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상’ 입고 출발한 5기 방심위, ‘전문가주의’ 필요하다
‘내상’ 입고 출발한 5기 방심위, ‘전문가주의’ 필요하다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21.08.1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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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출범했지만 ‘정치적 편향성’ 논란 여전
與 언론개혁법안과 맞물려 논란 더욱 가중될 듯
전문가들 “명확한 심의기준 만들어야” “오히려 가이드라인 만들 수 있는 기회”
정연주 신임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방심위 제공
정연주 신임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방심위 제공

[더피알=문용필 기자] ‘우여곡절’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8월 9일자로 새롭게 출범하게 된 제 5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이야기다. 지난 1월 4기 방심위원들이 물러난 이후 구성이 늦어져 업무공백이 초래된 지 약 6개월만의 일이다. 위원회는 호선을 통해 정연주 위원을 위원장으로 선출하고 공식적인 업무에 들어갔다.

만시지탄이긴 해도 방심위가 재가동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현재 방심위에는 지난달 기준으로 무려 16만건이 넘는 민원이 쌓여있다. 5기 방심위를 이끌게 된 정연주 위원장은 취임사를 통해 “정상적인 업무처리와 함께 그동안의 공백으로 인해 적체된 업무를 조속히 처리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연말까지는 적체업무를 모두 해소해 위원회의 정상화를 이루겠다”고 말했다.

산적한 업무만큼이나 우려되는 건 여전히 ‘찝찝한’ 잔상이 남아있는 방심위 구성 과정이다. 참여정부 당시 KBS 사장을 지낸 정연주 위원장에 대한 편향성 논란이 불거졌고 이에 야당이 반발하면서 과도한 업무공백이 생겼다.

논란을 야기할만한 인사를 선택한 정부‧여당이나 늑장출범에 일조한 야당이나 모두 잘한 건 없지만 결과적으로 5기 방심위는 적잖은 정치적 내상을 입은 채 업무를 시작하게 됐다. 심의과정에서 특정 방송사에 대한 ‘봐주기’ 혹은 ‘때리기’ 의혹이 제기되거나 정치적 색채가 조금이라도 묻어나는 심의결과가 나올 경우엔 쉽게 공격받을 수 있는 빌미가 생겼다는 말이다.

방송과 통신영역에서 왜곡되고 편향된 정보의 옥석을 가려야 할 방심위로서는 무시못할 아킬레스건이다. 게다가 이번 방심위는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선거방송심의위원회를 꾸려야 한다. 적잖은 잡음이 예상된다.
 

실제로 정연주 체제의 방심위 출범을 두고 야당에선 공격이 이어졌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인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 몫의 방심위원으로 추천할 때부터 예견된 수순이었다”며 “편향의 아이콘 정씨가 방송 공정성을 심의하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라고 날을 세웠다. 같은당 김기현 원내대표는 1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정연주 위원장이 노무현 정권 때부터 보여준 정치적 편향성과 정권에 대한 맹목적 충성에 비추어보건대 그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는 너무나 뻔하다”고 주장했다.

여당이 추진 중인 이른바 언론개혁법안과 방심위 출범을 동일선상에서 바라볼 소지도 남아있다. 최근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을 골자로 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회 문회체육관광위원회 소위를 통과한 것을 두고 언론계 안팎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이번 방심위까지 편향성 논란을 안고 가게 된 것은 자칫 언론 길들이기 의혹에 근거를 더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언론학자 A씨는 “선거정국에 들어가면 정치적으로 편향된 유튜버들,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정보들을 (방심위가) 심의해야 하는데 가짜뉴스 규제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다 엉켜있다고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방심위로서는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매지 않는’ 그 이상의 신중한 태도가 필요해 보인다.
 

정연주 위원장도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우려를 잘 알고 있는 모습이다. 정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위원회의 정치적 독립성과 심의업무의 중립성을 지켜내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며 “밖으로부터의 그 어떤 압력도 막아내겠다”고 말했다. “우리 위원회는 아홉 분의 위원들이 두루 서로 존중하고 상대를 인정하면서 대화와 논의를 통해 의견을 모아가는 합의체 기구”라고도 했다.

하지만 위원장 취임사에 담긴 ‘워딩’만으로 편향성 우려를 완전히 씻어내긴 어렵다. A씨는 “(그간) 방심위 심의기준을 보면 위원들이나 소위의 재량적, 자의적 판단이 커 보인다. 위원들이 기분 좋게 출근했느냐에 따라 심의나 제재수준이 달라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라며 “심의라는 게 잣대를 대고 줄 긋듯 할 수 없다는 논리도 이해하지만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수위가 달라진다는 구설수가 없으려면 초기 단계에서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방송전문가 B씨 역시 비슷한 견해를 나타냈다. 그는 “방송이나 온라인 상에서 어느 선까지만 (표현이) 가능하다는 합의를 해놓은 상태에서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해야 한다.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사안마다 (여야 추천 위원들끼리) 다툴 수밖에 없다. 방송사들에게도 이를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제는 그런 작업이 필요한 타이밍이 아닐까 한다. 오히려 논란이 됐을 때 논의가 이뤄져야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되레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진영논리를 떠나 위원들이 논의를 통해 업무영역도 점검하고 언론의 기본기능에 대해 정의하는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방심위 구성과정에서 더 이상 잡음이 일어나선 안된다는 점이다. 대통령과 여야 정당이 위원들을 추천하는 시스템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언론학자 A씨는 “규제기관인 방심위와 방송통신위원회, 그리고 공영방송 KBS는 여야가 위원이나 이사를 추천하는데 이런 상황에선 방송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유인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이들 위원회나 이사회가 새로 꾸려질때마다 정치적인 이슈가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반복돼 왔다”며 “당장은 (체계를) 바꿀 순 없겠지만 장기적으론 전문가주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방심위 홍보실 관계자는 정치적 편향성 논란과 관련해 “위원장께서 취임사를 통해 정치적 독립성과 심의업무 중립성, 당장의 긴 공백으로 인한 최우선 과제 등 여러 가지 부분을 상세하게 언급했다”며 “그 부분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는 입장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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