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보도’에 복장 터지는 식품기업들
‘익명 보도’에 복장 터지는 식품기업들
  • 김영순 기자 (ys.kim@the-pr.co.kr)
  • 승인 2022.05.2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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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해식품 이슈로 불필요한 오해 확산 우려
협력업체와 대기업 간의 해썹 인증 책임

[더피알=김영순] KBS 뉴스에서 지난 5월 14일 식품안전의 날을 맞이해 한 전분 업체를 식약처 단속반과 함께 취재했다. 대기업 냉면 등에 들어가는 전분을 만드는 이 업체는 2018년과 2021년에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의 해썹(HACCP) 인증을 받은 회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보도에서 보여준 현장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거름망에는 쥐 배설물과 밀가루에서 나온 애벌레들이 있었고, 포대에는 배설물과 쥐가 갉아먹어 뚫린 구멍들이 있었다. 원료를 보관하는 창고에는 쥐덫에 걸린 쥐가 죽은 채 방치되어 있었고, 구석 곳곳에도 배설물이 널려 있었다. 환경이 이 모양인데 유통기한을 넘긴 밀가루, 애벌레가 생긴 밀가루들을 재활용했다는 제보도 있었다. 그야말로 총체적인 극심한 위생 관리 부실 상황이었다.

식품안전관리인증원 블로그 캡처
식품안전관리인증원 블로그 캡처

해썹은 1995년 도입된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으로 위생 관리 시스템을 갖춘 기업에 정부가 인증해주는 제도다.  2021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위생 단속에 걸린 음식점, 식품 제조업체만 2만 6972건에 이른다. 식품관리안전인증원에서 관리하는 해썹 인증 업소 수는 2019년 6566개, 2020년 7685개, 2021년 9251, 2022년 4월 말 기준 9668개 등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식품 업체들은 ESG 경영을 외치며 이미지를 변화해가고 있지만 여전히 위생 인증 마크인 해썹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납품 업체의 관리 부실과 도덕성 결여가 제품을 납품받는 대기업 브랜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현재 국내에는 농심, CJ, 풀무원, 청정원, 샘표, 동원 등 10여 개 대기업  브랜드들이 냉면시장을 놓고 각축전을 펼치고 있다. 때문에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만들어진 냉면을, 가뜩이나 음식 관리가 어려운 여름에 판매했다가 대규모 식중독 사태라도 일어나면 그 사회적 피해와 책임은 브랜드 밸류를 가진 큰 업체들이 감수해야 한다. 대기업 홍보 담당자로서는 악몽 같은 상황일 것이다. 

당장 이번 공중파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냉면에 대한 광범위한 거부감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는 뉴스에서 문제가 된 업체가 어디인지 밝히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뉴스 댓글란에는 업체명을 밝히라는 내용이 계속 달리고 있다. 냉면 업계에 대한 전반적인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이러한 보도 방식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업체들까지 싸잡아서 피해를 보게 된다는 지적이 부당해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처벌 수위에도 있다. 식약처는 해당 업체에 대해 영업정지 45일과 과태료를 물기로 했다. 45일이면 6월 말경부터 다시 영업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즉 냉면 판매가 폭증하는 여름 성수기의 시작인 만큼 이 업체에서 만든 전분이 우리가 먹는 냉면에 또 들어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불안감과 함께 실질적인 사고의 현실화 또한 우려될 수밖에 없다.

대기업이 납품 업체의 관리에 어느 정도 개입해야 하는가는 오래된 숙제와 같은 문제다. 브랜드를 대표하는 기업에서 완제품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협력업체의 개별 제품군의 카테고리를 모두 컨트롤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납품 업체의 문제는 결과적으로 산업 공동체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만큼 대기업 또한 위기 관리를 위한 사전 대응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해썹 인증을 받은 업체라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는 게 번번이 드러났기 때문에, 대기업으로서는 기존과는 관점을 달리하는 관리가 요구되는 부분이다. 

폭로성 르포나 제보가 커뮤니티에서 불붙기 시작하면 업계에 어떤 파괴적인 결과로 이어질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는 수없이 보았지 않은가. 유해성 논란에 따른 먹거리 왜곡 보도로 곤두박질 난 사건은 작든 크든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기업 커뮤니케이션실 관계자는 "위험성을 경고하는 보도 차원에서 일단 이슈만 되면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채 불나방 보도 혹은 편파 보도를 하고 업계에 치명적 타격을 준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닐 텐데"라며 "애매하게 이니셜로만 표기해 사실상 소비자들이 모든 업체의 카테고리 혹은 제품군을 부정적 시각으로 볼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먹거리는 한번 부정적 이미지가 각인되면 바로잡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과거의 파동으로 수차례 경험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그룹 홍보실 담당자는 “정확한 정보가 아닌 상태에서 그저 소비자들에게 위험성만 부각되다 보면 문제가 없는 다른 냉면 브랜드까지 곤경에 처하게 된다”며 ”균형 보도를 위해 정확한 취재와 관련 부처의 과학적인 근거 자료를 토대로 진위를 파악한 후 객관성에 부합한 알아야 할 사실을 소비자에게 신중히 전달하는 것이 불신을 해소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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