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로 오해되는 가짜 위기들 (1)
위기로 오해되는 가짜 위기들 (1)
  • 정용민 (ymchung@strategysalad.com)
  • 승인 2022.02.15 1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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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민의 Crisis Talk]
홍보실의 역할 재정의 필요
…범죄행위 변호하는 건 위기관리 아냐

*이 칼럼은 2회에 걸쳐 게재됩니다.

[더피알=정용민] 기업의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가장 초반에 진행하는 작업은 자사와 관련한 ‘위기요소 진단’이다. 단어는 어려워 보여도 개념은 쉽다. 자사에 발생 가능한 위기 유형들을 모두 끌어내서 우선순위와 위해도에 따라 정리해 보는 작업이다.

그 과정에서 위기관리 조직 구성원들은 다양한 생각과 예측을 한다. 각각의 위기 유형에 대해 많은 토론의 기회도 가지게 된다. 이를 통해 자사에게 발생 가능한 주요 위기들을 하나하나 학습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위기관리 조직 스스로 위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위기라고 보기 어려운 문제 유형이 꽤 있다는 것이다. 왜 그 유형을 위기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면 여러 이유를 대지만, 확실하게 해명이 되지는 않는다. 일단 그 위기가 발생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는 결과론적인 시각에 주로 집중하기 때문인 듯하다.

기업들이 생각하는 위기 중 사실 위기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들을 한번 정리해 본다. 정확하게 위기를 위기라 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위기라고 보기 어려운 것을 위기라 정의하는 것은 그 스스로 위험한 행위다. 위기에는 위기관리가 필요하지만, 위기가 아닌 것을 위기로 간주하면서 위기관리를 하려 하면 진짜 더 큰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첫째, 범죄행위로 인한 상황은 위기가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A 회사 회장께서 음주운전을 하다 사람을 치어 사망하게 했다. 너무나 무서운 나머지 회장은 사고 직후 뺑소니를 쳤다. 경찰의 조사가 시작되자, 스스로 사고 차량을 운전한 적이 없다고 하면서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체포와 강제 조사를 예상하고 있다.

만약 이 상황을 위기라고 정의한다면 기업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회장의 범죄 행위로 인한 문제들을 관리해 최종적으로 어떤 위기관리 목적과 목표를 세울 수 있을까? 전략적인 경찰조사 응대를 통해 회장의 무혐의를 받아내는 것이 위기관리 목적과 목표가 돼야 하나? 아니면, 회장의 사고와 뺑소니 행위에 대한 형벌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적과 목표가 될까? 이를 위해 대형 로펌과 한 팀을 이루어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해서 회장의 행위에 대한 정상참작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위기관리일까?

세계 어느 나라의 어느 기업도 자사와 자사 구성원의 범죄행위를 위기라 부르지는 않는다. 범죄행위는 위기가 아니다. 따라서 위기관리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법에 의해 죄값을 받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그렇다면 기업 위기관리 조직은 회장의 범죄행위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나올 것이다.

기업의 위기관리 조직은 회장의 범죄행위로 인한 사회적 여론 악화와 사업 지속가능성에 대한 데미지(damage)를 면밀하게 관리해 나가야 할 필요는 있다. 회장의 범죄행위에 대한 사후 관리에 집중하기보다는, 이를 둘러싼 사회적, 사업적 여파를 관리하는 데 집중하라는 것이다. 데미지 콘트롤이라고 하는데, 이런 분별이 있을 때 일부 데미지 콘트롤 목적의 위기관리가 가능하다 할 것이다.

둘째,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은 위기가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아기들을 위해 건강 이유식 통조림을 만들어 인기를 누리는 식품회사가 있다. 모든 재료를 국산 유기농으로 만든다고 해서 아기와 부모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러나 최근 원재료 가격이 폭등하고, 수급이 불안정해지자 내부에서 일반 원재료를 섞어 쓰기 시작했다. 심지어 특정 재료는 수입산까지 사용하다가, 이번 소비자단체의 무작위 조사 결과, 제품 성분에서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

만약 이 상황을 위기라 정의하면 기업에서는 어떤 대응을 할 수 있을까? 소비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국산 유기농 원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해야 할까? 심지어 수입산 재료를 쓰다가 농약 성분이 검출된 것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일반 원재료를 사용했을 뿐이라고 문제의 기간과 규모를 축소시켜야 할까? 제품에서 검출된 농약 성분에 대해서는 소비자단체가 시험검사 방식을 공개하지 않는 한 인정하지 않겠다고 버텨야 할까? 이와 같은 모든 상황을 위기로 정의해서 위기관리를 해야하는 것일까?

해당 기업은 정상적인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소비자를 기만했다고도 볼 수 있다. 만약 이 상황을 위기로 정의한다면 기업 스스로 소비자를 기만했던 것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해당 제품군이나 브랜드를 포기하는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에 대한 책임을 물어 최고경영진을 정리해야 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정상적인 원칙을 지키지 않았던 결과이고, 그런 원칙을 되살리는 행동은 곧 위기관리가 된다. 위기관리에는 그 외 다른 기술이나 기법이 존재할 수는 없다. 다른 기술이나 기법을 적용해야 한다면 그 상황은 위기로 정의될 수 없다.

셋째, 윤리적이지 않은 상황은 위기가 아니다.

내부 고발자가 생겼다. 회사 내 민감한 내용을 외부로 전파하면서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비판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사회 정의를 이야기하는 이 자는 전직 직원이다. 회사에서는 퇴사 시 합의한 비밀준수계약 위반을 들어 강력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직원은 이내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회사와 합의를 원했다. 그러나 회사는 지난 폭로로 인한 자사 피해를 들어 해당 직원에게 악착같이 고액의 배상금을 받아내려 지속적으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 후 전직 직원은 깊은 실의에 빠져 자살을 시도했다.

이 상황은 기업에게 어떤 위기인가? 직원이 자살을 시도하더라도 끝까지 배상금을 받아내는 것이 정상적인 방법인가? 그 문제의 전직 직원이 자살을 시도해서 세상이 떠들썩해졌으니 위기라고 정의해야 하는 것일까? 그냥 아무 일 없이 전직 직원으로부터 배상금만 받아내고, 폭로를 더이상 못하게 했다면 위기관리에 성공한 것일까?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행위라고 해도, 윤리적 감정 문제를 잘못 건드려 발생 된 상황은 정상적인 위기로 정의하기 어렵다. 최악의 상황을 만들게 된 과정에서 기업의 책임은 얼마나 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적으로 윤리적인 논란은 만들지 않아야 했음에도, 도가 지나쳐 문제 상황을 만들었다면 이를 새삼 위기라고 정의하고 위기관리를 해야 할지는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그렇다면 스스로 위기를 만든 셈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기로 오해되는 가짜 위기들 (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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