 위기관리에 대한 잘못된 평이다.

반대로 제대로 위기관리를 한 것이 없는데도, 여기저기에서 잘했다는 평을 들을 때도 있다. 그런 경우 경영진부터 사내 분위기는 확 바뀐다. 그래서 일단 위기가 발생하면 위기관리를 하고 그 내용을 몇몇 기자에게 알려줘 긍정적인 평가 기사를 내보내기도 한다. 그걸 통해 VIP께서 잘했다 한 마디 하면 그 위기관리는 성공한 것일 수 있다.

망신이나 수치스러움은 길게 보면 순간이다. 견디는 게 곧 위기관리인 경우도 많다.

맷집을 기르라는 말도 하지 않나? 일단 거의 모든 위기는 발생되면 일정 기간 각종 비판과 욕설을 받는 것은 기본이 됐다. 그런 통과의례가 없으면 사실 위기도 아니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망신이나 수치스러움을 견디지 못하는 기업은 더 위험해질 수 있다. 그렇다고 기업이 뻔뻔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참고 일정 기간을 견디라는 의미다. 외부의 부정적인 여론에 너무 단편적으로 반응하다 보면 전략적이지 못한 성급함을 드러낼 수도 있다.

논란이나 논쟁은 가만히 있으면 사흘을 못 넘긴다. 그래서 위기관리의 시간은 우리 편이다. 이슈는 이슈가 밀어낸다. 위기는 다른 위기로 대체된다. 물론 논란이나 논쟁에 대해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유효할 때도 있지만, 그것의 성격을 보고 일정 시간 지켜보는 것이 유효할 때도 있다. 온라인과 소셜미디어 상에서는 매시간 계속해서 새로운 논란이 이어지고 잊혀간다. 지나고 보면 그때 그냥 그 논란을 좀 더 지켜보았더라면 지금보다 결과가 나았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논란이나 논쟁에 있어 시간이 우리편이라는 생각을 좀 하면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

위기 때 평판을 따지는 건, 불난 집에서 꽃병을 챙기는 짓이다. 살아남는 게 우선이다.

일단 살아남아야 나중의 위기도 관리할 수 있고, 명성이나 평판도 회복할 기회가 온다. 특히 평판이나 명성은 위기가 발생했을 때 관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일단 위기가 발생되면 명성이나 평판은 훼손이 된다. 그 훼손 수준을 어느 정도에 머무르게 하는 가는 신경 써야 하겠지만, 너무 결벽증을 가지면 위기관리 과정만 힘들다. 어떻게 해야 살아남아 연속성을 가지고 갈 수 있는지 먼저 생각하는 것이 최종적으로 명성과 평판을 가다듬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방법일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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