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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와 소셜여론, 새로운 의문들
언론보도와 소셜여론, 새로운 의문들
  • 정용민 (ymchung@strategysalad.com)
  • 승인 2021.07.27 1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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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민의 Crisis Talk]
여론 파악·해석 방법 바뀌어…이슈·위기관리 목표는?

*이 칼럼은 2회에 걸쳐 게재됩니다. 

[더피알=정용민] 예전 이슈관리나 위기관리 원칙에서는 어떠한 부정 상황이 발생했을 때 관련 공중이나 이해관계자들을 잘 살펴 기업의 대응 방향과 전략을 정리하라고 조언한다. 여기에서 공중 및 이해관계자를 잘 살피라는 의미는 발생 상황에 대한 그들의 의견, 감정, 태도, 느낌 등 여론을 다방면으로 리스닝해 보고 분석해 대응 기조를 정하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실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 상황을 둘러싸고 있는 공중과 이해관계자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제한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기업은 언론 기사와 논설을 주로 읽고 그것을 여론으로 이해했다. 일부 여론지도층의 개인 의견을 들어 그것을 공중과 이해관계자들의 마음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이후 점차 공중 및 이해관계자의 형태와 생각이 다양해지고, 이슈·위기 유형과 지속성이 변화무쌍해지면서 유사시 공중 및 이해관계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 내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에게는 소셜미디어라는 신세계가 열렸다.

그때부터는 기업이 직접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게 됐다. 수많은 소셜미디어 채널 각각에서의 의견들을 다각적으로 듣고 분석할 수 있다. 전반적인 여론의 흐름을 기업 스스로 완벽에 가깝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도 지속적으로.

소셜미디어 공중의 의견을 듣고 분석해 이슈나 위기 대응의 기조를 정하는 것이 익숙해지면서 여론을 파악하는 일이 이전보다 쉬워진 것 같았다. 그러나 새로운 의문이 생겨났다. 침묵하는 다수가 어느 곳에서나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소셜미디어상에서 시끄럽게 소리치는 소수보다 훨씬 더 많은 다수가 침묵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소수가 다수를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도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 기업의 고민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과연 현 상황에서 소셜미디어상에서 소리치는 일부 공중의 의견을 사회 전체의 여론으로 해석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다시 품게 됐다. 그렇다면, 일부 진영의 의견을 대변하는 전통 언론을 사회 전체의 여론으로 간주해도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됐다. 어차피 기존 언론이나 소셜미디어나 각각 자기 진영이나 도그마에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소리치는 소수는 그저 소수일 뿐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아 보인다. 앞으로 더욱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소리치는 소수라고 부를 때 일부는 ‘소수(minority)’에 방점을 찍는다. 반대로 일부는 ‘소리치는’에 무게를 둔다. 이슈나 위기의 관점에서 볼 때 모든 부정 상황에서는 소리치는 자들이 생겨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대부분 상황과 관련된 분노를 이야기하고, 실망감을 표현하고, 아파하고, 슬퍼하며, 비웃음을 보낸다. 상호간에 감정을 공유하면서 자신과 유사한 감정을 가진 공중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며 성장한다.

바로 그들이 소리치는 소수다. 침묵하는 다수가 존재하는지는 누구도 확신 못한다. 그러나, 소리치는 소수가 존재하고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관찰 가능하다. 실재하는 공중인 것이다. 그들의 소리가 커져 다른 주변 이해관계자들이 듣게 되면, 상황은 이전과 또 달라진다. 이때부터는 심각성이 더해진다. 추가적으로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상황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그에 따라 기업이 해당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 마주해야 하는 이해관계자들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그들에 의한 압력과 공격, 그로 인한 장기간의 부담이 기업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가져온다. 위기가 돼버리는 것이다.

소리치는 소수는 대저택 마당에 풀어 놓은 ‘큰 개’들과 같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자신을 왓치독(watch dog)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문제를 보고 그들이 짖기 시작하고, 그 소리가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집 주인(다른 공중과 이해관계자들)은 현관문을 열고 정원으로 나와 보게 된다.

문제의 중심에 서 있는 기업에게는 이 순간이 가장 두렵고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문제를 보았음에도 소리치지 않는 개들(침묵하는 다수)은 이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셈이다. 소수가 시끄럽게 소리치는 것을 멈추게 하는 것이 최근 이슈 및 위기관리의 목표가 되고 있다. 소리치던 소수가 점차 목소리를 줄여 나가게 하는 것, 소리치는 소수가 점차 사라지게 이끄는 대응 방식을 전략적으로 고민해야 하게 되었다.

▷소리치는 소수 vs. 침묵하는 다수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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