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환의 여론법정] 정치, 그 불편함을 다루기
[김세환의 여론법정] 정치, 그 불편함을 다루기
  • 김세환 (sehwan525@gmail.com)
  • 승인 2023.11.17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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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공무 커뮤니케이션은 효과적인 위기관리와 소송 PR의 주축
언론 소통과는 결이 달라…목적·근거·타이밍 따져 다양한 대상 접근해야

더피알=김세환 | 2022년 삼성그룹은 미국 정·관계 로비에 우리 돈으로 약 76억 원을 사용했으며, 현대차그룹도 역대 최고액인 약 44억 원을 지출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집단이 워싱턴 로비스트들에게 많은 돈을 쓴 것에 대해 기업 메시지를 입법과 행정 과정에 삽입하려는 불순한 의도로 폄하하는 의견이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정치라고 부르는 정부 및 의회 관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은 항상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국민의 대리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부와 국회에서 수립되고 이행되는 조치들이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한지, 경제적으로 합리적인지 확인하기 위해 기업과 긴밀히 교류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시장 논리와 동떨어진 제약,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키는 규제만 늘어나며 기업의 불만과 애로가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의원과 관료들이 주관적 인식과 정치적 평가에만 근거하여 법을 제정하고 집행하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산업 현장의 정보와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은 입법과 행정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공무(Public Affairs)와 커뮤니케이션

기업이 정부나 의회를 다루는 것을 공무(Public Affairs)라 부른다. 이것은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전략적으로 커뮤니케이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정치·기업·사회 사이에 접점이 있는 조직에서 이러한 업무를 수행하는데, 기업과 협회뿐 아니라 공무 컨설팅 회사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도 여기에 해당한다.

최근에는 고도로 전문화된 PR 전문가들이 기업·협회·NGO 등 정치와 경제 영역의 다양한 그룹 간 커뮤니케이션을 생성한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다양한 그룹의 이해관계를 분석하고, 이에 따른 맞춤형 전략을 개발하여 기업의 정치적 관계를 구축한다.

위기 관리와 소송 PR에서도 공무 수단이 점점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입법에 영향을 미치기보다, 특정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의 의견과 분위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정치가 기업을 둘러싼 논쟁을 확대하거나 반대로 축소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안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기업 스캔들, 공장 폐쇄, 파산 등 공적 그리고 공개적 논의가 이뤄지는 이슈의 속성을 고려할 때, 오히려 넓은 범위의 정치 영역을 커뮤니케이션 대상에 포함하지 않으면 이로 인해 예기치 않은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은 효과적인 위기 관리와 소송 PR의 중요한 축이 되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을 비롯한 중소기업협의회 회장단이 11월 9일 국회에서 김상훈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에게 '중소기업 기업승계 세법개정안 국회 통과 협조 요청서'를 전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기업 혹은 기업이 위탁한 공무 컨설팅 회사의 커뮤니케이션이 쉽지 않은 것은 이들이 상대해야 할 대상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 고위직뿐 아니라 국장, 과장, 심지어 사무관과 주무관을 포함해 중하위 공무원까지 상대해야 한다.

국회에서도 의원, 보좌관, 의회 내 특정 그룹과 정당, 상임위원회, 전문위원, 각종 대변인 등을 포함한다. 그리고 국회의원의 당협위원회 사무소도 대상이 된다. 지방의회는 광역 및 기초의원을 대상으로 하고, 각종 협회와 NGO, 학술기관 등도 커뮤니케이션 대상이다.

이들에 대한 접근 방식은 일반적인 홍보와 유사하다. 공적 및 사적 네트워크와 잘 준비된 참고자료는 커뮤니케이션에 도움이 되고, 기업에 유리한 의견 형성을 지원한다. 모든 종류의 캠페인을 정치 영역에서 시행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정치 영역의 동기부여는 미디어와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언론 브리핑을 위해 준비한 PPT와 보도자료를 공무원과의 커뮤니케이션에 가져가는 것만큼 잘못된 방식도 없다. 이러한 방식은 흥미를 유발하고 호의적인 대화를 이끌어낼 수는 있지만, 그 이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답답한 경험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논증, 정보 가치, 커뮤니케이션 전략

공무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커뮤니케이션 목적, 논리적 근거, 그리고 타이밍이 중요하다. 미디어 종사자들은 특종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정치 영역에서는 모든 것이 선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다시 말해 전자는 뉴스 가치에 관한 부분이지만, 후자는 정치적 수용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정치인 혹은 공무원에게 언론 브리핑 자료는 단순한 흥미만 유발할 뿐이다.

그들은 이러한 방식의 기업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는 본인이 행동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심지어 실행 가능한 적절한 옵션이 없다고 여긴다.

이처럼 매우 다른 이해관계를 다루려면 완전히 다른 논증, 정보 가치,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필요하다. 따라서 일대일 미팅이든 청문회든 유형에 상관없이, 그들과 정치적 약속을 하기 전에 정치적 이해관계자에 대한 정확한 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한편 정부와 의회는 기업의 위기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는 경우가 빈번하다. 경기불황 시기에 구조조정 일환으로 공장을 폐쇄하거나, 심지어 기업이 파산할 수도 있다. 금융권에 대한 정부의 간섭, 애초에 잘못된 규제로 인해 예기치 않은 스캔들이 발생할 수 있다.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이 1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로시간 관련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와 향후 정책 추진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이 차관은 설문조사 결과를 전폭적으로 수용해 주52시간제를 유지하며 일부 업종·직종에 한해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이 1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로시간 관련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와 향후 정책 추진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이 차관은 설문조사 결과를 전폭적으로 수용해 주52시간제를 유지하며 일부 업종·직종에 한해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이 모든 것은 기업뿐 아니라 정치인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면 정당은 상대 정당을 공격할 이슈를 끊임없이 발굴하여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폭로하거나 언론에 직접 제공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레 기업이 특정 정당과 연대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주의가 필요하다. 정치적 영역에서는 일상과는 다른 게임의 규칙과 기회가 적용된다.

정치적 게임을 할 때는 이슈에 대한 정치적 배경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사안은 미디어 관심사와 다르므로 유권자 관심사를 고려한 맞춤형 커뮤니케이션을 제안하고, 구체적인 액션 플랜으로 입증해야 한다.

기업의 메시지를 정치적 논의에 삽입해야

예를 들어 환경·생태·노동을 강조하는 정당을 국회에서 설득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 이때 유념해야 할 부분은 공동의 이익이 공동의 반대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반드시 이들과 친구일 필요는 없고, 어떠한 지식과 정보를 어느 수준에서 공유할지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전술적 성공만을 노린다면 기업이 정치적 영역에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장기적인 인적 네트워크와 목표를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따라서 중립적인 언론 보도만을 목표로 하는 경우 이러한 시도는 가치가 없으며, 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입법과 행정 영역의 정치 세력은 자신들을 향한 정치적 공세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고, 이를 방어할 수단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방어 수단은 불쾌감을 유발하거나 다른 누구에게 위기를 전가시킬 수도 있지만, 그들은 그것을 실행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공무 커뮤니케이션은 항상 정확한 이해관계자 분석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정치적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

공무는 대관 커뮤니케이션과 다르다. 정부와 의회 등 정치 세력과 커뮤니케이션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지만, 기업의 메시지를 정치적 논의에 삽입하여 반영시킨다는 점에서 훨씬 포괄적이고 장기적이다.

불행한 경험으로 인해 아직 국내 기업이 자신에게 유리한 정치적 의견과 세력을 형성하는 데 머뭇거리고 있지만, 오늘날 기업이 국가의 생존을 결정하는 핵심 기제라는 점에서 당당하게 기업의 존재 이유를 정치적 영역에 반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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