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와 겸임교수의 ‘공생관계’
미디어와 겸임교수의 ‘공생관계’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21.03.11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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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타이틀 앞세워 전문가로 포지셔닝
언론사가 출연자에 직함 원하기도…‘객관성 세탁’ 수단 돼

[더피알=문용필 기자] 겸임교수 신분으로 활발한 대외 행보를 보여온 한 인사의 행적이 최근 도마 위에 올랐다.

<뉴스톱>에 따르면 K대 겸임교수 직함을 달고 칼럼니스트 및 평론가로 활동해온 K씨의 겸임교수 경력은 허위였다. K씨는 여러 전직 타이틀과 함께 겸임교수 신분을 앞세워 공무원 강의를 하고 방송에 출연했으며 일간지에 칼럼을 게재하기도 했다.

전문가로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 교수 타이틀을 사용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디어(언론)가 ‘개인PR’의 훌륭한 수단이 됐다.

사실 K씨뿐만이 아니라 미디어에 등장하는 ‘겸임교수’는 무수히 많다. TV나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등에서 잘잘못을 비평하고 훈수를 두는 역할의 단골 패널로 초대되고, 신문에서도 기사나 논조에 힘을 싣는 ‘따옴표 취재원’으로 겸임교수가 빈번히 등장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빅카인즈를 통해 2020년 1년간 22개 언론사(중앙일간지, 경제지, 지상파 방송사)의 기사를 살펴보니 이 중 ‘겸임교수’라는 단어가 언급된 케이스는 총 1815건이었는데 가장 연관성이 높은 키워드는 다름 아닌 ‘전문가’였다. 적어도 언론이 ‘겸임교수=전문가’라는 등식을 기사에 내세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방증이다.

원 직업 대신 교수 타이틀만 부각…미디어 거치며 ‘셀프홍보’

물론 겸임교수들의 직함 사용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이들 역시 정식 임용절차를 거친 신분이다. 문제는 겸임교수의 본 취지와 달리 ‘겸임’은 사라지고 ‘교수’만 부각돼 그 자체로 권위자로 인식하게끔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언론의 ‘전문가(지향)주의’가 크게 한몫한다.

겸임교수는 원래의 직업이 있어야 한다. 현행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 7조에 따르면 원소속기관에서 3년 이상 상시근무하는 이가 겸임교원으로 임용될 수 있다. 전일(全日) 근무 형태의 겸임교원은 휴직자도 가능하지만 원 소속기관이 따로 있는 건 마찬가지다. 즉, 겸임교수는 원래의 직함이 따로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언론기사를 살펴보면 원 소속기관보다 겸임교수 직함을 앞세우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겸임교수 직함만을 쓰는 기사도 종종 눈에 띈다. 교원임용 시스템에 대해 잘 모르는 뉴스소비자들이라면 전임교수와 똑같은 개념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부분이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데에는 한국 사회에서 대학교수가 갖는 ‘위치’가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교수’ 타이틀을 얻게 되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는 이미지는 물론, 비교적 높은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고학력자 대접을 받던 과거에도, 대학진학률이 70%를 뛰어넘는 현 시점에도 이는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지난 2016년 인하대 사범대 김흥규 명예교수와 학생생활연구소 이상란 박사가 발표한 한국인의 직업관 조사결과에 따르면 가장 존경하고 신뢰하는 직업 5위가 교수였다. 10년 전인 1996년 조사결과(4위)와 비교해도 별반 차이 없는 순위다.

이같은 이유 때문일까. 방송과 신문을 막론하고 기자들에게 대학교수는 좋은 취재원이 된다. 굳이 복잡한 데이터와 수치를 들이대지 않아도 교수 타이틀을 가진 전문가의 말 한마디면 논조와 팩트의 신뢰성, 그리고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언경 뭉클 미디어인권연구소장은 “강의를 한두 개 하더라도 전문성이 있고 관련 연구를 진행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오랫동안 진행해온 연구를 중심으로 인터뷰가 진행돼야 하는데 질문하고자 하는 사안에 해당 인물이 적합한지에 대한 (언론의) 고민이 너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서 인플레 가장 심한 직업…중립적 전문가 외피”

언론사가 겸임교수 직함을 원하는 케이스도 있다. 언론계 한 인사는 “(자사) 방송에 출연하려는 전문가에게 ‘(교수)직함이 있었으면 좋겠다’ ‘학교 출강 안하느냐’ 이런 식으로 언론사가 말한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고 했다. 아울러 “(교수) 타이틀을 이용하려는 건 언론과 개인의 요구가 다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언론학자 A교수는 “기자라는 직함은 신뢰성을 담보하기 쉽지 않지만 교수와 변호사 타이틀은 그렇지 않다. 언론에 나와 세상을 단하는 이야기를 거침없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 사회에서 인플레가 가장 심한 직업”이라며 “변호사는 시험을 봐야 하니 그렇다 해도 교수는 애매한 측면이 있다. 중립적인 전문가로 이야기할 것 같은 외피를 두르게 되는 부분은 문제라고 본다”고 언급했다.

B교수는 “겸임교수 제도는 현장에 계신 전문가를 모시자는 좋은 취지”라면서도 “겸임교수가 (언론에 나가) 말을 잘못해 학교 명예가 실추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곤란을 겪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식적으로 직함을 준 것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니 직함을 쓰지말라고 할 수도 없다”며 “현실적으로 그것이 문제”라고도 했다.

이런 식으로 언론이나 전문가가 상호 편의로 겸임교수 직함을 강조하는 건 보도의 편향성을 낳을 소지도 있다. 김언경 소장은 “예를 들어 특정 정당에 속해 있던 사람이 겸임교수 직함만을 달게 되면 정치적 입장을 감춰버리는 효과를 주기 때문에 전문가 객관적인 발언을 하는 것인양 (뉴스 소비자들을) 착각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은 이렇지만 언론 스스로가 교수라는 직함의 권위에 기대 보도의 객관성을 높이려는 관행을 조금씩 고쳐나가는 것 외에는 다른 묘수가 보이지 않는다.

김 소장은 “방송의 경우, 최소한 (패널의 직함을) 자막에 겸임교수로만 쓰지 말고 어떤 일을 했는지 두세 개의 프로필을 보여주면서 겸임교수뿐만 아니라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맞다”며 “신문 기고에서도 기고자의 다른 직함을 넣어야 한다”고 했다.

송경재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도 “기자가 바이라인을 쓰는 것이 원칙이듯, 객원이나 겸임교수일 경우 본직을 같이 명기하는 방향으로 내부 가이드라인을 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언론에 객원교수 직함으로 등장하는 전문가들을 무조건 색안경 끼고 바라보거나 이들의 전문성 자체를 의심하는 시각은 지양해야 한다. A교수는 “겸임교수가 해당 학문 분야의 학자나 전문가 입장에서 발언할 때는 겸임교수 타이틀을 쓰는 게 맞을 수도 있다”며 “원 소속기관과 자신의 의견이 결부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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