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끄기, 눈 치우기, 길가 화단 가꾸기까지 '직접' 그리고 '함께' 하는 공동체
귀농·귀촌 적극 지원하는 시대, 이주민이 지역 주민 일원으로 융화하려면?
정종순 대표 “도시 이주와는 다르다…정착에 도움 줄 교육 프로그램 필요”
더피알 = 김민지 기자 | 2023년 2분기 출산율 0.7… 우리나라는 인구 감소라는 정해진 미래를 향해 걷고 있다. 수도권 집중 현상까지 겹치며 지방 인구수는 더더욱 줄어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위기 상황의 대안 중 하나로 로컬에 집중하고 있다. 지방은 외부로부터 인구를 받아들여 지역 소멸을 막고 수도권에서는 인구 밀집을 줄여 삶의 질을 높이는 방안이다.
정부의 지원도 많아졌겠다, 지방에서 노후를 꿈꾸는 사람들, 수도권에서는 얻기 어려운 기회를 지방에서 찾는 사람들 등 최근 지방으로 내려가는 경우가 늘었다. 쉽게는 어느 정도 발전한 소도시로 가기도 하고, 큰마음 먹고서 귀농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풀벌레 소리만 듣고 평화로울 것만 같은 귀농살이지만 도시인에게는 예상과 다른 일이 펼쳐지기도 한다. 사람을 피해 조용한 곳으로 내려갔지만, 떡국 잔치, 체육대회 등 매달 열리는 마을 행사 참가 권유를 받기도 한다. 간혹 지역 주민들의 텃세가 이어지다 큰 갈등으로 불거지는 경우도 있다.

인터넷 언론사 충청인사이트 정종순 대표도 서울보다 지방에서 더 좋은 점을 발견해 공주로 귀농했다. 중고등학교를 모두 공주에서 나온 ‘공주 출신’이지만 도시인 입장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지역 문화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현재는 공주 주민으로 완벽히 녹아들어 지난해까지 공주시의원을 맡았다.
8월 31일 공주기독교박물관에서 열린 ‘2023 제민천 포럼 X 재도전프로젝트’에서는 예비 귀농인들을 위해 지역 문화를 설명하는 정 대표의 강연이 있었다. 마을 주민으로 융화되지 못한 채 도시로 돌아가는 귀농 포기자가 적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의 지역 정착 노하우를 공유했다.
적게는 50만 원 많게는 400만 원, ‘마을발전기금’은 왜 있는 걸까?
“여러분, 이장님이 어느 날 갑자기 와서 100만 원을 내라고 해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시골 가입비’ 같은 것인가. 도시인에게는 낯설게 느껴지는 관례다. ‘마을발전기금’이라는 명목의 납부다. 마을 주민들로부터 일정액씩 거둬 마을 상하수도연결지, 마을 안길 통행료, 공동재산 소유에 따른 경비, 복지 자금 등에 쓰인다.
귀농인으로서는 당황스럽다. 세금을 납부했는데도 추가로 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 공동체 문화가 강한 농어촌 문화를 알지 못하면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다.

2020년 전라남도 정책이슈리포트 ‘지역공동체 내 마을발전기금으로 인한 갈등해결방안 연구’에 따르면 마을발전기금에 관해 그 마을의 오랜 역사와 관습을 함께 경험해 온 기존 주민들에게서는 갈등이 크게 표출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을발전기금 외에도 토지대장 측량과는 다른 실제 토지 사용, 경로당 건설에 정확하지 않은 자금 분배 등 서로 이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관습이 존재한다.
이런 관습이 생긴 이유 중 하나는, 지방은 넓은 토지 면적 대비 주민이 적은 탓에 도시 인프라가 부족해서다. 지자체가 마련한 공공근로 일자리로 환경 미화 등의 지역 일을 분배하기도 하지만, 모든 지역에 배정하기에는 예산이 부족해 일부는 지원받을 수 없다. 정 대표 거주 지역이 그런 상황이다.
가령 소방서가 인근에 없어 주민들끼리 의용소방대를 꾸려 불을 끈다. 밤에 온 눈, 공무원들이 치워주겠다고 생각하면 다음 출근 날 낭패를 본다. 대신 트랙터를 갖고 있는 주민이 제설 작업을 도맡는다. 길가에 조성된 화단도 모두 지역 주민들이 가꾼 것이다.
도로를 만들고 공동건물을 짓는 도시 개발도 모두 주민들의 몫이다. 토지를 매입해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토지 개발은 규모가 있는 지역에만 지원될 뿐 농어촌지역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결국 주민들이 사유지의 일부를 자발적으로 내놓아 길을 내고, 십시일반으로 모은 자금으로 직접 경로당을 짓는다.
도시인은 모르는 지역 문화…튜토리얼 있어야 한다
현지 문화를 모른 채 귀농한 이주민들은 돈을 기부하라는 이장의 말에 의심쩍은 표정을 짓는다. 반대로 관습에 따라 제안한 이장은 의심 가득한 이주민의 시선이 달갑지 않다.
소도시로, 시골로 갈수록 짙어지는 공동체 인식을 이해하지 못하면 기존 주민과 이주민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십상이다. 비단 마을발전기금 외에도 지역 주민의 일원으로써 수행할 역할도 공동체 중심 사회에서 중요하다.
이주민들은 이웃과 어떻게 어울릴 수 있을지 그 삶을 숙지해야 하고 주민과 지자체는 이들에게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중 지역살이 프로그램이 이주민들의 정착에 도움을 주는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공주의 경우 커뮤니티 기반 지역관리회사 퍼즐랩의 ’마을생활 튜토리얼‘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지역 이주에 관심이 있는 중장년층 대상 4박 5일 지역살이 프로그램이다. 공간 감각을 익히는 마을 투어, 또래 정착 선배들과의 관계 맺기, 로컬 창업 체험 등 지역 사람들과 연계된 지역 답사가 이뤄진다.
퍼즐랩 권오상 대표는 “게임을 처음 시작하면 튜토리얼이 있지 않냐“면서 ”주민이 누가 있는지, 돈은 어떻게 벌 수 있는지 알려주는 것처럼 이웃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 귀촌 이후의 일상을 알려주려고 한다“고 사업 취지를 설명했다.
정종순 대표도 "새로운 시선으로 지역에 활력을 넣어줄 외부인들을 주민들도 반긴다"면서 "기존 도시에서의 생활 방식을 탈피하고 지방으로 내려온 사람들을 돕는, 등대 역할을 해주는 연결 다리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전원생활 시작 전 확인하면 좋은 체크리스트
정 대표는 이주 전 미리 확인하면 도움 될 몇 가지 사항을 공유했다.
이사 전 도움 요청은 우선 시청으로 문의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공주의 경우 공주시청 농업기술센터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신규 귀농인에게 배정된 예산으로 귀농·귀촌인 주택수리비 지원 사업, 화합행사 지원 사업 등 여러 도움을 제공한다. 이장, 기존 귀농인 등 주민들과 긴밀한 협력도 이뤄지고 있어 마을 정보를 얻는 창구로도 활용하기 좋다.
마을 경로당을 들러 동네 분위기를 파악해 보는 것도 좋다. 1년간 어느 행사가 열리는지, 상호 연대하는 공동체인지 등 지역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이주 후에는 스마트 방송 명단에 내 이름이 등록됐는지, 쓰레기 처리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등 이장님과 상의하는 시간도 가져야 한다.
정 대표는 마을발전기금에 관해서도 “시골이라고 주먹구구식으로 행정 처리가 이뤄지는 건 아니다”고 부연했다.
어느 가구에서 언제 납부했는지, 수도 요금으로 얼마를 지출했는지, 각종 행사에서 어떻게 기금을 썼는지 모두 정리돼 있으니 이를 활용하기를 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