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손배’ 도입한 언론중재법, PR인들 시각은?
‘징벌적손배’ 도입한 언론중재법, PR인들 시각은?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21.08.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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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 피해사례 많은 또다른 이해당사자
“언론보도 책임져야 한다” 찬성론에 무게…“법리적 다툼만 커질 듯” 반대 입장도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린 정의당과 언론4단체의 언론중재법 재논의 촉구 공동기자회견. 뉴시스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린 정의당과 언론4단체의 언론중재법 재논의 촉구 공동기자회견. 뉴시스

[더피알=문용필 기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가짜뉴스와 왜곡보도로 인한 피해 최소화 방안으로 내놓은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언론중재법)’을 두고 정치권과 언론계 안팎이 시끌시끌하다. 언론의 고의적 혹은 중대과실 보도로 인해 피해를 입을 경우 손해액의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 해당 법안의 골자다.
 

민주당은 8월 중 국회에서 해당 법안 처리를 매조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언론계 반발을 크게 사고 있는 일부 내용에 대한 수정안까지 내놓으며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개별 언론사는 물론 언론 관련 단체들도 일제히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다는 명분을 앞세워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관련 토론회가 잇따라 개최되고 반대성명도 계속되고 있다.

일례로 한국언론학회 회장단은 16일 성명을 통해 “법안이 처리된다면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반민주적 악법으로 변할 것”이라며 여야와 언론계, 학계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논의기구를 설치해 가짜뉴스 종합대책을 원점에서 재수립할 것을 제안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한국기자협회 등도 “실질적인 피해 구제와는 동떨어진, 언론 통제 및 언론자유 침해로 직결될 여지가 크다”고 주장했다.

언론계는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만큼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데 해당법안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될 또다른 이들이 있다. 언론사와 기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기업PR 담당자들이다. 그간 언론의 무리한 취재나 왜곡된 보도로 인해 속앓이를 하거나 회사 차원의 손해를 보는 케이스가 있었기 때문. 이에 더피알은 일선 기업PR담당자들에게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물어봤다.

“기존 제도 실제 활용 어렵다…심증만으로 기사 쓰고 봐”

더피알의 취재에 응한 대부분의 기업 PR인들은 언론인들과는 달리 법안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언론의 오보에 대한 강력한 법적장치가 존재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IT기업 소속 A과장은 “도입이 필요한 법안이라고 생각한다. 큰 힘을 가지면 그만큼 책임이 따르기 마련인데 (언론들은) 그간 힘만큼의 책임을 지지 않았던 면이 많다”고 했다.

A과장은 “지금도 정정보도 요청 등의 (법적) 제도가 있지만 기업들은 잘 활용하지 않는다. 품이 드는 것에 비해 실제 효과는 미미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언론사에) 찍혀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긴다고 해도 언론사엔 별 타격이 없다. (오보에 책임을 묻는) 기존 제도들을 실제로 활용하긴 어렵다”며 해당 법안의 도입 당위성을 이야기했다.

소비재 기업에서 PR업무를 담당하는 B부장은 “언론이 정치적인 문제로 다뤄지면 안된다”고 전제하면서도 “개인적으론 언론의 오보피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회적 공기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았던 부분, 가장 기본 요건인 불편부당, 사실기반, 뉴스의 시의성 등에서 언론이 제대로 역할을 했느냐는 차원으로 보면 (강화된 법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그는 “이번 기회에 언론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스타트업 기업에서 일을 하는 C씨도 “아무리 기자들에게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그럴싸한 심증이 있다면 기사를 쓰고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황들을 놓고 보면 기업PR하는 입장에선 든든한 ‘빽’이 생겼다고 느낄 수 있다”며 “허위기사를 멈추게 하는 근거로서 법을 강화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크게 공감한다. 기자들도 한번 더 (팩트를) 확인하고 보도할 수 있다면 위험할 수 있는 기사를 차단하는 근거가 될 수 있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다만 C씨는 ‘현실론’을 언급하기도 했다. 언론과 기업의 관계가 중요한 국내 PR의 풍토상 법이 통과하더라도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이와 함께 C씨는 “기자들 입장에서도 위축되는 측면이 있을 것 같다”는 시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B2B(기업대 기업간 거래) 기업에 몸담고 있는 D부장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그는 “PR담당자이지만 (한편에) 치우친 법안인 것 같다”며 “지금도 유무형의 손해를 따지면서 (기업들이) 언론을 대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형법 등 현재 시행중인 법령만으로도 충분히 오보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D부장은 “소송으로 갈 정도로 문제가 있거나 아주 나쁜 의도를 갖고 쓴 기사라면 (법적 조치) 이전에 다른 데서 문제가 드러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법리적 다툼만 더욱 커질 것 같다. 얼마만큼 손해를 봤는지 정량적으로 분석해야 하는데 그 부분이 녹록치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언론중재법 개정 여부와 상관없이 언론 제어장치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중견기업에 재직하는 E차장은 “필드에 있는 사람 입장에선 작금의 (언론) 상황에 대해 뭔가 제도가 도입돼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새로 법을 만들든 현행법을 적용하든 무책임하고 근거없는 언론보도에 대해 ‘아니면 말고 식’이 아닌 당연한 책임을 져야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핵심 내용 솎아보기

논란이 되고 있는 여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핵심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다. 언론의 고의 또는 중대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로 피해를 입은 경우 법원이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액을 정할수 있도록(제 30조의 2)한 것. 여기에 언론사의 전년도 매출액의 1만분의 1에서 1000분의 1까지 곱한 금액을 손해액으로 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매출액이 없는 언론사도 최대 1억원까지 손해배상을 할 수 있다(제 30조). 이를 두고 언론계에서는 과잉입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등 현행법으로도 허위보도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악의를 가진 허위·조작보도’라는 단서를 달아놓긴 했지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대기업과 주요주주, 임원, 그리고 고위공직자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악용해 언론의 입을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고의·중과실 추정’을 명시한 제 30조 3도 논란의 대상이다. △취재 과정에서 법률을 위반하거나 △인터넷 신문이나 포털이 정정보도 청구와 정정보도 등이 있음을 표시하지 않은 경우△계속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보도 △기사 제목 왜곡 등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고의·중과실이 없었다는 점을 언론사 스스로가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민법상 원고(피해자) 입증 책임 원칙과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여기에 언론사가 손해배상 시 명백한 고의 중과실을 저지른 보도 작성자(기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제 30조 4). 

열람차단청구권(제 17조의 2)도 논쟁의 중심에 있다. 개정안은 인터넷 언론보도로 인해 피해를 입을 경우 해당 매체와 포털에 기사 열람차단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는데 사실상의 기사 삭제와 다름 없다. 요건은 △진실하지 않은 제목이나 주요 본문 내용 △개인의 사생활 핵심영역 침해 △인격권의 계속적 침해 등이다. 열람차단청구를 받은 기사를 표시(제 17조 3)해야 하는 ‘인터넷뉴스서비스에 대한 특칙’ 조항은 일종의 낙인효과로 인해 해당 언론사의 신뢰도를 하락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타난다.

언론계 반발에 수정안 제시

언론계와 야당의 거센 반대에 부딪힌 민주당은 수정안을 내놓은 상태다. 주요 내용을 보면 우선 ’고의 또는 중대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라는 징벌적 손해배상요건에 ’명백한‘이라는 표현을 삽입했으며, 언론사 매출액 관련 항목도 ’사회적 영향력과 전년도 매출액‘으로 수정했다. 매출액이 없거나 매출액 산정이 곤란한 경우에 대한 단서 조항은 삭제됐다.

대기업과 고위공직자에 대해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적용하지 않도록 했으며 공익신고자보호법상 공익침해행위 관련 보도와 김영란법 금지 행위 관련 보도, 그리고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보도도 대상에서 제외했다. 기자에 대한 소속 언론사의 구상권 청구요건 조항도 없어졌다. 열람차단청구를 받은 기사를 표시하기로 한 제 17조의 2도 수정됐다. 

수정안이 제시됐음에도 야당과 언론계의 반발은 여전한 상황. 하지만 해당 법안은 야당인 국민의힘이 불참한 가운데 18일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를 통과했다. 민주당은 19일 열리는 문체위 전체회의에서 이를 의결하고 25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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