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대한 PR적 제언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대한 PR적 제언
  • 더피알타임스 (thepr@the-pr.co.kr)
  • 승인 2022.06.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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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PR 브레인 -여론 知쩍 플랫폼①]

‘집단PR 브레인 -여론 知쩍 플랫폼’을 시작합니다. PR에이전시 전문가, 지성인의 의견과 제안을 담는 이 코너는 매달 사회적 이슈와 쟁점을 가지고 펼칠 계획입니다. 자신의 의견이 다수와 같다고 생각하면 그 의견을 자신있게 표현하지만 반대인 경우엔 침묵하기도 하지요. 익명과 실명 그 사이에 존재하는 무엇에도 가치는 분명 있다고 믿습니다. -편집자주

페이스메이커로서의 연대가 중요한 시점

-엔자임헬스 공공마케팅본부 소영식 상무

‘선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한다. 맞는 말인데, 중요한 전제가 있다. ‘더 공정하고 정당한 방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이다.

사회적 약자란 신체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소외되거나 열악한 위치에 있어,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존엄성이나 기본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거나 인간다운 삶을 영위라는데 어려움을 겪는 개인이나 집단이다. 여기에 추가되어야 할 조건이 ‘소통에서 소외’이다.

전장연 시위에 대한 언론의 헤드라인을 보자.

“이번주도 거리 나온 전장연, 8차로 중 2차로 5분간 통제”

“전장연, 오늘도 지하철 4호선 출근 시위...운행지연 예상”

이런 헤드라인에는 ‘왜’가 보이지 않는다. 무조건 전장연을 옹호하는게 아니다. 철저히 ‘소통에서 소외’되는 이들에게 과연 누가 그 수단의 정당성을 물을 수 있을까? 방법이 정당하지 못하니 소통에서 소외받는다는 말이나 SNS를 이용해야 한다는 말은 하지 말자.

내가 전장연 관계자였다면 현장의 메시지와 의제 관리라는 두 가지 리스크를 염려했을 것이다.

‘가족이나 네가 장애인이 되어보면 이해할 거다’ ‘지하철 막히면, 버스 타세요’ 현장에서 툭툭 터져 나오는 참여자의 말은 시위 효과를 반감시키고 공감조차 돌려세운다. 또 다른 이기주의로 보일 수밖에 없다.

시위의 본질은 ‘차별과 불평등’이다. 사회적 공론화가 가능한 부분이지만 의제보다 장애인만 보인다. 지지와 동조를 보내고 싶어도 어설픈 ‘측은지심’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마라토너가 필요한 의제인데 스프린터관점에서만 접근한 결과다. 마라토너에게는 페이스메이커가 필요하다. 긴 호흡을 같이할, 목적에 따라 달라지는 연대가 아닌 페이스메이커로서의 연대 말이다.

성숙한 사회의 척도중 하나는, 사회가 ‘낯선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있다. 장애인은 이 사회 시스템에서 여전히 ‘낯선 이들’이다.

(지금도 이 사업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장애인 인식개선 홍보사업’이 공공영역에서 자주 등장할 때가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개선해 왔던 것일까?

구조가 바뀌지 않은 인식개선이란 그저 ‘동정의 다른 말’에 그치지 않을지 모른다.

우리는 전장연 시위방법에 이야기하기 전에 물어야 한다. 왜 그 방법 외에는 목소리를 전할 기회조차 없는 사회가 되었는가에 대해서.


전장연의 시위로 얻는 PR의 중요성

-PR대행 M사

전장연의 시위는 최초의 관심 제고에는 성공했지만 보다 광범위한 지지를 얻는 것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로도 도로 점거 시위 등의 방법으로 전장연의 시위는 계속되고 있지만 초기의 화제성만큼의 이슈가 되지 않은 채 단순 소비적으로 지나가는 상황이고, 집회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보다 ‘시민 불편’이 더 부각되는 모양새다.

이는 시민들로 하여금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고, 같이 목소리를 내줄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시위라는 형식이 주는 과격함에 대한 반감이 큰 결과로 보인다.

전장연이 주장하는 장애인 이동권을 높이는 인프라 설치는 장애인 뿐만 아니라 국민 다수를 차지할 노령 인구도 혜택을 볼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이러한 정서적이고 생활 필요적인 호소가 가능한 지점이 있는데도 방법론적인 면이 지지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가 드는 부분이다.

그 자신이 전신마비 장애인으로 휠체어 생활을 하는 유튜버 위라클은 얼마 전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을 타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찍어서 채널에 올렸다. 휠체어를 끌고 전철을 탈 때의 위험한 요소들과 다섯 정거장에 불과한 거리를 가는데도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이는 장애인이 일반인들이 모르는 어려운 상황에서 지내고 있음을 알리면서 더 나은 환경을 위한 노력을 호소하는 효과적인 체험 기록이기도 하다. 전장연 시위에 분노한 사람들도 이 영상을 보고는 여러가지 생각이 많아졌다고들 한다. 일반 대중의 눈높이를 맞춘 이러한 기획들이 장애인의 권리를 더욱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해법이 되지 않을까.

평균적인 수위 이상의 파격적이거나 과격한 퍼포먼스로 대중 여론의 주의를 끌고 그 후에는 감정적 호소와 시선 맞추기를 진행하여 여론의 감정선을 호감 노선으로 전환하는 것을 제안해본다.

전장연이 자신들의 목표를 이루려면 이러한 능숙한 면모의 전략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한 공감 스토리 발굴, 국민 참여형 캠페인 전개 등이 있을 것이다. 집회의 모양새도 일정한 지점에서는 플래시몹이나 행위 예술 등 예술적인 부분을 접목한 질서 있는 집회로 변화된다면 미디어나 시민 호응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메시지를 많이 전달하려는 것보다 우선순위를 정해서 한 메시지에 집중한 캠페인 전개로 논의 테이블에 하나씩 올려놓는 전략도 필요해 보인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4월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열린 기획재정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질의 내용 및 29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계획 발표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4월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열린 기획재정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질의 내용 및 29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계획 발표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공론화를 넘어 공분을 사고 있는 양상

-PR대행 P사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혹은 내 가족이 겪지 않으면 그 불편함과 그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약자와 소수의 집단은 그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본인과 혹은 타인의 불편함은 미처 고려하지 못한 채 최선의 방법으로 그 울부짖음을 표출한다.

지난 4월 개봉한 영화 <복지식당>이 있다. 장애인으로 살면서 느낀 분노와 답답함을 장애인 감독이 비장애인과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의 작품성을 떠나 영화의 소재와 제작 방식에 있어 큰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다.

치고 받는 토론 프로그램이 아닌 불편한 주제를 조금 유쾌하고 영리하게 다룰 수 있는 다양한 TV 프로그램에 직접 강연자 혹은 주인공으로 출연하고 그 스토리를 바탕으로 다시 온오프라인의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바이럴 될 수 있도록 기획. 복지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회적 아젠다를 던지며, 다 함께 건강한 시민정신을 갖기 위한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의 책이 생각나 다시 한번 꺼내어 읽었다.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배분하는지 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들을 올바르게 분배한다. … 중략 … 재화 분배를 이해하는 세가지 방식을 찾아냈다. 행복, 자유, 미덕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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