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앵커’ 비리 보도한 CNN, 국내 언론들 보고 있나?
‘간판앵커’ 비리 보도한 CNN, 국내 언론들 보고 있나?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21.12.0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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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크리스 쿠오모 부적절한 처신, 해고사실 객관적으로 보도
장기적으로 신뢰도 상승에 도움될 수 있어…내부 구성원 일탈 쉬쉬하는 국내 사례와 차이나
자사 앵커였던 크리스 쿠오모의 해고사실을 보도한 CNN. 웹사이트 캡처
자사 앵커였던 크리스 쿠오모의 해고사실을 보도한 CNN. 웹사이트 캡처

[더피알=문용필 기자] 언론의 기본 책무 중 하나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안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정확하게 보도하고 이를 통해 시민들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취재나 보도방식에 비윤리적인 면이 없다면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을 막론하고 ‘성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맥락에서 지난 5일(현지시간) CNN 웹사이트에 올라온 한 보도는 언론사 스스로도 ‘성역’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사례였다. 자사 뉴스프로그램 ‘쿠오모 프라임 타임(Cuomo Prime Time)’를 이끌어 온 앵커 크리스 쿠오모(Chris Couomo)를 해고했다는 소식이다.

그의 이름을 딴 프로그램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쿠오모는 CNN을 대표하는 앵커 중 한명이었다. 하지만 현직 언론인임에도 형이자 전 뉴욕 주지사인 앤드류 쿠오모(Andrew Cuomo)의 성추문 수습에 적극 개입한 정황이 담긴 자료가 제시됐고 정직 처분을 받았다.

이후 CNN은 자체 로펌 조사에 따라 사건 관련 추가 정보가 나오자 그를 해고했다. 이 소식은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간판 앵커의 부적절한 행동이 드러났다면 대외 성명을 통해 입장을 전달하거나 시청자들에 대한 사과로 갈무리할 수도 있을 터. 하지만 CNN은 이번 사안을 다른 보도와 크게 다름없이 충실히 보도했다.

CNN은 사건의 포인트와 자사와 쿠오모의 입장 발표 내용, 그리고 프로그램이 향후 어떻게 운영될지도 자세하게 전했다. 기사 내용만 보면 마치 이번 사건이 자사와 무관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객관적이다. 회사 문제와 저널리즘은 별개의 영역이라고 선을 긋는 것 같다.

만약 국내 언론에 이같은 상황이 발생했다면 CNN처럼 보도할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도 일부 신문·방송사 구성원들이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도마에 오른 일이 왕왕 있었다. 이름만 대면 일반인들도 충분히 알 정도의 인지도가 있는 인물도 있었다. 하지만 관련 소식이 알려졌을 때, 소속 회사들의 조치는 CNN과 사뭇 달랐다. 필요한 인사조치나 대외적인 사과에 나서긴 했어도 객관적으로 보도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혹은 뉴스에서 간단히 자사 입장을 전하는 수준에 그치는 정도다. 심지어 아예 모른 척 외면하는 경우도 있다. 언론의 취재엔 성역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 언론사’는 예외라는 일종의 이중잣대가 작용한다는 이야기다.

일례로 SBS는 지난 2019년 김성준 당시 논설위원이 ‘몰카(불법촬영) 파문’으로 경찰에 입건되는 일이 있었다. SBS는 사표 수리 사실을 전하면서 사과 입장을 내놓았지만 메인뉴스 말미에 짤막하게 보도하는 데 그쳤다. 이후 김 전 논설위원 재판 관련 보도가 온라인에 게재되긴 했지만 CNN 보도와는 사뭇 온도차가 느껴진다.

▷관련기사: SBS 8시 뉴스, ‘김성준 몰카’ 유감 표명했지만…

그나마 SBS는 양호한 편이다. TV조선은 올해 불거진 엄성섭 앵커의 금품수수 의혹에 대해 단 한 번도 보도하지 않았다. 엄 앵커는 방송에서 물러났지만 진행자 교체에 대해 회사 차원에서 별다른 공식 설명이 없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의혹 수준이라 보도에 신중함을 기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과연 타사 언론인이었다면 어떤 스탠스를 취했을 지 궁금해진다.      

구성원의 잘못된 행동이 자사 평판에 결코 도움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CNN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하지만 CNN은 문제를 숨기거나 침소봉대하지 않고 오히려 ‘언론답게’ 보도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물론 미국 방송사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문화적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CNN의 케이스는 한국 언론에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약점을 가감없이 보도하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악재가 될 수 있을지라도 장기적으로 언론 신뢰도를 쌓는 데 긍정적 영향을 가져올 것이다. 이런 게 바로 언론의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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