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대 논란이 남긴 것
공공의대 논란이 남긴 것
  • 안선혜 기자 (anneq@the-pr.co.kr)
  • 승인 2020.10.1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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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 스터디] 사전 협의 사라진 정책, 국민 공감 없는 투쟁
한 전공의가 지난 9월 10일 서울 광진구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본관 앞에서 공공의대 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한 전공의가 지난 9월 10일 서울 광진구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본관 앞에서 공공의대 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더피알=안선혜 기자] 의대 증원·공공의대 설립 등을 놓고 정부·여당과 의사단체 간 빚어진 갈등은 이익집단과 정부 간 협상 시 살펴봐야 할 중요 요소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함께 보면 기사: 의사가 국민의 마음을 훔치는 방법

첨예한 갈등이 한 달여의 진통 끝에 임시 봉합됐지만 여진은 지속되고 있죠. 

국시 거부에 나섰던 의대생들의 재응시 여부를 놓고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의대생 직접 사과와 국민 지지를 요구하고 있고, 의협은 대국민 사과 계획이 없음을 밝히며 맞서는 모습입니다. 

갈등관리 및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이번 사안을 분석해보았습니다. (*각 전문가들의 의견 전문은 순차적으로 선보일 예정)
 

정책 당사자들은 필연적으로 이익집단 성격을 띨 수밖에 없지만, 자신들의 주장을 사회적 가치와 결합시켜야 한다. 밥그릇을 내보이는 순간 여론에서는 진 거다. ▷전문 보러가기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정부가 찌르고, 의사단체는 밥그릇 싸움’하는 것 이상의 건강한 논의는 부재했다. 전공의가 투쟁 과정 중 청년과 연대하겠다며 정치 투쟁적 성격으로 선회했는데, 이건 ‘악수’였다. ▷전문 보러가기

김기훈 코콤포터노밸리 대표
 

이번처럼 상대 정체성을 공격하는 수준으로 가면 후유증이 남는다. 의협은 반정부 투쟁을, 정치권에선 의사에 파렴치한 이미지를 덧씌우는 경향이 있었다. 감정이 상하면 패배를 쉽게 수용하지 못하게 된다. 해결 과정이 아쉽긴 해도 합의로 끝냈다는 건 높이 평가해주어야 하지 않나 싶다. 진짜 힘으로만 갔다면 훨씬 후유증이 심했을 것이다. ▷전문 보러가기

백도현 갈등조정센터 대표
 

‘덕분에’ 이야기를 하며 느닷없이 꺼내든 공공의대 정책은 코로나19 피로감에 몰려있는 의료계를 감정적으로 (투쟁적으로) 자극했다고 본다. 지자체 추천, 시민단체 추천 등으로 학생 선발을 진행한다는 계획은 불필요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정말 실행하겠다는 의지를 가졌는가 싶을 정도의 급조된 정책발표라는 느낌이다. ▷전문 보러가기

한미정 한양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막판 의료계 내분은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는 마이너스일 수밖에 없다. 사전에 조율되지 않은 목소리를 내는 건 국민들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된다. 메시지 파급력도 떨어지게 된다. 의대 교수들은 중재자 입장에 섰으나, 제자를 걱정하기보다는 본인들의 입지가 불리해짐에 따라 제자들을 방패막이로 삼은 듯한 모습이기도 했다. ▷전문 보러가기

조삼섭 숙명여대 홍보광고학과 교수
 

전세계가 코로나19로 불안한 가운데 우리 정부와 의사협회 간 골 깊은 의료 정책을 두고 갑작스럽게 한판 힘겨루기가 진행됐다. 정작 중요한 오디언스(audience)들에게는 공감도 받지 못한 채 약 1개월 간의 갈등을 성급하게 봉합하고 수술 일정만 연기한 결과가 돼버렸다. ▷전문 보러가기

박영숙 플레시먼힐러드 코리아 대표

 

▶이슈 톺아보기

지난 7월23일 보건복지부가 ‘의대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당정협의회를 거쳐 확정한 방안으로, 2022학년도부터 향후 10년 간 의과대학 정원을 연 400명씩 총 4000명을 늘리고, 이중 매년 300명은 지역 의사로 양성한다는 계획이었다. 지역별 편차가 큰 소아외과, 흉부외과, 응급의료과, 산부인과 등 의사 인력 수요를 해결하자는 취지다.

선발된 이들은 정부와 지자체서 제공하는 장학금을 받는 대신 졸업한 대학이 있는 지역에서 10년의 의무복무 기간을 갖도록 했다. 나머지 100명은 기피 진료과목에 특화하거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치료제 개발 등 임상의사 양성과정으로 분리해 교육을 진행키로 했다.
 

▶핵심 쟁점은?

의료계에선 의사 숫자만 늘린다고 지역 불균형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고 반발했다. 지방서 10년을 근무하더라도 의무 기간이 지나면 서울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 지방에서 의료행위 시 적용 의료수가를 높이는 등 유인책을 써서 분배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방 근무를 위해서는 유인책을 주어야 한다는 의견엔 대체로 동의하는 여론이 우세하나, 의료계가 인력 증원에 대한 철회 입장을 고수하며 강대강으로 맞부딪히는 상황에 대해서는 ‘기득권 지키기’로 해석되는 경향이 강했다.

의료 현장서 인력 부족으로 근로시간과 노동 강도가 굉장히 높다는 건 일반적으로 나오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전공의들이 실제 살인적 스케줄을 감내해야 될 때가 많음에도 인력 증원에 반대하는 건 나중에 개원의가 됐을 때의 경쟁적 상황에 대한 고려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따랐다.

동네병원 등을 운영하는 개원의 중심의 의협과 대한병원협회는 입장이 다르다. 병협은 대학병원과 중소병원이 회원사로 속해 있는 단체다. 병원 운영의 효율성 측면에서 의대 증원에 호의적인 편이다. 정부는 병협 등의 입장을 토대로 정책 추진 의지를 보여왔다.

의대 증원 필요성 여부를 놓고 정부와 의협은 서로 다른 기준으로 근거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의사단체는 국토 단위면적 10㎢ 당 활동의사 수, 정부는 인구 1000명 당 의사수를 기준으로 삼는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 1000명 당 의사수는 2.3명으로 전체 OECD국가의 평균인 3.5명에 비해 적은 수준이다. 2017년 기준 국토 단위면적 10㎢ 당 활동의사 수는 12.0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네덜란드(14.8명), 이스라엘(12.4명)에 이어 3번째로 높다. 이를 근거로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의료 인력 증원이 필요치 않다고 주장했다.

다만, 우리나라는 인구밀집도가 높아 일정 국토 면적단위를 기준으로 삼으면 활동의사 수도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의료계에서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의료서비스에 대한 공간적 접근성은 상당히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해당 통계서도 수도권과 지방 간 격차는 크다. 정부에서 제시한 인구 1000명당 의사수를 기준으로 할 경우 공간적 접근성은 좋을지라도 한 의사가 담당해야 하는 환자수가 많다는 지표가 된다.


▶갈등 키운 말말말

의대 정원 확대와 더불어 추진되는 공공의대는 2024년 3월 설립을 목표로 폐교된 서남대 의대 정원(49명)을 활용해 남원에 설립을 계획 중인 국립교육기관이다. 의료취약지에 꼭 필요한 필수보건의료인력을 기존 의대에 의존하지 않고 국가가 직접 양성한다는 취지다.

공공의대가 갑자기 이목을 끈 건 시·도 지사나 시민사회단체가 입학생 선발권을 가져 해당 자녀들이 특혜를 볼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현대판 음서제’로 불리며 정부와 각을 세우는 젊은 의사 단체의 주비판 타깃이 되기도 했다.

정부의 공공의대 설립 방안 중 ‘시·도별로 학생을 일정 비율 배분해 선발한다’는 내용과 기존 의대생을 대상으로 한 ‘공중보건장학제도’에 대한 설명이 뒤섞이면서 ‘시·도지사 추천 논란’이 불거졌다. 여기에 보건복지부가 해명을 위해 제작한 카드뉴스에 시민단체와 시·도지사 추천을 받는다는 내용이 포함돼 논란 확전에 일조했다. 복지부는 공공의대 학생 선발과 관련해 아직 법률도 통과되지 않은 상황으로, 지금 현재는 정해진 바가 전혀 없다는 공식해명을 내놓았다.

의료계는 의견 관철을 위해 파업도 불사하며 한 달 이상을 정부와 강대강 대치를 벌였다. 이 와중 응급실을 찾아 헤매던 환자가 사망하는 등 국민 건강을 볼모로 잡았다는 국민적 비난이 일었다.

또 투쟁 과정에서 의협 의료정책연구서에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공부에 매진한 의사와 성적이 한참 모자란 공공의대 의사 둘 중에서 어떤 의사를 선택할지 묻는 게시물 등이 논란이 돼 삭제하기도 했다. 의사들의 엘리트 의식이 노골화된 단적인 예라는 평이었다.

정치권도 비판은 피해갈 수 없었다. 우선 정부 여당이 주요 이해관계자인 의사들과 어떤 논의도 없이 코로나19 시기 기습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려 했다는 점과 여당 정치인들의 발언이 문제가 됐다. 과거 1개월 간 간호사 파업을 주도한 바 있던 간호사 출신 국회의원이 “(합의와 별개로) 파업에 참여한 의사들은 처벌해야 한다”며 “의대생들이 스스로를 사회의 ‘공공재’라고 인식해야 한다”고 말해 잡음이 일었다.

현재는 단체 행동 차원에서 지난 9월 진행됐던 의사 국가고시를 거부한 의대생들의 재응시 여부를 놓고 정부와 의료계 간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당장 내년부터 신규 인력 투입이 필요한 병원 입장에서도 곤란한 상황인 터라 지난 8일 주요 대학병원장들이 나서 재응시 기회를 요청하며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는 의대생들의 직접사과와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요구하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 중이다. 의협 역시 이에 13일 “의대생 국시 재응시 문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 계획이 전혀 없음을 알려 드린다”고 밝히며 맞대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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