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는 잘 모르는 크리스마스 씰 이야기
MZ는 잘 모르는 크리스마스 씰 이야기
  • 신인섭 (1929insshin@naver.com)
  • 승인 2021.12.24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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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한국 방문한 선교사 부부 통해 1932년 첫 시작
한국의 전통문화, 사회상 담아내…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가 지원하기도
​1937-1938년 크리스마스 씰. 필자 제공​
​1937-1938년 크리스마스 씰. 필자 제공​

[더피알=신인섭] 병인양요(1866) 때 평양에 침입했다가 불에 타서 침몰한 미국의 셔먼호와 그 배에 타고 왔다가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 그리고 대원군의 척화비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일화다. 강화조약은 1876년이니 병인양요가 일어난 10년 뒤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처럼 개항 6년 뒤인 1882년경에 미국과 수교하자 곧 호러스 알렌(Horace Allen) 의료 선교사, 뒤이어 호러스 언더우드(Horace Underwood)와 헨리 아펜젤러(Henry Appenzelle)가 한국에 왔다. 미국을 위시해 서구의 선교사들이 들어오는 때였다. 중국과 일본에 이어 가장 늦게 한국에도 이른바 서세동진(西勢東進)이 닥친 것이었다.

동방 은둔의 나라 문이 열리자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났는데, 사회·문화적으로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일 가운데 크리스마스 씰이 있다. 그 시작은 캐나다 출신 의료 선교사 부부인 윌리엄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과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이 1891년부터 1894년까지 평양에 머무는 동안 아들과 딸을 낳은 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불행하게도 홀(남편)은 숱한 고생 끝에 전염병으로 1894년에 사망했다. 남편을 잃고 혼자가 된 로제타는 한국에서 낳은 자녀를 데리고 본국에 돌아갔으나 1897년 다시 한국에 왔다. 그런 뒤 평양에 남편을 기념하는 병원을 세우고 부인과장으로 활동하며 맹인을 위해 한글 점자를 개발 보급하는 등 수많은 일을 했다. 그녀는 1930년대 후반까지 한국에서 40여년이나 의료 선교활동을 했다.

이 놀라운 여성의 아들 셔우드 홀(Sherwood Hall)과 역시 의료 선교사인 며느리 매리언 버텀리(Marian Bottomley)가 뒤를 이었고 부모 못지않게 많은 의료 선교활동을 펼쳤다. 자금은 이북인 황해도 해주에서 폐병 환자를 위해 1928년 해주구세요양원(海州救世療養院)을 세웠고, 기금 모집과 결핵 계몽운동을 위해 한국 최초로 크리스마스 씰 사업을 시작한 것이 1932년이다. 되도록 많은 한국 사람들이 참여하기를 바라면서 누구나 다 아는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을 씰 그림으로 정했으나<그림1> 일본 당국의 거부로 남대문으로 바꾸었다. (거절당한 거북선 디자인은 지금은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에는 <그림2>와 같이 남대문이 우뚝 서있고 영문으로 크리스마스와 새해 축하 메시지(XMAS AND NEW YEAR GREETINGS 1932-1933)가 있다. 그리고 그 밑으로 ‘GOOD HEALTH, 保健(보건)’이라는 영·한문으로 쓰인 문구가 있는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게 돼 있어서 해주구세요양원이란 한문 글자와는 방향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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