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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모 리더십이 LG전자에 가져다준 것들
구광모 리더십이 LG전자에 가져다준 것들
  • 김경탁 기자 (gimtak@the-pr.co.kr)
  • 승인 2022.08.16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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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PR 프리즘] ‘냄비 속 개구리’ 탈출시킨 휴대전화 철수 결정

거대 기업의 ‘관성’ 이겨낸 결단서 기업가 정신을 보다
‘마케팅 못하는 LG’ 밈이 노출했던 ‘낡은 파격’ 벗어나

더피알타임스=김경탁 기자

재계 취재를 꽤 하면서 LG 기사를 특히 많이 썼던 기자에게 ‘LG’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이미지 키워드는 ‘관성’이었다. 연구개발도, 마케팅도, HR도, 협력사 관리도, 심지어 ‘혁신’마저도 관성적으로 흘러가는 듯한 인상이 LG에는 있었다.

일단 시작했으니 그냥 하던 대로 ‘못 먹어도 고’ 하는 건가 싶은 의구심, 방계 기업과 유관 회사들이 많은 데다 ‘인화’를 표방한 세월이 길어지다 보니 연을 끊어내지 못해서 거기에 발목이 잡힌 듯한 느낌적 느낌이 있었다.

‘구광모 체제’ 이전까지의 LG는 그랬다는 말이다.

구광모 (주)LG 대표
구광모 (주)LG 대표. 뉴시스

2018년 6월 ㈜LG 대표이사이자 LG그룹 총수로 구광모 회장이 취임하고 어느덧 만 4년이 흘렀다. 이 4년 동안 LG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단연 첫 손에 꼽히는 일은 2021년 1월에 있었던 휴대전화 사업 전면 철수 선언이다.

‘영광의 시간’이 발목 잡았다

청산 발표 당일 LG전자 주가가 12%나 급등했을 정도로 이 회사 투자자를 비롯한 관계자들에게 스마트폰 사업은 하나의 굴레였다. 이 회사 MC사업본부는 2015년 2분기부터 사업철수를 선언한 2021년 1분까지 24분기 연속 적자를 낸 애물단지였다.

LG폰에도 ‘영광의 시간’은 있었다. 2007년 세계 최초의 컬러 액정을 탑재한 감압식 풀터치폰이자 최초의 럭셔리 브랜드 콜라보였던 프라다폰은 그해 가장 화제가 된 모델중 하나였고, 2007~2008년 선풍적 인기를 끈 초콜릿폰은 LG폰의 글로벌 점유율 3위라는 성과를 견인했다.

다만 2007년에 ‘최초의 스마트폰’ 아이폰, 2009년에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아이폰3GS가 출시됐다는 게 문제였다. 결과론적 이야기지만, 스마트폰으로 시장 흐름이 옮겨가는 시기에 피쳐폰에서 너무 좋은 성과를 거둔 게 중장기 전략 변화에 발목을 잡은 것이다.

큰 수익을 얻진 못했다지만 프라다폰에서 희망을 봤던 LG전자는 프리미엄 전략을 계속 이어가서 후속작들(프라다폰 3은 스마트폰이었다)을 냈고, 2010년에는 ‘베르사체 유니크’라는 제품으로 럭셔리 콜라보를 이어갔지만 시장의 변화를 따라잡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2012년의 옵티머스G도 변곡점을 만들 기회였다. 핵심 계열사 역량이 총동원돼 ‘회장님폰’ 혹은 ‘구본무폰’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이 제품은 “나는 당신입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의 파격적 광고가 화제였지만 물량 공급과 늦은 시스템 업데이트 등의 한계로 미진한 성과를 남겼다.

프리미엄 시장에서 애플 아이폰과 삼성 갤럭시라는 선두주자들을 따라잡으려던 전략이 계속 실패로 돌아가는 가운데 중국의 후발업체들이 치고 올라오자 2020년에는 ‘매스 프리미엄’이라는 전략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애매한 포지셔닝은 소비자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이렇게 ‘냄비 속 개구리’ 같은 상황 속에서 실무라인은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다’는 희망 섞인 전망을 매년 보고했다고 한다. 사업 철수 전 마지막 분기에 배정된 MC사업본부 투자예산은 554억원이었다. 그 이전까지 매년 1천억원 내외의 금액이 여기에 투자됐다.

성공적인 ‘후퇴 작전’ 사례 남겨

전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후퇴 작전’이라고 한다. 부대의 규모가 클수록 진군 방향을 돌리는 것 자체가 물리적으로 어려운 데다, 전황이 불리할 때 뒤로 병력을 물리는 것은 병사들의 사기에도 치명적이다보니 그 과정에 각개격파를 당할 수 있어서다. ‘배수의 진’이니, ‘필사즉생’이 하는 이야기들은 왠지 멋있게 느껴지고 ‘후퇴’라는 단어는 ‘줄행랑’, ‘빤스런’ 등 치욕적인 이미지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LG가 휴대폰 사업 청산 선언 후 실제 철수로 이어지기까지 보여준 질서정연하고 평화로운 과정은 재계에 귀감이 됐다. 이전까지 다른 대기업이 특정사업에서 철수할 때마다 불거졌던 여러 잡음들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전략전술 중에 가장 어렵고 위험하며 지휘관의 역할과 역량이 중요한 것으로 알려진 ‘후퇴 작전’의 중요한 성공사례를 남긴 것이다.

휴대폰 사업 청산 결정 선언으로부터 다시 1년 반이 흘렀다. 증권가에서는 이 결정이 LG전자에게 재무건전성 재고와 브랜드 가치 유지 등의 효과를 줬다고 평가한다.

‘백색가전은 LG’라는 오래된 관용구가 상징하듯 이전까지 쌓아온 프리미엄 브랜드 가치를 스마트폰의 애매한 포지션이 잠식하는 문제를 해소했고, 이 분야에서 선두주자를 따라잡기 위해 쏟아붓던 R&D 역량과 투자를 다른 분야에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지나고 보면 너무 쉽고 당연해보이는 해법과 결정이었다 치부할 수 있지만, 거대집단의 수장이 오랜 관성에 역행해 다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그야말로 ‘기업가 정신’의 영역이다.

‘선택과 집중’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실천’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떤 분야에서 ‘뜨거운 성공’을 맛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모든 가능성이 완전히 연소될 때까지 희망과 미련의 끈을 쉽게 놓지 못하는게 일반적인데 이걸 극복해낸 것이다.

구광모 회장은 취임 이후 매년 신년사에서 '고객'이라는 키워드를 제일 앞에 내세우고 있다. 사진은 오른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신년사 발표 관련 사진.
구광모 회장은 취임 이후 매년 신년사에서 '고객'이라는 키워드를 제일 앞에 내세우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신년사 발표 관련 사진.

구광모 회장이 취임한 이후 LG그룹은 처음으로 전체 상장사 중 시가총액 2위가 됐고, 주요 계열사들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사상 최고’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한동안 네티즌 사이에 ‘밈’처럼 소비되는 ‘마케팅 못하는 LG’를 다룬 기사가 꽤 나온 적이 있다.

언론 보도들은 사실 ‘이렇게 훌륭한데 왜 알리지 못하니’라는 애정 어린 질타만 걸러놓은 수준이었지만, 날 것 그대로 모아놓은 것을 보면 ‘낡은 파격’ 혹은 무신경함에서 돌출된 낯뜨거운 사고도 많았다.

그러나 이제 글로벌 업계의 시선은 브랜드 ‘LG’의 대변신에 대해 ‘관찰’에서 ‘긴장’으로 바뀌고 있다.

‘마케팅 못하는 LG’라는 이미지를 넘어서, 이제는 ‘마케팅도 잘하는 LG’라고 자신있게 선언할 정도로 변화와 성과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LG의 내일이 더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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