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활 걸린 전경련, 차기 회장 삼고초려 중
사활 걸린 전경련, 차기 회장 삼고초려 중
  • 김영순 기자 (ys.kim@the-pr.co.kr)
  • 승인 2023.02.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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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 영욕의 역사와 현재를 읽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운명이 2월 23일 정기총회에서 결정
사의 표명한 허창수 회장. 사진=뉴시스.

더피알타임스=김영순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가 다시금 혼돈의 시기를 맞이했다. 허창수 회장이 사퇴 의사를 밝힘으로써 12년 만에 수장이 바뀌게 된 것이다. 문제는 62년 역사를 가진 이 거대 단체의 수장 자리에 적극적으로 앉고자 하는 사람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일까?

정부와 전경련의 끈끈한 관계

전경련의 탄생 이면에는 정치적 사정이 작용했다. 1960년 4.19혁명 이후 들어선 장면 내각은 자유당 정권에서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 삼호, 럭키화학, 현대건설의 총수들을 부정 축재자로 지목하여 조사에 착수했다. 그런데 이듬해인 1961년 5.16쿠데타가 일어나고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쿠데타 직후 군사정부는 총수들의 부정 축재 문제에 대해 장면 내각에서 진행하던 대로 강력한 수사를 천명했다. 그러나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과 이병철 삼성 회장이 면담을 가진 후 부정 축재 기업인들을 산업 재건에 이바지할 기회를 준다는 명분으로 모두 풀어주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이병철 회장은 일본 대기업들이 모인 단체인 일본경제단체연합회를 모델로 1961년 한국경제인협회를 창립, 자신이 첫 회장이 되어 그 역사를 시작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1968년부터 지금의 전경련으로 이름을 바꿨다. 탄생부터 정치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재벌급 경제인들 주도로 시작된 전경련은 필연적으로 정부와 애증 관계일 수밖에 없었다. 정부 입장에서는 기업 총수들이 모인 명백한 이익단체였기에 전경련은 존재 자체로도 위협적일 수 있었지만, 경제발전이라는 목표와 권력 이익 분배를 위해 효율적으로 관리하려면 의사결정 대상이 통일되는 편이 더 좋았을 것이다. 이러한 서로의 이해관계로 정부와 전경련은 오랜 시간 끈끈하게 엮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1대 회장을 맡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부터 역대회장들.

 

전경련의 전성기와 몰락의 시작

이후 이정림 한국양회 사장, 김용완 경성방직 사장, 홍재선 쌍용양회 사장,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구자경 럭키금성그룹 회장, 최종현 SK그룹 회장 등 쟁쟁한 인물들이 전경련 회장을 거쳐갔다. 특히 1977년부터 1987년까지 10년 동안 전경련 회장을 맡은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한국 현대사에 급격한 경제발전을 이룬 시기에 전경련을 이끌면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이후 그의 행보는 경제 대통령이라는 기치를 들고 대통령 선거에까지 출마한다. 그런가 하면 1987년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다음 해인 1988년에 구자경 럭키금성그룹 회장은 야당인 평화민주당을 지목하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정당에게는 정치자금을 줄 수 없다’는 정치 개입적 성격의 발언을 하여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전경련은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에 여러 번 대규모 비자금을 지원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끈끈한 유착관계가 재확인되곤 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를 마지막으로 군사정권이 종식되면서 전경련과 정부의 관계도 예전 같지 않았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는 금융실명제 도입 등을 통해 재계와 마찰을 빚었고, 당시 전경련 회장이었던 최종현 SK그룹 회장은 재벌 소유 분산 정책 등 규제에 대해 비판하다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고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재벌은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되었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전경련 회장을 맡은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이 시기에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경상수지 흑자 500억 달러라는 목표를 제시하고 규제 철폐를 촉구하는 등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이끈 대우그룹이 지나친 확장 정책에 따른 부작용을 감내하지 못한 채 무너지면서 그는 해외 도피를 하였고, 전경련 회장직은 표류하게 되었다.

전경련 회장이라는 피 묻은 왕좌

사실 전경련 회장직에 대한 재계의 거부감은 김우중 회장 이후 본격화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경제 붕괴와 불명예 퇴진이라는 상흔이 남은 자리에 기꺼이 앉겠다는 사람이 드문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후 전경련 회장직은 김각중 경방 회장으로 이어져서 4대 그룹이 아닌 기업의 회장이 맡았다. 그다음은 손길승 SK그룹 회장이 맡았으나 그룹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이었으며, 이후 강신호 동아쏘시오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뒤를 이었다. 2011년이 되어서야 김우중 회장 이후 12년 만에 처음으로 재계 순위 10위 안에 드는 기업 총수인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을 맡았다.

12년 만에 거대 기업 총수가 회장이 된 전경련은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전경련에 대한 거대 그룹들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는 평가가 있었고, 허창수 회장의 주도적 역할에 대한 아쉬운 평가도 나왔다. 그러던 와중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알려진 2016년 국정농단 사태였다. 이때 비자금 형성용이라는 의혹을 받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에 전경련이 깊숙이 관여하고 극우 단체들을 후원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전경련에 대한 여론은 땅에 떨어졌다. 이 일을 계기로 삼성, SK, LG, 현대차, KT 등 거대 기업들이 일제히 전경련 탈퇴를 선언했다.

다시 시작된 전경련 패싱?

국정농단 사태 이후 전경련은 허창수 회장을 수장으로 정경유착 근절, 불필요한 조직 축소, 단체명 변경, 싱크탱크 전환 등 혁신 방안을 내놓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국가 행사와 경제 단체 모임에서 계속 제외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회원사도 2016년 619개사였던 것이 지금은 420개사로 줄었다. 이렇듯 지속적인 위기에 빠진 전경련이었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반전의 기회를 잡는 게 아닌가 하는 관측이 나왔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 전경련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와 경제 단체 수장들의 첫 회동을 주선하고, 동남아 순방 때 기업인 방문단도 구성했다. YTN의 정부 지분이 민간 자본에 넘겨져 인수전이 발생할 것이고, 전경련 기관지로 시작한 한국경제신문이 강력한 후보라는 소문 또한 이러한 배경에서 나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다시 끈끈해진 것으로 보였던 전경련과 윤석열 정부가 어느 순간부터 냉각기에 들어간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 때처럼 ‘전경련 패싱’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서 확인된다. 2022년 말 윤 대통령이 경제 단체장을 불러 청와대 상춘재에서 비공개 만찬을 할 때 전경련은 빠졌다. 아랍에미리트 순방 일정에도 허 회장은 동행하지 못했다. 이러한 냉각기가 발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허 회장이 임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사의를 표명하여 논란이 발생하고 있는 현실은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전경련 전경.
전경련 전경.

새로운 회장인가, 경총과의 통합인가

2월 23일 뽑힐 전경련의 차기 회장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후보들은 있지만 누구 하나 회장직에 연연하지 않는 분위기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게 제안이 갔지만 고사했다는 얘기가 있으며, 그 외에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이 거론되지만 소극적이라는 평이다.  특히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이 전경련 회장후보추천위원장 겸 미래발전위원장에 선임돼 차기 회장 후보 추천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심지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의 통합설도 나온다. 전경련보다 늦은 1970년에 설립된 경총은 현재 손경식 CJ그룹 회장이 이끌고 있는데, 전경련과의 통합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 물론 전경련 내부에서는 이에 반대하는 의사들이 표출되고 있다. 이러한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전경련 회장 자리는 당분간 공석으로 유지될 가능성도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오랜 시간 재계를 대표하는 ‘맏형’ 같은 존재였지만 이젠 그 끄트머리에 서서 혼란에 휩싸인 전경련을 보면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를 세우지 못한 채 권력에 기댔던 기질을 버리지 못한 결과다. 과거와의 진정한 단절이 전제되어야만 전경련 부활 가능성이나마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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