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개막식, 미래보다는 과거와 현재에 머물다
도쿄올림픽 개막식, 미래보다는 과거와 현재에 머물다
  • 김주호 (thepr@the-pr.co.kr)
  • 승인 2021.07.26 11:19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별기고] 김주호 KPR 사장 (전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 부위원장)

팬데믹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열리는 도쿄올림픽은 다방면에서 미증유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습니다. 선수들은 물론 각국 정상 및 귀빈들의 불참 소식이 잇따른 가운데, 대회 내내 장내엔 관중이 없고 장외에선 마케팅 활동도 실종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유례 없는 ‘기이한 올림픽’을 마주하며 스포츠 마케팅PR 전문가이자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 부위원장을 역임한 김주호 KPR 사장이 이번 2020 도쿄올림픽에서 주목할 포인트를 짚어봅니다.

코로나 시대 도쿄올림픽
②도쿄올림픽 개막식을 보고
허탈한 도쿄올림픽 스폰서

7월 23일 2020 도쿄올림픽 개회식이 열린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이 대회 관계자 외에 관중석이 텅 비어 있다. 뉴시스
7월 23일 2020 도쿄올림픽 개회식이 열린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이 각국 취재진 및 대회 관계자 외에 관중석이 텅 비어 있다. 뉴시스

[더피알=김주호]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이 2021년 7월에야 열렸다. 난민팀과 도핑제재를 받은 러시아가 국가명 대신 러시아올림픽위원회로 참여하는 것을 포함해 206개국의 제한된 인원만이 개막식에 참석했다. 2013년 올림픽을 유치할 때만 해도 2011년 일어난 도호쿠 대지진의 아픔을 극복하고 일본을 부흥시키는 계기로 삼으려 했지만, 개막식을 통해 나타난 메시지는 오히려 일본이 처한 안타까운 현실을 상기시켰다.

축제보다는 기념식 분위기

‘감동으로 하나 되다(United by Emotion)’라는 주제를 내건 도쿄올림픽 개막식은 너무 과거와 현실의 상황을 묘사하고 다짐하다 보니 미래에 대한 희망 메시지나 축제로서의 감동이 적은 행사였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일본은 코로나로 올림픽을 1년 연기했다. 그 과정에서 준비팀도 바뀌고 개·폐회식 연출가나 음악감독 등이 대회 임박해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추측컨대 작년에 기획한 개막식은 훨씬 규모도 크고 화려했을 것이다. 조직위가 코로나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데다, 인적 구성 변화로 프로그램을 새로 짜고 코로나 상황을 의식해 내용을 단순화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23일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대한민국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대한민국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지구촌 축제라는 접근보다는 코로나로 인한 지구촌 사람들, 세계 각국 선수들의 어려움과 아픔을 많이 표현하려 했던 것 같다. 그런 모습이 영상을 통해 많이 보였다.

일례로 IOC 기수단에 의사나 간호사 출신 선수들이 다수 포함됐다거나, 일장기 입장에 선수가 아닌 구조대원을 포함시킨 것도 코로나 속 영웅들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또 경기장 성화주자 중에도 과거 일본의 슬픔과 기쁨을 보여주는 도호쿠(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 어린이, 야구영웅이지만 후배인 마쓰이 히데끼의 부축을 받는 나가시마 시게오 등이 포함됐다.

더욱이 2016 리우올림픽부터 올림픽 기간에 희생된 올림피언을 추모하는 프로그램을 하게 돼있는데, 리우나 평창에선 폐막식에 하던 것을 이번에 개막식에 포함함으로써 무거운 분위기는 더 커졌다. 개막식이 축제가 아닌 기념식 같았던 이유다.

축소된 성화와 연출의 기시감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는 오륜기 표출과 성화 점화 방법이다. 오륜기 표출은 1964년 도쿄올림픽 당시 홋카이도에 심은 나무를 베어와 만든 목재들을 연결해 만들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의미는 좋았지만 보는 이에게 ‘와우 효과’를 주기에는 부족했다.

23일 올림픽 스타디움(신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개회식에서 나무로 만든 오륜기가 등장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뉴시스
2020 도쿄올림픽 개회식에서 나무로 만든 오륜기가 등장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뉴시스

그에 비해 성화 최종 점화 장면은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경기장 안에 작은 후지산을 만들어 놓고 꼭대기에 태양모양의 구를 세워 놓았는데, 이 구가 벌어지면서 꽃 모양의 성화대로 변하고, 후지산 모양의 조형물이 갈라지면서 계단이 생겨 마지막 성화주자가 올라가도록 했다.

성화대는 보통 개막식장 제일 높은 부분이나 경기장 주변에 높게 세워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하는데, 이번에는 경기장 안에 작은 규모로 만들었다. 송승환 감독은 이를 ‘축소지향의 일본인들 모습’이 드러난 것 아니냐고 촌평을 했다. 도쿄조직위는 일반인을 위해 도쿄 워터 프런트 시티에 별도로 성화대를 설치했다.

개막식 모습. 뉴시스
도쿄올림픽 경기장 안에 만들어진 작은 후지산 위에 구가 올려져 있다. 뉴시스

성화 최종주자는 세계적 테니스 스타인 오사카 나오미였다. 일본인 어머니와 아이티인 아버지를 둔 혼혈아로, 인종차별을 넘어서는 다양성 메시지를 담았다. 과거 시드니올림픽(2000년)의 원주민 육상선수인 캐시 프리만이나, 애틀랜타 올림픽(1996년)이 파킨슨씨병을 앓는 세계적 복서 무하마드 알리를 최종 주자로 선택한 것과 비슷한 구조다.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일본 테니스 선수 오사카 나오미가 토치키스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뉴시스
성화봉송 마지막 주자로 일본 테니스 선수 오사카 나오미가 토치키스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뉴시스

이번 올림픽 개막식에서 아쉬운 점은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이 많다는 것이다. 먼저 드론으로 도쿄올림픽 엠블럼과 지구를 만든 것인데, 이는 직전 올림픽인 평창에서 드론을 띠워 오륜기를 만든 장면이 있어 신선함을 주지는 못했다. 각종 이벤트에서 드론을 띄우는 기술은 이제 새로울 것 없는 시도다.

또 이매진(Imagine)이란 노래를 합창단과 각국의 유명 가수들이 영상으로 부르는 장면도 있었는데, 이 역시 평창에서 촛불로 평화의 비둘기가 만들어지는 가운데 전인권, 이은미, 하현우, 안지영 등이 부른 바 있다.

현대적 퍼포먼스 시선, 하지만…

도쿄올림픽 개막식은 전반적으로 일본의 전통이나 국가의 자부심을 보여주는 연출이 생각보다 적었다. 에도 시대를 표현하는 퍼포먼스나 가부끼 등 일부 요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당시 36명의 스모선수들이 등장, 140년 전통의 사찰 젠꼬지(善光寺)의 종소리, 일본의 통신기술을 보여는 5대륙 오케스트라 합동공연 등을 펼친 것과 비교하면 너무 소극적인 접근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일본 작가나 아티스트들을 내세워 선을 점으로 만드는 공연, 다양한 모양의 상자를 활용한 엠블럼 만들기나 탭댄스 등은 구성의 묘가 있었다.

23일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뉴시스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뉴시스

현대적인 퍼포먼스 프로그램 중 가장 뛰어난 것은 픽토그램(pictogram) 쇼다. 픽토그램은 1964년 도쿄올림픽부터 도입됐는데 경기장이나 종목 표시를 그림문자로 하는 것을 말한다.

일본의 마임 아티스트 히로폰과 마임 듀오 가베즈가 참여해 온 몸과 푸른색·흰색 의상, 각종 도구를 활용해 올림픽 종목을 표현했다. 두 사람이 49개의 픽토그램과 마지막 메달 세리모니 장면까지 50개의 픽토그램을 단 5분 만에 연출한 쇼는 압권이었다.

MBC스포츠탐험대 영상 화면 캡처.
올림픽 종목을 픽토그램으로 표현하는 모습. MBC스포츠탐험대 영상 화면 캡처

안타까운 건 선수들이 적다보니 운동장은 넓게만 보이고, 관중이 없어 도쿄올림픽 스타디움 관중석이 텅 비어있었다는 점이다. 선수들이 입장할 때마다 나오는 함성도, 성화가 들어오고 점화되는 순간의 환호도 없었다. 입구의 교통체증과 수많은 인파의 기다림, 그리고 관중의 흥분과 함성, 박수가 없는 개막식은 그야말로 TV중계를 위한 박제된 무대처럼 느껴졌다. 일본이 내세운 전진보다는 회상이, 벅찬 감동보다는 일본과 세계가 처한 코로나 팬데믹의 현실을 냉철히 보여주는 것 같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2021-07-30 11:17:06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