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현장] 당황주의! 샤넬의 친환경 아이스링크
[마케팅 현장] 당황주의! 샤넬의 친환경 아이스링크
  • 한나라 기자 (narahan0416@the-pr.co.kr)
  • 승인 2021.12.16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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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5° 100주년 기념 잠실 롯데월드몰에 개장
‘SNS 핫플’ 바이럴 되며 젊은층 소구,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 얼음판’에 기능성 아쉬워
현장 이용객 “포토존은 상당히 샤넬스럽지만…”
샤넬 아이스링크 포토존 일부 전경. 한나라 기자 
샤넬 아이스링크 포토존 일부 전경. 한나라 기자 

[더피알=한나라 기자] 명품 브랜드 샤넬에서 모바일 초대장 하나를 보냈다.  

“샤넬의 아이코닉 향수 100년을 기념하는 N°5 X ICE RINK 에 초대합니다. N°5와 함께 아이스 스케이팅을 즐기며 빛나는 홀리데이 무드를 느껴보세요.”

다른 명품과 마찬가지로 샤넬도 요즘은 젊은층을 타깃으로 공간 마케팅에 공을 들이는 중이다. 이번엔 롯데백화점과 손잡고 잠실에 아이스링크를 열었다고 하니 겨울 야외 스케이트장에 대한 로망에 들뜨면서도 샤넬스러움을 그 공간에 어떻게 풀어냈을지 흥미가 돋았다.

게다가 샤넬의 아이스링크는 12월 1일 개장 이후 SNS상에서 핫플레이스로 거론되고 있다. 거리두기 영향으로 시간당 100명씩 사전 예약을 통해서만 입장이 가능한데 이미 12월의 모든 날짜가 마감된 상태였다. 연말 분위기를 오랜만에 느낄 수 있는 핫플을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잠실 롯데월드몰 광장으로 향했다.

사전 예약이 동난 것과 달리 비교적 한산한 입구 모습. 한나라 기자
사전 예약이 동난 것과 달리 비교적 한산한 입구 모습. 한나라 기자

입구에 보이는 입간판을 거쳐 쭉 걸어가니 티켓 부스에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SNS 핫플이라기에는 생각보다 분위기가 한산했다. 사전 예약에서는 티켓이 동났다는데, 롯데월드몰이나 롯데백화점 10만원 이상 구매 영수증을 지참하면 현장에서도 예매가 가능했다. 현장 운영 직원은 “사전 예약은 모두 마감됐지만 실제 방문 인원은 사실상 거의 랜덤하다. 날씨 등의 여러 요소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이번 아이스링크 개장은 샤넬의 시그니처 제품인 N°5 향수의 100주년이자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기획됐다. 지난 여름에도 샤넬은 N°5 100주년을 기념해 서울 성수동에 향수 공장을 콘셉트로 ‘샤넬팩토리’라는 팝업 공간을 기획했는데, 계절 변화와 함께 공간 마케팅 콘셉트에도 변주를 준 것이다. 

샤넬 아이스링크는 크게 세 공간으로 나뉘어있다. 티켓부스, 스케이트 장비 대여소, 락커 등이 함께 있는 휴게 공간과 포토존,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빙판이다. 티켓을 보여주면 장갑과 헬멧, 스케이트를 빌려준다. 포토존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몰려있었다.

커플, 아이와 함께 온 부모님, 친구들끼리 온 이들.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크리스마스트리와 샤넬 로고, 달을 형상화한 조형물 앞에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중 중국인 유학생들이 보여 방문 배경을 물으니 “SNS를 보고 찾아왔다”는 답이 돌아왔다.

캐럴과 반짝거리는 불빛, 물씬 풍기는 연말 분위기에 마음이 들뜨기 시작할 때 샤넬 N°5의 향이 슬며시 느껴졌다. 포토존에서는 향수 시향을 할 수 있는 덕에 향이 자연스럽게 퍼진 것이다.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제품을 인지할 수 있다는 점이 꽤 괜찮았다. 포토존 곳곳에 N°5 제품을 설명하고 제품 샘플을 체험할 수 있는 QR 코드를 심어 둔 점도 눈에 들어왔다.

포토존에 사람들이 몰려있던 탓에 이 장소의 메인이라 생각한 아이스링크를 이용하는 인원은 적은 편이었다. 중간에 세워진 샤넬 조형물, 외관에 둘러진 N°5 간판들 외에 특별한 장치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겨울엔 스케이트가 아닌가!

편하게 야외 스케이팅을 즐기자는 마음 반, 빙판에 숨겨둔 장치가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 반으로 스케이트를 갈아신었다. 첫발을 내딛는 순간!

‘이게 뭐야? 아이스링크 맞아?’

그대로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 스케이트 날로 얼음을 차는 순간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가야 하는데, 바닥이 그대로 스케이트 날을 튕겨낸 것이다. 오랜만에 스케이트를 탄 탓일까 싶어 여러 번 벽을 잡고 스케이트를 차보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당황스러운 기분에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이용객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다들 벽을 손잡이 삼아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현장에서 아이스링크가 얼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한나라 기자
현장에서 아이스링크가 얼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한나라 기자

이유는 빙판 소재에 있었다. 사넬 아이스링크 빙판은 실제 얼음을 사용하지 않고 100% 재활용이 가능한 고분자 합성 플라스틱 소재에 윤활유를 뿌려 만들어졌다고 한다. ‘얼음을 얼리고, 낮은 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전기 사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환경에 기여할 수 있다고 했다.

초대장이나 사전 예약 당시 이런 설명이 없어 현장에서야 실제 얼음을 빙판으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 공간에선 스케이트를 자유롭게 탈 수 없다는 점도 같이 깨달았다.

겨우 한 바퀴를 돌아 나와 휴식을 취하고 있던 다른 이용객들에게 아이스링크 이용 소감을 물었다. 화장품 관련 일을 하며 샤넬 브랜드를 자주 접한다는 이용객 김미진 씨는 “포토존은 상당히 샤넬스럽다. 모던한 느낌이 잘 드러나는데, 아이스링크는 처음 발을 딛자마자 많이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일행 박지성 씨도 “포토존 등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많은데 아이스링크는 실제 얼음이 아니라 아쉽다”고 했다.…

문제의(?) 플라스틱 소재의 빙판 모습. 한나라 기자 
문제의(?) 플라스틱 소재의 빙판 모습. 한나라 기자 

운영 직원들 반응도 비슷했다. 현장 분위기에 대해 물으니 “낯선 소재인 만큼 스케이트를 타는 일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고, 넘어지는 사람들도 자주 있다. 사실상 스케이트를 체험한다기 대부분 포토존을 위주로 이용하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쯤 되니 의문이 들었다. 야외 스케이팅을 기대하고 온 이용객들을 당황시키면서까지 친환경을 고집할 필요성이 있었을까. 더불어 재활용이 100% 가능하다고 해도 빙판을 플라스틱 소재로 대신하는 것이 ‘진짜 친환경’이 맞을까. 실제 얼음 빙판이 아니라는 점이 사전에 정확하게 고지되지 않은 점도 아쉬웠다.

샤넬 아이스링크 전경. 한나라 기자

물론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샤넬의 이미지를 인증샷으로 담아 본인의 피드에 소장하는 것 역시 나름의 브랜드 경험이 될 수 있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2030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온라인을 통한 바이럴 효과를 고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샤넬의 이번 공간은 포토존이 아니라 ‘아이스링크’를 표방했기에 이용자 입장에선 충분히 실망스러울 수 있다. 애매한 ‘친환경 빙판’ 덕분에 아이스링크가 포토존으로 뒤바뀌었다. 오프라인 브랜드 공간이 철저하게 온라인 바이럴 효과를 위한 장치로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차라리 ‘샤넬 연말 포토스팟’으로 홍보했다면 실망할 필요 없이 가볍게 공간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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