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지는 기업들의 언론사 인수, 기회일까 독일까
바빠지는 기업들의 언론사 인수, 기회일까 독일까
  • 김영순 기자 (ys.kim@the-pr.co.kr)
  • 승인 2022.04.22 13: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언론사 인수, 아찔한 경계에 서 있다
양날의 검에서 비로소 보이는 것
호반그룹과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이 24일 주식매매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모습.뉴시스
호반그룹과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이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모습.뉴시스

 

[더피알=김영순 기자] 이제는 드라마에 나오는 기자가 자조적으로 ‘기레기’라고 말할 정도로 언론에 대한 반감이 어느 때보다 높다. 더구나 얼마 전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여성기자협회가 기자의 트라우마 실태를 조사한 결과 10명 중 8명이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희생자 가족 및 단체 등을 취재하면서 겪는 심리적 충격이 그만큼 심하다는 의미다. 업무적으로는 자극적인 사건들에 의해 충격을 받고 외적으로는 멸시를 받으니 그야말로 안팎이 고달픈 일이다.

고달픈 기자 일을 정당화해 주는 것은 저널리즘이다. 그러나 최근 저널리즘의 현실을 자극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활발하게 이뤄지는 기업들의 언론사 인수가 그것이다.

부영그룹은 한라일보와 인천일보를 인수했고, 중흥건설에서 헤럴드경제를 매각하는 데 이어 작년에 호반건설은 kbc광주방송을 매각한 후 전자신문, EBN, 서울신문을 인수하는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비슷한 시기에 사모펀드사인 키스톤PE는 아시아경제를, 엔터테인먼트 기업 IHQ는 한국농어촌방송 인터넷신문을 인수했다. 지난 3월에는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72년 동안 보유했던 대구 경북 지역 일간지 매일신문을 지역 운송 업체인 코리아와이드에 매각됐다. 중앙일보는 일간스포츠와 이코노미스트를 치킨 브랜드로 유명한 BHC에게 매각하려 했다가 무산되고 현재 이데일리를 보유한 KG그룹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언론사 매각, 인수는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되려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중소 언론사 입장에서는 환영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왜 기업들이 1인 미디어 시대라고도 불리는 지금 시점에 소위 레거시 미디어라고 불리는 기성 언론사들을 사들이느냐는 부분이다. 기업이 이윤추구를 핵심목표로 두는 이상, 언론사 보유는 홍보 관점에서 탐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언론사들의 수익 체계가 악화된다는 보고가 계속 나오는 지금, 차라리 새로운 미디어를 만들어서 운용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기성 언론사들은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미디어들과는 달리 그동안 쌓인 신뢰와 전파력, 그리고 고유한 가치가 있다.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해야 하고 유의미한 성과를 얻을지 의심되는 새로운 미디어에 비해 시작 지점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특히 언론이 갖는 태생적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보도, 시사 인프라는 기성 언론이 가진 강점이다. 이는 기업이 언론사를 갖게 되면 사회적 역할로도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불행하게도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호반건설이 서울신문을 인수하면서 서울신문은 자신들이 보도한 호반건설 관련 기사들을 삭제했다. 이는 기업이 편집권에 개입했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사례이며 기자와 시민 모두에게 저널리즘에 대한 회의감을 더욱 높이는 사건이었다. 호반건설 측에서는 자신들이 개입한 바가 없고 서울신문 내 책임자들의 자발적인 판단에 의해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상만 보면 기업이 언론사를 가졌을 때의 우려가 현실화되었다는 것을 누구나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언론사들 또한 2000년대를 넘어서며 변화하는 미디어 현실에 치여 허덕였고, 140년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워싱턴 포스트도 막다른 골목에 서 있었다. 2013년, 아마존의 창립자 제프 베이조스는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하면서 개혁을 선언했다. 그런데 그 개혁은 축소가 아니라 그 반대였다. 기자를 더 충원하고 온라인 사업과 구독 서비스에 공을 들였으며 그를 위해 아마존의 인프라까지 동원했다. 그 결과 워싱턴 포스트의 유료 구독자 수는 300만 명을 넘었고 사이트 방문자 수도 1억 명이 넘는 엄청난 성과를 올렸다.

그 과정에서 제프 베이조스가 탐사 보도로 유명한 워싱턴 포스트의 저널리즘에 개입한 경우가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없었다. 심지어 워싱턴 포스트는 아마존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는 기사들을 여러 차례 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프 베이조스로부터의 압력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럼으로써 워싱턴 포스트는 공정한 언론으로서의 정체성을, 그리고 그를 수용하는 제프 베이조스는 사회적 역할을 하는 사업가로서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워싱턴 포스트의 사례가 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널리즘에 충실한 언론과 그러한 언론의 서포터가 된 사주가 함께 이득을 얻은 분명한 사례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그렇지 못한 경우들, 저널리즘의 훼손은 되려 CEO 리스크로서 언론과 사주 모두에게 악영향을 끼치게된다. 언론사 매매보다 포털에 진입하는 게 더 어려운 상황에서 온오프 경계가 무너지는 언론환경이 변화하고 있다. 언론사를 사고 파는 국내 미디어 업계 현실을 보며 성장 혁신을 위한 다양한 논의 속에서 무엇을 노력해 왔는지 살펴볼 시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