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취재진의 ‘경찰사칭’을 무겁게 봐야 하는 이유
MBC 취재진의 ‘경찰사칭’을 무겁게 봐야 하는 이유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21.07.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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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부인 논문 검증 과정서 무리수…공영방송 비윤리적 취재행태 도마
뉴스 신뢰도 상승세 국면서 악재 만난 MBC, 사측 “내부적 절차 준비중”
전문가 “결과물보단 취재윤리에 방점찍는 문화 정착돼야”
자사 기자의 경찰사칭 취재에 대해 사과한 MBC '뉴스데스크' 방송장면. 화면캡처
자사 기자의 경찰사칭 취재에 대해 사과한 MBC '뉴스데스크' 방송장면. 화면캡처

[더피알=문용필 기자] MBC 취재진이 유력 대권주자 부인의 논문 검증 과정에서 무리수를 뒀다. 정보를 캐내기 위해 경찰을 사칭한 것. 최근 기자윤리의 중요성이 언론계 안팎에서 강조되는 상황에서 일어난 일탈 행위다. MBC 뿐만 아니라 언론계 신뢰도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는 중한 사안이다.

MBC는 지난 9일 방송된 ‘뉴스데스크’를 통해 자사 기자의 취재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왕종명 앵커는 “본사 취재진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 씨의 박사논문을 검증하기 위한 취재 과정에서 취재윤리를 위반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 씨의 박사 논문 지도교수의 소재를 확인 하던 중 해당 교수의 과거 주소지 앞에 세워진 승용차 주인과 통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경찰이라고 소개했다는 것. MBC는 “기자 신분을 밝히지 않은 취재진 2명을 관련 업무에서 배제하고 사규에 따라 책임을 묻기로 했다”며 “피해를 입은 승용차 주인과 시청자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는 입장을 전했다.

MBC가 자사 메인 뉴스를 통해 공식 사과했지만 그 정도 선에서 마무리될 만한 것은 아니다. 취재과정이긴 하지만 언론사 기자가, 그것도 공영방송사 기자가 경찰을 사칭한 것으로 드러난 만큼 사안이 간단치 않아 보인다.

현행 형법 118조에는 ‘공무원의 자격을 사칭하여 그 직권을 행사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다만 취재과정에서 경찰 직권을 행사했는지 여부에 대해선 해석의 여지가 남아있다.

게다가 유력 대선주자의 부인 관련 사안을 취재하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정치적 이슈로 비화될 수밖에 없다. 당장 윤 전 총장 측은 10일 입장문을 통해 해당 MBC 기자를 경찰에 고발했다며 진상규명과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무엇보다도 이번 사안은 언론윤리 혹은 기자윤리와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작지 않다. 안 그래도 기자와 언론을 바라보는 국민 시선이 곱지 않은 상황에서 불거진 일이기에 언론계 전체에 부정적 여파가 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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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자협회의 윤리강령엔 ‘취재과정에서 항상 정당한 방법으로 정보를 취득하며, 기록과 자료를 조작하지 않는다’는 항목이 있다. 기자협회와 한국인터넷신문협회가 지난 1월 제정·선포한 ‘언론윤리헌장’에도 ‘윤리적 언론은 취재보도 과정에서 정당한 방법을 사용하고, 취재원에게 예의를 갖춘다’고 명시돼 있다. 경찰사칭이 ‘정당한 방법’이 아니었음은 자명하다.

송경재 상지대 교양학부 교수(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는 “이제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취재하지 않을 경우 윤리적인 문제와 법적 책임에도 직면할 수 있다는 걸 경고한 사건”이라고 이번 사안을 평가했다.

사실 이전까지 국내 언론의 취재는 다소 위법한 요소가 있더라도 ‘국민의 알권리’라는 대의명분에 가려 다소 등한시, 혹은 관행화됐던 것이 사실이다. 소위 ‘뻗치기’나 ‘벽치기’같은 과도한 취재 방식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져왔고, 그런 행위가 ‘기자의 근성’으로 미화됐다.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이 12일 YTN 라디오에 출연해서 한 발언도 이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신문기자 출신인 김 의원은 MBC 취재진의 경찰 사칭건과 관련해  “그건 잘못된 것”이라면서도 “나이든 기자 출신들은 사실 굉장히 흔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디어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언론을 보는 뉴스수용자들의 눈높이가 달라진 상황에서 과거 관행들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될만한 부분이다.

송경재 교수는 “(언론이) 과거에는 절차적 문제보단 결과를 따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젠 사람들이 절차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며 “개인정보 보호나 (취재) 과정에 대한 시민의식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맞는 취재방법과 보도윤리가 같이 모색돼야 한다. 기자 한 명의 일탈이라고 하기 보단 전체적인 언론 환경에서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고 했다.

김언경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소장도 “(언론사가) 그동안 결과물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취재윤리에 방점을 찍고 이를 중시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며 “(현장 기자는) 취재과정에서 원치 않는데 부당한 지시 때문에 위법적 행동을 할 수도 있다. 기자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봤다.

더구나 최근 언론계는 그간 유명무실했다고 평가받은 기자윤리를 재정립하고 현장과의 괴리감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앞서 언급한 언론윤리헌장이 여기에 해당된다. 지난달에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 국내 대표적 언론단체들이 모여 협의회를 구성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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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윤리 확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기자협회는 이번 건에 대해 자체적으로 내부 조사를 진행중이다. 협회 관계자는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징계위원회를 열고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MBC 입장에서는 상승곡선을 그리던 자사 뉴스의 신뢰도 측면에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KBS 공영미디어연구소의 미디어 신뢰도 조사결과에 따르면, MBC는 지난 2019년 1분기엔 ‘가장 신뢰하는 방송사 뉴스’ 항목에서 5.8%를 기록해 7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올해 1분기 조사에선 16.5%로 KBS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2년 만에 10%p 이상 신뢰도가 급상승한 것이다.

MBC는 지난 7일 자사 유튜브 뉴스 채널의 상반기 총 조회수가 국내 뉴스 채널 중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는 내용이 담긴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이런 긍정적 지표 속에서 불거진 자사 기자의 일탈이 MBC 뉴스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김언경 소장은 “MBC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신뢰성이 중요하다. 방송을 통한 사과가 즉각적 대응이었다면 좀 더 정리된 재발방지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MBC 정책협력부 관계자는 “사규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담당부서에서 내부적인 절차가 있지 않겠느냐. 이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뉴스를 통해 사과하고 말씀드린 부분 이외에 현재 추가적으로 드릴 수 있는 말이 없다”며 “아마 (징계가) 결정되면 보도자료를 통해서 (사측 입장이) 나가거나 추가적으로 안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송경재 교수는 “내부적으로 (문제가) 정리되면 당연히 외부에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며 “뉴스를 통해 알리는 것이 더욱 클 것이다. 기자협회나 MBC노조 차원에서의 반성이나 재발방지 약속이 나오면 더욱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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