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브랜드 세계관이 왜 필요하냐고요?”
“광고에서 브랜드 세계관이 왜 필요하냐고요?”
  • 정수환 기자 (meerkat@the-pr.co.kr)
  • 승인 2021.12.22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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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上] 더에스엠씨그룹 쉐이즈필름 성신효 감독, 주혜리 작가

[더피알=정수환 기자] 숏폼이 아니면 쉽게 스킵되는 세상이다. 그래서 모든 콘텐츠, 그리고 광고가 짧게, 더 짧게 자신을 깎아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역으로 스토리를 담아 장초수 광고를 제작해 눈길을 끄는 회사가 있다. 더에스엠씨그룹의 쉐이즈필름이다.

아무리 그래도 소비자들이 싫어하진 않을까 우려하는 것도 잠시, 이들이 제작한 SK하이닉스의 테네시티 신드롬 시리즈 광고는 최소 500만뷰, 최대 1000만뷰를 넘기며 순항 중이다. 반응도 생각보다 괜찮다. ‘광고 잘 만들었다’, ‘끝까지 스킵하지 않고 본 광고는 오랜만이다’ 등의 호평을 받고 있다. 대세를 역행(?)하며 소비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쉐이즈필름의 성신효 감독, 주혜리 작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왼쪽부터) 성신효 감독, 주혜리 작가. 더에스엠씨그룹 제공
(왼쪽부터) 성신효 감독, 주혜리 작가. 더에스엠씨그룹 제공

요즘같이 숏폼이 대두되는 시기에 한 편에 3분이 넘는 장초수 광고를 만드시는데요. 스토리텔링형 장초수 광고를 선보이는 이유가 뭔가요. 

성신효 감독(이하 성): 저희도 숏폼을 도전하고 있어요. 짧은 게 아닌 장초수의 스토리텔링형, 혹은 드라마형 광고만 한다는 접근은 절대 아니고요. 시간을 정했다기보단 찍다 보니 3-4분이 넘었다는 게 더 말이 되겠네요. 처음 찍을 때는 1분 30초에서 2분 정도 나올 줄 알았는데, 하다 보니 욕심이 더 생기고, 그래서 더 많은 걸 갖다 붙이고 촬영하다가 그렇게 됐습니다(웃음). 어차피 시간 제약이 없는 온라인 공간에서 선보이는 콘텐츠기에 저희 마음대로 늘어나게 되네요. 장초수를 노리고 했다기보다 어떤 한 이야기를 전달할 때 좀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희의 장점은 시간보다는 ‘스토리’가 아닐까 싶어요. 궁극적인 목표는 어떤 형태든 스토리를 전달하는 거예요. 짧은 숏폼이어도 그 안에 스토리를 담는 것이죠.

다양한 기업 브랜드의 광고를 만들어왔을 텐데 특정 브랜드의 매력을 어떻게 발견해 스토리 형태로 전달하는지 궁금해요.

주혜리 작가(이하 주): 기업이 품고 있는 가치관, 문화 혹은 원하는 인재상 등 각 기업마다 알리고 싶은 내용이 각각 다릅니다. 그래서 접근 방식이나 전달 방법도 웬만하면 다르게 하려고 해요. 통일된 것은 없고 매번 새로운 과제를 한다는 느낌으로 프로젝트에 임합니다. 

다만 캠페인마다 공통적으로 고려하는 지점은 있어요. 사안을 알리고 싶은 광고주 입장이 아닌,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합니다. 일반 기업들도 소비자 가치를 중심에 두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 듯이, 광고회사인 저희도 소비자 입장에서 제일 가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일지 고민합니다. 또 이런 방식으로 접근해야 재미있는 포인트가 많이 나오더라고요.

성: 저희가 만들었던 작품을 예로 들면, SK하이닉스의 테네시티 신드롬 시리즈의 경우 주 시청자를 예비 (입사)지원자로 잡고 있어요. 예비 지원자에게 SK하이닉스는 항상 가고 싶은 워너비 회사 중 하나니까요.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매력을 어필하면 좋을지 세심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또 삼성자산운용 광고는 정말 재미있게 작업한 기억이 있는데요. 사실 요즘 주식 안 하는 사람 거의 없잖아요. 주식은 이제 우리 모두의 이야기고, 그래서 풀어내는 게 더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시간은 쏟아야겠고, 그렇지만 주식에 대해 아는 건 없고. 주워들은 정보와 얕은 지식으로 시도해보지만 결국 망하고. 이런 부분들을 풀어내기가 쉬웠죠. 어쨌든 광고주 입장이 아닌 이를 듣고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포인트인 것 같아요.

광고 촬영 현장. 더에스엠씨그룹 제공

스토리텔링형 광고가 흔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또 아예 없는 건 아닌데요. 다른 회사 광고와는 차별화된, 쉐이즈필름만의 강점이 있을까요.

성: 그렇죠. 다른 광고회사에서도 비슷한 스타일의 광고를 많이 만들고 있어서 사실 뚜렷한 구분이 어렵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래도 저희가 지금까지 해왔던 패턴을 보면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습니다. 과한 표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요즘 인기 있는 스토리텔링형 광고들을 보면 대부분 과장된 표현, 연출이 들어가 있고 판타지적 요소가 포함돼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광고들에는 전형적인 광고의 문법이 섞여 있는 것 같아요. 눈에 확 들어오고 재밌고, 그래서 연계성보다는 시선을 확 끌 수 있어야 한다는 광고의 문법 말이죠. 하지만 저희는 전체적인 완성도나 연계성을 좀 더 중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전형적인 광고의 문법을 탈피하죠.

저는 쉐이즈필름의 영상이 ‘실제로 저런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고 착각을 일으키는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과한 연출을 빼고 저런 세상이 존재할 수 있겠다는 느낌을 주는 데 힘을 쏟죠. 사실 테네시티 신드롬도 원래는 그런 용어가 없거든요. 그런데 진짜 그런 병이 있고, 주인공인 ‘한희수’라는 사람이 진짜 SK하이닉스를 다니는 것처럼 영상을 만들어요. 실제로 SK하이닉스 직원들도 그 영상을 보면서 ‘저 사람은 하이닉스 직원인가?’라며 착각했다고 합니다(웃음).

저도 배우분이 정말 능청스럽게 영상에 잘 녹아서 실제 직원인 줄 알았어요. 배우인 거죠?

성: 물론 배우입니다. 그분을 캐스팅할 때도 여러 가지 옵션이 있었어요. 진짜 모델처럼 잘 생긴 사람과 잘 생겼지만 조금 현실적인 외모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요. 이건 광고며 만들어진 캐릭터라는 생각이 안 들게끔 적절한 선택을 했습니다.

테네시티 신드롬이 많이 언급되는데요. 많은 화제가 된 SK하이닉스의 테네시티 신드롬 광고 이야기로 넘어가보겠습니다. 어떻게 나오게 된 작품일까요.

주: 테네시티 신드롬은 SK하이닉스의 PR파트에서 저희에게 요청해 만들어진 작품이에요. 사실 조금 곤란했던 게, 저랑 감독님 둘 다 문과거든요. 그래서 반도체 등의 이야기가 나와 앞이 정말 깜깜했죠.

어쨌든 테네시티 신드롬은 반도체, 그리고 기술 중심의 이야기다 보니 자료를 엄청나게 많이 조사했어요. 직접 현업에 계신 분들도 인터뷰했고요. 처음 녹취를 풀고 정리했는데 기본으로 70페이지가 넘어가더라고요. 양이 너무 많은데, 또 그분들이 하시는 말이 모두 전문 용어란 말이죠. 그래서 이것저것 수시로 물어보고, 또 연구하면서 말 그대로 빡세게(?) 준비했습니다.

테네시티 신드롬을 소개하신 글을 봤는데, 브랜드의 세계관을 구축했다고 돼 있어요. 제가 워낙 세계관에 관심이 있어서 인상 깊었는데요. 우선 어떻게 세계관을 구축했는지 궁금합니다.

성: 일단 기본적으로 테네시티 신드롬은 시리즈물이에요. 현재 5편까지 나왔고, 내년 1월에 6편이 나올 예정입니다. 총 10편까지 준비하고 있어요. 그래서 광고주가 우스갯소리로 프로젝트가 다 끝나면 영화관에서 시리즈를 다 모아 한 번에 보자고 얘기하기도 했습니다(웃음). 저희도 물론 같은 생각이긴 했지만, 사실 광고주의 의견도 많이 들어갔어요. 1편을 보고 희수 캐릭터가 너무 마음에 들었는지 시리즈로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시리즈이기에 세계관을 쭉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또 주인공인 한희수 캐릭터가 테네시티 신드롬뿐만 아니라 다른 데서도 다양하게 쓰이고 있어요. 가령 SK하이닉스의 또 다른 캠페인인 행복GPS 영상에도 희수가 나오죠. 이런 방식으로 어딘가에서 나왔던 캐릭터가 다른 영상에도 쓰이면서 계속 연결되는 지점을 만들고 있어요. 물론 아직 이걸로 화제가 된 적은 없지만, 저희의 방식으로 계속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10편까지 하게 될 텐데 계속 쌓아놓다 보면 마블이 그랬던 것처럼 저희들도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열심히 빌드업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세계관을 염두에 두고 제작을 하니 광고주도 저희도 너무 재미있게 촬영하고 있습니다. 진짜 작품을 만드는 것처럼 열과 성을 다해 작업하고 있죠.

앞으로의 영상, 제가 깨알같이 심어놓으신 장치들을 잘 찾아보며 시청하도록 하겠습니다(웃음). 그런데 혹시 세계관을 구축하며 어려운 점은 없었을까요. 또 자칫하면 단조롭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어떻게 변주를 주고 있나요?

성: 시리즈로 결정이 됐으니, 캐릭터를 오랫동안 지속시키려면 주인공 주변에 이야기를 펼쳐나갈 또 다른 인물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이 작업에 계속 공을 들이고 있고요. 영상을 시청하다 보면 여자친구인 ‘수인’ 캐릭터가 나오기도 하는데요. 수인과 함께 SK하이닉스에 입사하면서 드라마를 펼치는 ‘사랑 세계관’도 선보이고 있습니다. 웬만한 스토리에는 사랑 아니면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잖아요. 이를 빼고 스토리를 만들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연출적으로도 스타일의 변화를 계속 주고 있습니다. 1편에서 5편까지 같은 형식이 없어요. 5편의 경우 유명 미국 드라마인 ‘모던 패밀리’의 느낌을 주려고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차용했어요. 매 편 포인트에 따라 연출 스타일을 계속 바꾸고 있습니다.

주: 어쨌든 메인 플롯은 SK하이닉스의 이야기여야 하잖아요. 어떤 편에서는 D램에 대한 이야기를, 어떤 편에서는 데이터를 다루는데 사실 이 메인 플롯만 이야기하면 재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러브라인을 서브 플롯으로 가져가 투트랙으로 진행하며 그 안에서 재미를 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테네시티 신드롬의 경우 같은 포맷인데 광고주 쪽에서 매번 새로운 스토리를 요구해서, 할 때마다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저희끼리는 앞서 말씀드렸듯 이 작업을 ‘SK하이닉스 시네마틱 유니버스’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한희수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모든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는 만큼 주의하는 사항도 꽤 있어요. 가령 주인공은 일관된 캐릭터를 유지해야 하니 여기에서 오는 피로도 있을 거란 말이죠. 그래서 실험적인 방식을 넣기도 하고 콘셉트도 다양하게 하고 있습니다. 6편에서는 제3의 인물이 처음 등장하는데, 주인공이랑 라이벌 구도라서 캐릭터를 좀 더 입체화해 질투심 등 그동안 주인공에게선 볼 수 없었던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근본적인 의문이 듭니다. 요즘 세계관 열풍을 타고 기업 측에서도 너도나도 세계관을 많이 만드는데요. 브랜드 입장에서 세계관이 정말 필요한 건가요?

성: SK하이닉스만 봐도 저는 그분들이 세계관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세계관을 통해 기본적인 스토리를 다져놨으니 이제 이 세계관은 어디에도 써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IP(지적자산)처럼 작용하는 것이죠. 하고 싶은 얘기가 달라져도, 신제품이나 서비스가 나올 때도 그때마다 세계관을 차용해 새로운 그림을 만들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인 것 같습니다.

▷“스토리텔링형 광고 한 편에 16개 버전은 준비해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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