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현장] 현대차 없는 현대팀
[마케팅 현장] 현대차 없는 현대팀
  • 정수환 기자 (meerkat@the-pr.co.kr)
  • 승인 2021.03.0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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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역 근처 ‘스튜디오 아이(STUDIO I)’ 탐방
스토어, 랩, 페어링테이블 3가지 공간서 지속가능 이야기
에어팟 케이스 제작, 디저트 시음 등 체험…그래서 전기차는?

[더피알=정수환 기자] 숱한 명장면을 남긴 예능 무한도전. 종영한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장면 장면이 온라인에서 ‘짤’로 공유되며 여전한 인기를 보여주고 있으며, 방송에서 나온 다양한 말들이 마치 하나의 격언, 속담처럼 쓰인다.

‘홍철 없는 홍철팀’이라는 말도 그 중 하나다. 상황은 이렇다. 박명수와 노홍철이 가위바위보를 통해 무한도전 멤버 중 각자의 팀원이 될 사람을 뽑는다. 그리고 마지막 차례에 승리한 박명수는 노홍철을 팀원으로 지목한다.

예상치 못한 역발상에 결국 노홍철은 박명수팀의 일원이 된다. 해당 장면이 유행하며 지금까지도 MZ세대들은 ‘앙꼬 없는 찐빵’같은 상황에서 홍철 없는 홍철팀이란 말을 자주 사용하곤 한다.

장황한 홍철 없는 홍철팀에 대한 소개는 최근 현대차가 ‘프로젝트 렌트’와 협업해 오픈한 팝업스토어 ‘스튜디오 아이’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방문을 마친 후 든 생각이 ‘이 팝업스토어는 마치 홍철 없는 홍철팀 같구나’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생각이 긍정을 뜻하는지, 부정을 뜻하는지는 기사를 읽으며 파악할 수 있다. 현장 방문은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이뤄졌다.

본격적으로 공간을 소개하기에 앞서, 해당 팝업이 진행된 ‘프로젝트 렌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프로젝트 렌트는 오프라인 공간을 론칭하기 힘든 브랜드들을 위해 공간을 대여해주는 곳이다. “오직 하나의 브랜드, 하나의 스토리만을 온전히 담는 매장”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여러 브랜드가 입점했고 또 퇴거했다.

공간 자체가 생각보다 협소하기에 작으면서도 힘 있는 브랜드들의 입점이 이어졌었다. 그래서 현대차와 협업 소식을 접했을 때 의문이 들기도 했다. 대기업이기에 더 멋있고 큰, 좋은 공간을 충분히 선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고, 주력제품인 ‘전기차’가 저 공간 안에 담길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 의문을 품은 채 들어섰다.

스토어에서 파는 물품들.

공간은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스토어(Store)’, ‘랩(Lab)’, 그리고 ‘페어링 테이블(Pairing Table)’ 3개로 나눠져 있다. 첫 공간은 ‘스토어’였는데, 예상과는 정말 달랐던 물품들이 소비자의 구매를 기다리고 있어 적응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앞서 말한 것처럼 현대 없는 현대팀이 그대로 실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당황해서 ‘여기 현대차 관련된 건 없어요?’라고 현장에 있는 관계자에 물어볼 정도였다.

그곳은 ‘지속가능 백화점’ 같은 느낌이었다. 이름 좀 알려진 여러 사회적 기업의 지속가능한 제품들을 팔고 있었다. 작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모아 치약짜개를 만든 걸로 유명한 ‘플라스틱 방앗간’, 커피 공정 과정 중 버려지는 커피 생두 껍질 허스크로 컵을 만드는 ‘허스키컵’, 발달장애인과 함께 일하며 친환경 고체화장품을 생산하는 ‘동구밭’ 등을 포함해 환경을 위해 좋은 일 하는 작은 브랜드들의 혁신적인 제품 70여개가 있었다.

또 업사이클링으로 유명한 브랜드인 ‘래;코드’와 ‘플리츠마마’ 등의 제품도 있는데, 현대차는 여기서 잠깐 등장한다. 이들 브랜드와 콜라보해 한정품을 만든 것이다. 이런 것들을 제외하면 그 공간 안에서 현대차는 브로슈어와 큐알코드 속에서만 존재한다.

조금 힙해 보인다는 느낌이 들어 왜 그런 걸까 생각해봤다. 현대차가 마치 힙합 크루의 수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안녕! 지속가능 크루의 수장 ‘현대차 아이오닉’이야. 나는 익히 알고들 있을 테니 우리 크루 멤버들을 소개할게. 얘는 ‘동구밭’이야! 아주 좋은 일을 하지. ‘어스박스’도 한 번 살펴보면 괜찮은 브랜드야. 우리 애들 예쁘게 봐줘!”라고 말하는 것 같은 여유가 공간에서 느껴졌다. 입점한 브랜드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재료실험실의 모습

세상엔 정말 다양한 지속가능 제품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달으며 2층에 위치한 ‘랩’ 공간에 올라갔다. 랩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매터리얼 랩(Material Lab)’이라는 코너였다. 그곳에는 총 9종의 소재가 진열돼있었다. 무엇을 위한 진열인가 싶어 참여방법을 읽어보고, 안내 데스크에 갔더니 봉투와 기록스티커, 소재소개서를 나눠줬다. 해당 소재들은 모두 쓰레기인 것 같았다. 그리고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있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는 쓰레기를 일반적인 소재로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재료실험실’은 쓰레기를 문제로만 이야기하기보다 일반적이고 매력적인 소재로 소개하고자 기획된 참여형 전시입니다. 취향대로 수집한 소재들을 다양하고 재밌는 방법으로 실험하고 연구해보시길 바랍니다.”

세 가지 재료만 선택하면 무료로 연구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다. 당연한 걸 수도 있지만 우리는 쓰레기와 쓰레기로 재활용된 제품을 별개로 본다. 재활용된 제품은 깨끗하고 친환경적인 것이라 생각하지만 쓰레기 자체는 여전히 더럽다는 인식이 강하다. 쓰레기에 대한 인식부터 변화시켜야 한다는 발상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3종의 쓰레기를 집었다.

‘종이컵, 커피찌꺼기, 과일부산물 등으로 만든 비목재종이’, ‘제품을 만들고 난 후 폐기되는 자투리 아크릴’, ‘수출용으로 제작하기 위해 샘플링하고 폐지되는 지퍼’가 그것이다. 10분 동안 관찰하며 생각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재활용되는지는 모르지만 그 자체로도 매력이 충분한 쓰레기라는 점이다. 가끔 ‘나는 쓰레기 같아. 아니, 쓰레기만도 못해’라고 자신을 비하하곤 했는데, 이 말에 충분한 근거를 얻은 것 같아 조금 울적하기도 했다. 앞으론 쓰레기처럼 도움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요즘 다양한 공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리필 스테이션’도 마련돼 있다. 리필 스테이션이란 세제, 섬유유연제 등을 구매할 때 계속해서 플라스틱병도 함께 구매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서비스다. 통을 가져오면 세제나 섬유유연제를 리필해 준다. 가까운 곳에 없기도 했고, 굳이 병을 들고 가 리필을 받아야 한다는 번거로움에 여태 시도해보지 않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실제로 진행되는 모습을 보니 조만간 리필을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리필 스테이션의 모습.

그밖에도 너른 테이블이 있는데, 이곳에서 강연 및 워크숍이 진행되는 듯 했다. 자투리 천으로 키링 만들기, 카시트를 활용해 에어팟 케이스 만들기 등 일상 속 만들 수 있는 지속가능이 콘셉트라고 한다. 자세한 후기는 동행한 이수빈 에디터의 영상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페어링 테이블’을 위한 공간으로 향했다. 이곳은 ‘펠른’이라는 카페와 함께 운영되고 있는데, 펠른은 커피를 매개로 각 커피에 어울리는 디저트를 선보이는 곳이다. 마치 와인과 음식의 마리아주처럼, 커피와 음식도 페어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페어링 테이블에는 펠른의 바리스타와 셰프가 자리하고 있다.

사실 지속가능과 가장 매치가 안되는 공간이 페어링 테이블이었다. 앞선 두 공간인 랩과 스토어에서는 지속가능을 드러낼 수 있는 매개와 수단이 아주 많았다. 하지만 이곳은 아니다. 과연 커피와 음식으로 어떻게 지속가능을 선보일 수 있을까 싶었다.

봄과 여름을 의미하는 요리. 바질 마카롱과 오렌지 더치 그라니타 샷

자리에 앉으니 바리스타가 와서 설명을 시작한다. “스튜디오 아이의 모든 공간이 그렇듯, 지속가능은 거창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란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상 속 의미 있는 선택들로 지속가능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라고. 그리고 마침내 이 페어링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말한다. 바로 ‘사계절’의 지속가능이다.

먼저 봄과 여름을 나타내는 디쉬가 나왔다. ‘바질 마카롱과 오렌지 더치 그라니타 샷’이라고. 펠른에서 직접 기른 바질을 버터크림으로 만든 마카롱이라고 소개했다.

맛있게 먹고 있는데 바리스타가 말을 걸어온다. “당신이 생각하는 봄, 여름은 무엇인가요?” 무슨 뜬금없는 질문인가 싶지만 우선 생각해 본다. 창의력이 닳고 닳은 탓에 싱그러움, 푸름 같은 진부한 단어들만 떠오른다.

바리스타는 “이걸 여쭤보면 사람들이 다 다르게 대답해요. 같은 주제, 다른 관점을 볼 수 있어서 신기하죠. 다름을 알고 인정하는 것, 바로 관계의 시작입니다”라고 했다. 하긴, 지속가능이라는 말은 관계에도 쓰일 수 있으니 전혀 상관없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을을 의미하는 요리. 공정무역 다크초콜릿 티라미수와 에디오피아 계열의 유기농 공정무역 커피

그밖에도 “재료들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왔는지 한 번 생각해 볼까요”라는 질문도 받았다.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또 고민해보기로 한다. 결국 사람의 노동으로 이런 재료들은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고, 그런 노동에는 착취가 많다는 생각을 하려던 찰나, 자신들이 들여오는 커피와 초콜릿은 모두 공정무역으로 구매한 것이라고 말한다. 역시 지속가능을 이야기하는데 공정무역이 빠지면 섭섭한 일이다.

맛있는 음식, 조화로운 커피, 아늑한 분위기. 삼만원으로 아주 좋은 환경에서 대접받은 느낌이 들어 만족스러웠지만, 한편에서 사라지지 않는 찝찝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바로 이 페어링테이블과 지속가능과의 접점이다.

슬쩍 바리스타에게 “그런데 엄청 실험적이에요. 이걸 다 지속가능과 연결하시느라 힘드셨겠어요”라고 말하니, 그는 “맞아요. 메뉴 고민하느라 셰프님이 정말 많이 고생하셨어요”라고 했다. 만사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그저 맥락이 조금이라도 일치해 사람들이 지속가능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된다면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그렇게 맛있는 식사와 함께 모든 탐방을 마쳤다.

겨울을 의미하는 음식. 하몽, 올리브, 브라우니 디쉬와 위스키 더치

그래서 홍철 없는 홍철팀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나쁘지 않았다. 앙꼬 없는 찐빵은 맛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나름 그 빵에도 간이 적당히 돼 있어서 괜찮았고 오히려 빵 본연의 맛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과하게 현대차가 돋보이지 않아서 좀 더 지속가능이라는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비자의 입장에서다. 어차피 이런 공간을 주로 찾는 건 MZ세대이고 이들이 당장 전기차를 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렇기에 나중에 능력이 되면 우리 ‘현대 아이오닉’을 고려해달라는 식의 긍정 이미지를 심는 방식을 진행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현대차가 보이지 않아 넛지될 포인트가 부족했다. 아직 아이오닉5가 출시 전이라 그런 것 같지만 말이다. 함께 있었다면 더 좋은 시너지가 있었을 것 같다.  

다른 공간에 대해서는 ‘너무 공간에 브랜드가 드러나서 별로’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너무 공간에 브랜드가 드러나지 않아서 아쉽다’고 쓰는 모순과 혼란을 부인할 수 없다. 아마 기업도 마찬가지 아닐까. 상업적인 측면과 이미지 제고의 측면, 두 사이드에서 어떻게 적절히 줄타기를 할지 많은 고민을 할 것 같다.

어쨌든 기자 역시 글 쓰는 사람 이전에 소비자기에, 해당 탐방으로 얻고 가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많다. 현대차가 이만큼이나 지속가능에 대해 신경 쓴다는 것을 새롭게 인지하기도 했다.

안타까운 점이라면 브랜드 공간 내 홍보, 또 대외적인 홍보의 소극성(?)이다. 잘 만들었는데 왜 홍보가 부족할까 싶었는데, 역시나 ‘코로나’가 발목을 잡은 듯하다. 현대차 측은 “사실 더 많은 홍보를 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모객이 진행되는 팝업스토어인 만큼,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코로나 종식 이후 여러 제약이 없어진다면, 현대차가 펼쳐낼 ‘지속가능’의 다음 장은 무엇이 될까. 그때는 홍철있는 홍철팀으로 소구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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