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 손가락’을 둘러싼 논쟁, 그 씁쓸함
‘김기자 손가락’을 둘러싼 논쟁, 그 씁쓸함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21.01.19 1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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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문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서 욕설 의혹 제기
본질 벗어난 소모적 논란 반복…언론·기자도 달라진 미디어 생태계 직시해야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방송화면 캡처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방송화면 캡처

[더피알=문용필 기자] 처음 이 사안을 접하게 됐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딱 두 글자, 다름 아닌 ‘헐!’과 ‘엥?’이었다. 도대체 그런 일이 가당키나 한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됐다.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과정에서 불거진 ‘손가락 욕설’ 논란 이야기다. 도마에 오른 대상은 뉴스통신사 소속 김 모 기자. 이날 마이크를 들고 질문에 나선 그는 다른 손에 큰 수첩을 받쳐 들었는데 카메라에 잡힌 손가락 모양이 ‘요상’하다는 것이었다. 곧장 대통령에게 손가락 욕설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전국적으로 생중계되는 기자회견에서, 그것도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진 청와대 출입기자가 ‘법규’를 날린다? 일반적인 상식 수준에선 생각할 수 없는 그림이다.

만약 해당 기자가 의도적으로 그런 행동을 했다면 ‘개념 없는 강심장’이라고 밖엔 설명할 수 없다. 과거 자막이나 자료 이미지 등으로 문제가 된 ‘방송사 일베 논란’과는 스케일 자체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정파적 입장이나 해당 언론사의 위상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안이기도 하다.

이 정도 상식선에서 생각한다면 가벼운 헤프닝으로 그쳤어야 할 문제가 온라인 세상에선 이상하리만치 번졌다. 관련 의혹 제기가 잇따르면서다.

일례로 김용민 평화나무 이사장은 SNS에 해당 언론사와 기자 실명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기자님은 보지도 않을 수첩을 애써 집고는 (부자연스럽게) 그 손가락 모양을 내내 유지했습니다. (동영상 다 봤습니다.) 이거 대통령에 대한 메시지 아닙니까?”라는 내용의 글을 올리고 당사자의 해명을 요구했다. 해당 게시물에는 김 기자를 향한 원색적인 비난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진보논객으로 분류되는 김 이사장은 각종 시사방송과 ‘나꼼수’ 등을 통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진보진영의 인플루언서 중 한 명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때문일까. ‘손가락 논란’은 급기야 다른 언론사를 통해 기사화되기까지 했다. 대통령의 정책 구상에 포커스가 맞춰져야 할 신년 기자회견이 이런 소모적 논란으로 불필요한 잡음을 만들었다.

문제의 포즈가 무의식에서 나온 의도치 않은 행동이고,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긴장감에서 나온 것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오로지 기사로 평가받아야 할 기자가 엉뚱한 설화에 휩싸여 비난 받게 된 셈이 된다. 아무리 언론인들이 욕 먹는 세상이라지만 팩트조차 가리기 어려운, 개인의 해석에 의한 논란으로 마녀사냥의 대상이 될 이유는 없다.

다만 김 기자나 그가 소속된 언론사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의도성 여부를 떠나 오해의 소지는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떻든 전 국민이 시청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한다면 질문은 물론 화법이나 작은 제스처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핵심만 간단히, 국민들이 궁금해 할만한, 혹은 기삿거리가 될 만한 질문만 심플하게 던지면 그만이다. 모든 언론사와 기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이야기다.

또한 자신들 입장에서 황당한 지적, 억울한 의혹을 받는다 하더라도 적지 않은 이가 의문을 표한다면 납득하기 쉽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언론이 늘 취재원들에게 요구하는 잣대를 스스로에게도 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연히 말이 말을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 이제 기자들도 ‘우리만 미디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취재 잘하고 글발만 좋으면 별 문제 없던 과거와는 다르다. 국민 누구나 SNS를 통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수많은 관점의 1인 미디어들이 존재한다.

이들 시선에서 기자나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기에 중요한 공식석상에선 질문의 내용 뿐 아니라 질문자의 태도나 말의 톤앤매너부터 복장, 제스처에 이르기까지 비판의 여지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사전에 관리해야 한다. 흔히 미디어 트레이닝이라 불리는 덕목이 전통 미디어에도 요구되는 세상이 됐다. 

게다가 언론이 불신받는 시대 아닌가. 이번 ‘손가락 논란’도 어찌보면 언론과 기자를 믿지 못하는 국민들의 시선이 반영된 해프닝이라고 볼 수 있다.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 태도가 도마 위에 오른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2019년 김예령 당시 경기방송 기자는 “현 경제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는 이유에 대해 알고싶다”며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라는 직설적 질문을 던졌는데 이를 두고 ‘예의 논란’이 불거졌었다. 김 기자는 현재 야당인 국민의힘 대변인이다. 또 송현정 KBS 기자는 같은 해 문재인 대통령과의 대담에서 ‘말끊기’ 비난에 휩싸인 바 있다. 해당 기자들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말의 톤앤매너로 비판 받은 케이스들이다.

결국 언론과 기자들이 올바른 보도, 공익을 위한 기사로 국민 불신을 상쇄하는 것과는 별개로,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언론상을 세우려는 노력도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결국 보이는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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