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 부수 배제가 ‘언론 길들이기’? 문제는 정부광고 자체
ABC 부수 배제가 ‘언론 길들이기’? 문제는 정부광고 자체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21.07.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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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 ABC協 조사결과 제외하고 구독자 조사 등 집행기준에 반영
찬반 입장 엇갈려, 전문가들 “정부 영향력 행사 불가능한 일…정부광고 성격 바꿔야”
지난 8일 한국ABC협회 사무검사 조치 권고사항 이행 점검결과를 브리핑하는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뉴시스
지난 8일 한국ABC협회 사무검사 조치 권고사항 이행 점검결과를 브리핑하는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뉴시스

[더피알=문용필 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던 한국 ABC협회의 부수공사결과를 정부광고 집행기준에서 제외하고 구독자 조사를 새롭게 반영하겠다는 정부의 선언에 언론계 안팎이 시끄럽다. 하지만 찬반여부를 떠나 더욱 중요한 건 ‘언론지원금’처럼 여겨졌던 정부광고가 본연의 기능을 찾도록 재점검하는 작업이라는 제언이 나온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8일 정부광고의 인쇄매체 집행시 자료로 활용했던 부수를 대체해 전국 5만 명을 대상으로 한 구독자 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직권 조정건수와 자율심의 참여 및 심의 결과 등 언론의 사회적 책임 관련 자료를 활용하도록 정부광고제도를 개편하겠다고도 했다.

현행 정부기관 및 공공법인 등의 광고시행에 관한 법률(정부광고법) 시행령 제 5조에 따르면 문체부 장관은 홍보매체 선정을 위해 ABC 부수공사 결과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그간 부수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돼 온 ABC협회 공사결과의 신뢰성 회복이 더 이상은 어렵다는 것이 문체부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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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기준을 통해 정부가 기성 언론사의 주요 재원인 정부광고를 매개로 언론길들이기에 나설 수도 있다는 논리가 깔려있다. 게다가 ‘미디어 바우처’나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이른바 언론개혁법안에 드라이브를 걸고있는 여당의 움직임도 역설적으로 이같은 논리를 뒷받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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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종이신문을 내는 일부 언론사들은 자사 기사를 통해 반대입장을 숨기지 않았다. 일례로 문화일보는 “열독률, 구독률을 조사하고 언론중재위원회 직권조정 건수, 자율심의기구의 심의 결과 등을 반영하겠다지만 조사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고, 또 중재위의 징벌적 기준 반영은 언론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경제신문은 “선진국 중 정부가 직접 언론의 영향력을 측정하는 국가는 극히 드물다”며 “현행 ABC제도에도 문제가 있지만 정부가 직접 언론사들의 순위를 매기겠다는 건 지나치다”는 서울의 한 대학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말을 전했다.

조선일보는 “ABC 제도는 객관적으로 부수를 파악함으로써 언론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을 제한하려고 만든 것인데, (앞으로) 정부가 신문을 평가하는 기준을 설정하고 그 영향력을 직접 수치로 파악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발언을 기사에 실었다.

이들과는 입장이 다르지만 전국언론노동조합은 또다른 관점에서 문체부 안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언론노조는 12일 성명을 통해 “종이신문 외에 종합편성채널을 가진 신문재벌 언론사가 현재도 인지도와 영향력으로 신문시장을 과점하는데, 구독자 조사에도 이런 기울어진 지형이 그대로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며 “그 과정에서 가뜩이나 독자 감소에 몰린 지역 주간지·일간지가 불이익을 받을 여지가 크다”고 봤다.

또한 “언론중재위, 자율심의 결과 등 사회적 책임 영역도 짚어봐야 한다. 정정보도의 경우 언론사가 오히려 언론중재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면 지표 점수는 하락할 수 있다는 역설은 재고되어야 한다”며 “만약 언론중재나 자율심의에 대상이 되는 보도가 권력·자본 감시·비판 성격이라면, 언론사 내부에서 이런 보도를 사전에 검열할 계기를 준다는 점에서 보도 위축 효과도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다”고 했디.

하지만 문체부의 구독률 조사 안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조사의 주체가 될) 한국언론진흥재단도 조사 인력이 부족해 어차피 민간 조사기관에 다시 의뢰를 해야하는데 이를 정부에서 주도한다고 볼 순 없다”며 “실사를 어디서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부에서 (조사를) 하는게 (그나마) 공정성이 있다. 민간에 맡긴다고 해도 자본의 논리에 의해 왔다갔다 할 수 있다”고도 봤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구독자 조사에)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민간 조사기관과 3000만원 이상의 계약을 체결하려면 나라장터를 통한 공개입찰이 필요한데 이렇게 되면 조사방법 등 내용을 100% 공개할 수 밖에 없다는 것. 게다가 국회의 공개요구가 있을경우에도 응해야 한다. 이를 근거로 심 교수는 “방법 자체가 (언론을) 길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봤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는 “누군가 조사에 나서야 한다면 공신력 있는 기관이 나서야 힌다. 정부일수도 있고 정부가 독립적인 기관을 세울 수도 있지만 민간 기구에 맡길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김 교수는 “문체부가 나서서 (조사를) 하느냐 마느냐를 갖고 논란을 벌인 상황은 아니”라며 “지표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합리성을 갖고있는지를 따지는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종이매체 구독률만으로는 매체의 실제 영향력을 평가할 수 없다고 본다”며 “영향력 차원에서 통합 구독료 방식으로 (정부광고집행기준을) 마련해야 마땅하다”고 언급했다.

정부도 찬반의 목소리를 모르는 바는 아닐 터다. 문체부 미디어정책국 관계자는 “정부는 모든 산업분야에서 통계조사를 수행하고 있는데 표본구성에 있어서 문제가 없도록 준비해 통계전문가들과 진행하도록 돼 있다. (이번 안도) 그런 차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언론재단이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정부광고 집행기준 개편을 놓고 잡음이 이어지는 근본적인 이유에는 그간 정부광고가 일종의 ‘언론 지원’처럼 여겨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각 부처의 정책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이해를 돕기위한 성격이 돼야할 정부광고가 나눠주기 식으로 집행되는 관행이 이어지다보니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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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 교수는 “(언론사들이) 정부광고를 공적지원금처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정부의 공적지원과 광고를 혼동해서 법령을 만들다 보니 이 모든 것이 다 지원금인 것처럼 이야기한다”고 지적했다.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실장은 “정부광고의 상당부분이 지자체 광고인데 이를 지역 주민들이나 중앙에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 있어야 하고, 이에 맞춰 정부광고의 성격 등 (시스템을) 다 바꿔야 한다”며 “데이터나 독자 타깃팅 등을 염두에 둔 것인지 등 (실질적인) 조사 없이 (광고만) 분배하는 지표를 만드는 건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광고업계 관계자는 “정부광고 집행에 있어서 전반적인 시스템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투명성이 필요하다”며 “기존에 ABC 부수가 기준이었다고 해도 (부처에 따라) 알음알음 대변인에서 (광고) 매체 선정에 어느정도 관여를 한 것으로 안다. 정확한 정부광고 집행을 위해 재단이 기준을 만들고 광고효과를 갖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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