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 시대, 가상직원과 일하기
뉴노멀 시대, 가상직원과 일하기
  • 조성미 기자 (dazzling@the-pr.co.kr)
  • 승인 2022.03.2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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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세계 뛰어든 기업들, 버추얼 휴먼 직원으로 속속 채용
진보의 상징이자 소통을 위한 페르소나 역할 톡톡
기존 구성원과의 융화 위해 정확한 R&R도 필요

스티브 잡스를 벤치마킹한 듯 검정색 목티를 입은 여성이 트럭 신차 발표회에 프리젠테이터로 나섰다. 영어와 한국어를 오가며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신차 발표를 이끌어간다. 자연스러운 표정과 움직임으로 흡인력 있는 발표를 진행한 그녀는 사실 버추얼 휴먼(Virtual Human·가상 인간)이다.

[더피알=조성미 기자]  현실과 가상세계 경계를 넘나드는 일이 많은 요즘, 가상 인간의 활약이 활발하다.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요소들을 갖추고 대중들의 이상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광고를 비롯해 수많은 콘텐츠 속에서 매력을 뽐낸다. 덕분에 사람들과 조금은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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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너무 인간과 비슷한 모습에 불편함을 느낀다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이론을 언급하며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여전히 불호의 감정도 크지만, 이들의 등장과 활동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  이러한 가운데 가상 인간을 직원으로 채용하는 기업들도 등장했다. 자사의 서비스를 고도화하기 위해서 혹은 소통을 위한 페르소나로 가상직원을 두고 있다.

사내 버추얼 인플루언서 키우기

현재 가상 인간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야는 엔터테인먼트이다. 세계관을 반영해 가상 세계 아바타와 함께 활동하고 있는 걸그룹 에스파와 인플루언서이자 엔터테이너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며 많은 브랜드의 모델로도 기용된 로지가 대표적이다.

이 같은 가상 인간 엔터테이너 시장에 기업들도 뛰어들었다. 엔터테인먼트를 주 비즈니스로 하지는 않지만, 보유한 기술을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알리는 역할을 하거나 브랜딩 차원에서 가상 직원을 채용하는 것이다. 앞서 신차 발표회의 프리젠테이터로 나선 타타대우상용차의 가상 직원 ‘미즈 쎈(Ms. XEN)’이 대표적인 사례다.

신차 발표회에 프리젠테이터로 나선 타타대우상용차의 가상직원 미즈 쎈.
신차 발표회에 프리젠테이터로 나선 타타대우상용차의 가상직원 미즈 쎈. (이미지를 클릭하면 해당 영상을 볼 수 있는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인공지능(AI)기술을 활용해 탄생한 가상 인간 미즈 쎈은 30대 초반 여성으로 영국 유학파 출신으로 타타대우상용차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신차 발표회가 진행된 메타버스 안에서 신차를 소개하는 모습으로 외부 활동을 시작했다.

타타대우상용차 측은 “신차 ‘맥쎈’과 ‘구쎈’이 추구하는 강한 제품 이미지는 유지하되 트럭과 트럭커의 거친 이미지를 밝고 세련되게 전환하는 역할로 버추얼 휴먼을 선택했다”며 “‘미즈 쎈’의 발표를 통해 기존 회사 이미지도 반전,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다”고 자평했다.

이어 미즈 쎈은 향후 자사 유튜브, 홈페이지, 사내외 행사나 교육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소개, ‘쎈’ 아이덴티티를 알리는 안내자로서 역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CES 2021에서 LG전자 프레스 콘퍼런스의 연설자로 깜짝 등장했던 래아는 뮤지션 데뷔를 앞두고 있다. LG전자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구현한 가상 인플루언서인 래아가 올 초 ‘LG 월드 프리미어(LG World Premiere)’에서 뮤직비디오 티저를 공개한 것. 2020년 5월 인스타그램을 통해 등장했던 래아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고 취향을 드러내며 사람들과 어울렸다.

LG 월드 프리미어를 통해 래아의 뮤직비디오가 살짝 공개됐다.
LG 월드 프리미어를 통해 래아의 뮤직비디오가 살짝 공개됐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해당 영상을 볼 수 있는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이 과정에서 음악가라는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과정을 예고, 비주얼에 이어 사운드가 더해져 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 래아가 이미지로 등장해 목소리를 얻고 또 움직임이 더해진 모습으로 LG전자의 AI기술 진일보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가상직원에게도 필요한 R&R

진일보한 회사의 이미지를 가상직원에 투영하는 것과 더불어 실제 업무에 투입되는 사례도 있다. 많은 일이 디지털상에서 이뤄지고 또 메타버스로 옮겨가는 상황에서 가상직원에게 그에 걸맞은 직무가 주어지기도 한다. 롯데홈쇼핑은 자체 개발한 가상 모델 루시를 쇼호스트로 육성하고 있다.

2020년 9월부터 개발에 돌입, 지난해 2월 SNS 계정을 오픈한 루시는 산업 디자인을 전공한 29세 모델이자, 디자인 연구원이라는 프로필을 갖고 있다.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며 주얼리 브랜드 O.S.T와 쉐이크쉑 등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한 데 이어 지난 10월에는 롯데홈쇼핑의 쇼핑 행사 ‘대한민국 광클절’의 홍보 모델로 나서기도 했다.

이후 12월 1일부터 회사에 출근해 크리스마스 특집전에서 쇼호스트로 데뷔했다. 이후 회사에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꾸준히 SNS에 공유하는 것과 더불어 지난달에는 롯데홈쇼핑의 가상 의류 브랜드 ‘LOV-F(life of virtual fashion)’를 착장하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처럼 가상 직원 루시는 홈쇼핑에 국한되지 않고 미디어 커머스 회사로 나아가고 있는 롯데홈쇼핑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롯데홈쇼핑은 자체 개발한 가상 모델 루시를 쇼호스트로 육성하고 있다.
롯데홈쇼핑은 자체 개발한 가상 모델 루시를 쇼호스트로 육성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디지털 전환의 강풍을 맞고 있는 금융 업계도 AI 직원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NH농협은행은 두 명의 가상 직원 정이든과 이로운을 부서 배치하고 업무에 투입했다. 지난해 11월 영업점 투자상품 판매를 위해 필수적인 상품설명을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했던 두 직원이 신규직원 직무교육을 마치고 농협은행 DT전략부 디지털R&D 센터 소속으로 배치되어 인공지능 신사업 추진을 지원하는 업무를 배정받았다.

회사 측은 “디지털 시대에도 소외되는 지역과 계층이 없도록 현실세계와 디지털세계, MZ세대를 아울러 연결하고 소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농협에 주어진 과제”라며 그 첫걸음으로 AI행원을 선보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AI답게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면서 사내 홍보모델로도 나선다. SNS 계정을 통해 입사 후 사회 생활을 겪으며 성장해 나가는 모습과 고객들이 모르는 은행의 문화와 은행원의 고충을 MZ세대의 관점에서 스토리로 풀어내 고객에게 친근하게 다가 간다는 계획이다.

특히 이들이 진짜 구성원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NH농협은행은 현재 근무 중인 MZ세대(20~30대) 직원들의 얼굴을 합성해 완성했다. 여기에 가상의 은행원으로서 목소리에 맞춰 입모양이 자연스럽게 구현되도록 장시간 학습을 통해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KB국민은행도 지난 1월 말 AI은행원 키오스크를 영업점에 파일럿 형태로 도입했다. AI은행원은 기기사용 방법과 상품 소개, 업무별 필요 서류 등을 안내한다. 무엇보다 음성인식 기술로 고객과 대화하며 원하는 업무를 파악하고 응대, 고객의 체감 대기 시간 단축 효과가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 했다.

팬데믹 속 사내컴의 첨병

가상직원들은 대외적인 이미지 형성이나 고객 응대 등 주로 외부 활동을 담당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가상직원은 기존 직원들에게 동료라는 인식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사내 인트라넷에 직원으로 등록돼 협업이 가능하고 사내 커뮤니케이션에도 참여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앞서 2020년 단순·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로봇업무자동화(RPA, Robotic Process Automation) 시스템인 알 파트장을 도입한 바 있다. 알 파트장은 영업, 회계, 마케팅 등 다양한 부서에서 컴퓨터(PC)로 처리하는 업무 프로세스를 학습해 PC에서 이뤄지는 정형화되고 사람의 판단이 필요하지 않은 업무를 수행한다. 당초 8대의 알 파트장이 도입된 것에서, 현재는 10대로 늘어 316개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알 파트장이라는 이름을 얻고 정식 인사 등록이 된 것은 ‘협업’을 강조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이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현업 부서의 인원들이 자신의 업무에 맞춰 직접 알 파트장의 업무를 개발할 수 있도록 육성하는 ‘RPA챔피언’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며 의사결정이 필요한 주요 업무에 시간을 더 할애, 업무 만족도를 높여가는 방향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농협은행 DT전략부 디지털 R&D센터에 배치된 가상직원의 사원증(왼쪽)과 GS리테일에서 사내 소통을 담당하고 있는 동수
농협은행 DT전략부 디지털 R&D센터에 배치된 가상직원의 사원증(왼쪽)과 GS리테일에서 사내 소통을 담당하고 있는 동수

GS리테일에 채용된 가상직원 동수와 아리의 주 업무는 직원들의 궁금증이나 애로사항을 들어주는 사내커뮤니케이션이다. 궁금하지만 선배나 상사에게 묻기 어려운 사소하거나 껄끄러운 질문에 대해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둘은 MZ세대 소통을 전담하는 역할로 지난해 인턴사원으로 채용됐다. 하지만 내부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아짐에 따라 그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 1월 20일 GS리테일 플랫폼 B/U(비즈니스 유닛)에 소속돼 각각 편의점과 수퍼 소통 업무를 맡게 됐다.

또한 코오롱FnC는 팬데믹으로 인해 재택근무가 길어짐에 따라 소통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가상 직원 전해주 사원을 지난해 채용했다. 인사팀 소속으로 추정되는 그는 사내 공지사항을 비롯해 직원들끼리 하기 쑥쓰러운 모든 이야기를 전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코오롱FnC 관계자는 “회사 내에 30여개의 브랜드가 있는데 ‘이번 시즌 캠페인이 너무 잘 나왔다’든가 ‘특정 제품이 시장에서 반응이 좋다’는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며 “‘이런 것까지 자랑해도 되나?’ 싶으면서도 1000여명의 구성원에게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해주 사원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내컴을 담당하고 있는 동수·아리와 전해주 사원의 공통점은 운영 주체가 가려져 있다는 점이다. 운영자가 있기는 하지만, 다양한 질문에 대해 가장 적합한 담당자를 지정해 답변하고 이를 가상직원 들이 전달하는 형식으로 사내 곳곳을 누빈다.

덕분에 구성원들의 반응도 좋다. 코오롱FnC 측은 “사내망이 아무래도 업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채 널이다보니 대부분 업무 공유 사항과 같이 필터링 된 게시물인 반면, 전해주의 게시물은 즐거운 일이 나 알아두면 도움되는 정보이다 보니 좋아요와 댓글 반응이 더 뜨겁다”고 전했다.

하지만 모든 가상직원이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지난해 말 중국의 한 회사가 ‘올해의 최우수 신 인사원상’으로 가상직원을 선정했다가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민아 앨리슨 +파트너스코리아 대표는 “가상직원을 채용할 때는 단순히 보여주는 것을 넘어 해당 기업의 비즈니스가 지향하고 있는 점을 잘 포용하고, 회사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 로 설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가상직원이라 할지라도 정확한 R&R(Role and Responsibilities, 업무분장)을 부여하고 캐릭터도 명확하게 규정 해야 한다”며 “그들이 진짜 직원 이라면 기존 구성원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게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연결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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