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장 물이 빠질 때를 대비하는 언론관계 역량
풀장 물이 빠질 때를 대비하는 언론관계 역량
  • 정용민 (ymchung@strategysalad.com)
  • 승인 2021.08.2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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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민의 Crisis Talk]
유가기사 만연한 미디어 환경서 종종 착시효과
거대 부정이슈에서 ‘민낯’ 드러나…미디어리스트부터 봐야

*이 칼럼은 2회에 걸쳐 게재됩니다. 

[더피알=정용민] 세계적 투자자인 워렌 버핏이 이야기했다. “누구나 즐겁게 수영을 하지만, 그 풀장에 물이 빠져나가면 누가 수영복을 입고 있지 않았는지가 드러난다.”

평소에는 다 비슷해 보여도, 시장이 어려워졌을 때에는 어떤 기업의 펀더멘털(Fundamental·기초)이 좋은지가 그대로 나타난다는 비유다. 이슈나 위기관리에서도 그렇다. 평소에는 대부분의 기업이 이미지가 좋고 평판도 훌륭해 보이지만, 그 회사에 부정적 상황이 발생했을 때에는 해당 기업의 실제 이미지와 평판이 그대로 드러난다. 정상기업인지 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

기업의 언론관계 역량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해당 역량에 대한 착시 현상이 존재한다. 요즘같이 유가(buying)를 기반으로 보도자료나 기사를 뿌려댈 수 있는 환경에서는 더욱더 언론관계 역량의 품질을 식별하기 어렵다. 예산이 풍부하면 그에 따라 일정 수준 이상의 기사와 버즈가 생성되니, 그 결과를 놓고 언론관계를 잘한다, 홍보를 열심히 한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거대한 부정 이슈나 위기가 발발하면 해당 기업의 언론관계의 민낯은 고스란히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된다. 

미디어리스트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

가장 대표적 언론관계 역량의 문제가 미디어리스트와 관련돼 있다. 기업 언론관계의 수준을 평가하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홍보실로부터 최신 버전의 미디어리스트를 받아 점검해 보면 된다. 자사를 담당하는 기자들의 리스트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다.

대부분 언론관계 업무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기업들의 미디어리스트는 기준이 모호하거나, 예전 담당 기자의 정보가 들어있거나, 새롭게 변하는 상황과 정보를 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갑작스럽게 상황이 발생해 자사 해명문이나 사과문을 언론에 배포해야 하는데, 그 리스트가 충분하거나 유효하지 못한 상황에 처하는 기업들이 있다. 미디어리스트 내 한 언론사에는 데스크급 기자의 정보가 전부이고, 어떤 언론사는 이미 퇴사한 기자들의 정보만 가득 들어있다고 생각해 보자. 미디어리스트는 전혀 쓸모없는 쓰레기인 셈이다.

아는 기자는 많은데, 친한 기자가 없다.

이 또한 전형적으로 이슈나 위기관리 시 기업이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이유다. 미디어리스트에 담당 기자 정보가 200~300명 되지만, 딱히 전화를 걸어 정보를 확인하기 쉬운 기자가 없는 상황이 이런 경우다.

예전에 친했던 기자는 이미 다른 부서로 발령돼 직접적으로 해당 이슈와는 상관이 없다. 그래도 아주 모르는 기자보다는 낫겠지 하며 그 옛 기자에게 전화해 간접적인 확인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전형적으로 언론관계 업무와 관련해 제 숙제를 그때그때 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이슈관리를 위해 한 경제지 내부 분위기를 알고 싶다고 그 경제지의 자매지 기자에게 전화를 건다든가, 한 종편의 취재 내용을 확인하고 싶어 같은 오너의 일간지 기자를 만나 본다든가, 광고국을 통해 상황을 알아보는 것도 그런 류다. 직접적 언론 네트워크 대신 간접적 또는 두세 다리를 건너서 상황을 파악하는 활동이 많은데, 이 모든 것이 언론관계 역량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가리스 코로나19 효과’ 논란 이후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지난 5월 7일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며 눈물을 보이는 모습. *칼럼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자료사진) 뉴시스
‘불가리스 코로나19 효과’ 논란 이후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지난 5월 7일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며 눈물을 보이는 모습. *칼럼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자료사진) 뉴시스

정보 취득의 범위나 정확성이 떨어진다.

당연한 결과다. 앞서 미디어리스트와 친한 기자의 부재 원인과 바로 연결되는 결과다. 부정적 이슈가 발생했을 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작업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분석하는 것인데, 이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워지지 않는다.

상황 정보를 취합해 본 경험이 있는 실무자들은 공감하겠지만, 정보를 조각 조각으로 입수해서는 정확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쉽지 않다. 충분해 보이는 깊이 있는 정보를 얻었다 해도 그에 대해 크로스 체킹해 보기 전에는 정확성을 부여할 수 없다. 자꾸 새롭게 충돌하거나 가려져 있는 다른 정보들이 나타나고, 주장과 예측이 진짜 정보들과 버무려져 혼란스럽기만 하게 된다.

언론관계 숙제를 제대로 해놓지 못한 기업은 기자들을 통한 정보 취득과 분석 작업은 일단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입수되는 정보의 양이나 질이 형편없을 뿐 아니라, 정확성도 상당히 떨어지는 수준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정보를 제공한다는 언론계 소스가 아주 예전 기자였던 분이거나, 현장에서 떨어져 있는 단순 시니어 기자이거나,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분이면 상황은 더욱더 재앙적으로 변한다.

다른 출입처 기자 리스트가 없다.

일반적으로 기업에게 부정적 상황이라면 담당기자 리스트와 커넥션은 기본이고 그에 더해 법조, 국회, 특정 규제기관 출입기자단 리스트가 어느 정도 구비돼 있어야 대응 업무가 가능해진다.

미디어리스트가 곧 언론관계나 커넥션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경험 있는 홍보임원이나 팀장이 있는 기업에서는 이전 기자들이 출입처가 변경돼 여러 주요 기자단에 포함돼 있는 경우가 많아 커넥션을 찾을 수 있다. 리스트만 있으면 즉각적인 커넥션 활용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따라서 기업에게 부정적 상황이 발생하면, 홍보실은 관련 기관이나 조직의 담당 기자 리스트를 구하려 애쓴다. 각종 방식으로 우회해 미디어리스트를 입수하고, 그 중 관계가 있는 기자들을 찾아내 정리하며 접근 방식을 고민한다.

이는 그나마 언론관계 역량이 일정 수준 이상 갖춰진 기업이다. 그 외 기업은 혹시나 운 좋게 해당 기관의 미디어리스트를 구했다 해도 별 소용이 없다.

▷풀장 물이 빠졌을 때 드러나는 위기관리 역량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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