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금운용에 드러난 ‘지는 물산&뜨는 모직’ 공감대
국민연금 기금운용에 드러난 ‘지는 물산&뜨는 모직’ 공감대
  • 한민철 기자 (kawskhan@naver.com)
  • 승인 2023.12.20 08: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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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철 기자의 법정 취재파일] 이재용 삼성 재판 (9) 국민연금 의결권 이슈 ②

반대 의결 권고 자문사도 합병 무산시 삼성물산 주가 22% 하락 예상
‘국정농단 사건’ 재판부, “합병성사 위한 뇌물공여” 검찰 기소장 배척

이재용 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 13명에 대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재판의 1심 판결이 2024년 1월 26일 내려집니다. 검찰수사심의원회의 불기소 결정을 누르고 강행된 2020년 9월의 검찰 기소로부터 구형이 나온 결심공판까지 총 106차례의 재판을 빠짐없이 참관한 한민철 기자는 ‘그간 많은 언론이 이 사건을 보도했지만 대부분 검찰 발표 중심이었고 실제 재판 현장의 이야기들은 잘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현장기자가 3년 2개월간 직접 쌓아올린 법정 취재파일을 통해 핵심 쟁점과 주요 증언을 짚어보았습니다. [편집자 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바라본 검찰 깃발 뒤로 삼성전자 서초사옥이 보이고 있다. 뉴시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바라본 검찰 깃발 뒤로 삼성전자 서초사옥이 보이고 있다. 뉴시스

더피알=한민철 기자 |  삼성 측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명분을 ‘당시 삼성물산의 사업 및 실적 부진과 이로 인한 주가 하락 상황에 대해 제일모직과의 사업 시너지를 통한 타개’로 들었다.

당시 국민연금의 두 회사 지분 보유 상황을 보면 삼성물산의 부진과 제일모직의 상승세라는 상황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국민연금은 상장 직후부터 합병 발표 전인 2015년 5월 말까지 6개월 동안 제일모직 주식을 약 4669억 원(337만7321주) 순매수했다. 직전인 2015년 3월까지 국민연금의 순매수 상위 종목에 삼성전자와 현대글로비스 그리고 제일모직이 있었다. 

반면 같은 기간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주식을 약 3357억원(약 580만 주)이나 순매도했다. 국민연금 직접 운용뿐 아니라 2015년 1월 1일부터 5월 22일까지 위탁운용사 8곳이 물산 주식을 약 1511억 원 순매도했다.

같은 기간 한국거래소가 공시한 기관투자자들의 삼성물산 매매 동향 관련 자료를 보면 약 9000억 원을 순매도했다. 이는 상장사 중 2번째로 많은 순매도 물량으로 당시 물산 주식에 대한 ‘팔자’ 움직임이 단지 국민연금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 같은 해 3월 30일 국민연금 내부에서 작성된 제일모직에 대한 보고서에서 삼성그룹 지배구조 이슈를 ‘인베스트먼트 포인트(Investment Point, 투자 요소)’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국민연금의 이러한 투자 행보는 국정농단 사건의 재판 및 이 사건 재판에서 나온 다수의 증거와 증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합병 당시 국민연금의 기금운용본부 주식운용실 팀장이었던 신○○ 씨는 검찰에서 아래와 같이 진술했다.

“저희 직접운용팀은 삼성물산을 지배구조 개편으로 인해 향후 수혜가 예상되는 종목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중략)… 합병이 5월에 발표될 것을 알았다면 2015년 상반기에 절대로 (삼성물산 주식을) 매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 신○○ 검찰 진술

신○○ 씨가 속해있던 주식운용실은 당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했다는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과거 국정농단 사건에서 홍완선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이재용 회장에 대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다음과 같이 법정 증언했다. 

문 : 증인에게 ‘삼성물산 주식매매관련 보고’ 문건 제시합니다. 문건에는 이 사건 합병 전 삼성물산의 주가 추이가 나와 있습니다. 약 1개월 사이 주당 6만 원대에서 5만5000원대로 주가가 내려가고 있습니다. 
답 : 네.
문 : 2015년 1~5월경 국민연금의 직접 및 위탁 운용에서 삼성물산에 대해 모두 마이너스라서 물산 주식을 지속적으로 매도하고 있었죠. 거래소 홈페이지에 가면 나오는데, 정리해 보니까 연금뿐만 아니라 기관투자자 전체도 3배 이상 매도를 하고 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답 : 삼성물산의 1분기 실적이 아주 안 좋게 나와서 4월 이후 매도가 좀 많았습니다.
문 : 기관투자자 전체가 이렇게 물산 주식을 매도하는 것은 당시 주가가 저평가됐다고 하지만 매도하는 것이 더 이익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닙니까.
답 : 그렇습니다. 매도하고 나서 매수 타이밍을 잡을 수 있으니까요.

- 2017.6.21.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 2020고합718, 증인 홍완선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 

실제로 국민연금은 2015년 3월 26일 기준 삼성물산에 대한 보유 지분이 11.43%에 달했지만,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이사회 결의일 직전 거래일인 5월 22일까지 물산 주식을 매도해 9.54%까지 보유 지분을 낮췄다. 이후 합병 발표를 공식화하자 다시 ‘사자’로 포지션으로 바꿔, 11.21%까지 지분을 회복한 것이다. 

2015년 당시의 주식 보유 변동 상황은 국민연금이 SK 합병 건과 무관하게,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의 명분 중 하나인 삼성물산의 사업과 실적, 주가 침체에 공감하고 있었다는 투자 판단을 내렸던 근거라 할 수 있다. 

국민연금의 입장에서 물산의 1대 주주로서 지분 가치 하락을 언제까지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된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굳이 기를 쓰고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단기차익을 노리고 판에 뛰어든 엘리엇과는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합병비율이 산정돼 있고, 합병 결의 이사회도 통과한 상황에서 오히려 두 회사의 합병이 무산된다면 이로 인한 충격으로 국민연금의 물산에 대한 지분 가치가 급격히 하락할 가능성도 있었다.

홍완선 전 본부장도 2017년 6월 21일 이재용 회장에 대한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서 이런 합병 무산으로 인한 주가 급락 가능성에 대해 “저희 연금에서 가장 걱정했던 것”이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심지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반대를 권고한 의결권 자문사 ISS 역시 합병이 무산될 경우 물산의 주가가 약 22%나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검찰 공소장은 당시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할 명분마저 사라졌고, 이 합병 건을 전문위원회에 부의해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단정적으로 언급했다. 반면 삼성 측 변호인단은 “당시 이런 상황으로 봤을 때, 국민연금은 아직 합병 찬반에 신중히 접근하고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반박해왔다.

선행사건 재판에서 ‘합병성사 위한 뇌물공여’ 배척 

앞서 판결이 확정된 국정농단 사건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재용 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총 3차례의 단독면담을 가졌다. 2014년 9월 15일과 2015년 7월 25일, 2016년 2월 15일의 만남이 그것이다. 

여기서 박 전 대통령의 최서원 씨의 딸 정유라 씨에 대한 승마 지원이라는 부정한 요구는 2015년 7월 25일 단독면담 중에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재용 회장은 당시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강한 질책을 받았고, 제대로 된 승마 지원과 승마협회 임원 교체의 요구가 있었다는 사실이 해당 사건의 판결문에 적시돼 있다.

검찰은 삼성 측이 대통령에 뇌물을 공여했고, 그 대가로 승계작업의 일환인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성사를 위해 대통령의 도움을 받았다고 봤다. 청와대 참모와 보건복지부를 통해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의결로 이어졌으므로 합병 찬성 자체가 범죄 행위라는 논리다.

앞서 언급했듯이 삼성 측이 박 전 대통령에 뇌물을 공여한 혐의는 이미 일부 유죄로 판결이 확정됐다. 그렇다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성사를 위해’ 뇌물을 공여한 것인지가 이번 사건에서 쟁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삼성 측은 이 사건 재판 과정에서 “이미 국정농단 사건 판결을 통해 관련 혐의를 벗었다”는 입장을 강조해왔다.

실제로 과거 법원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현안이 사실상 마무리된 이후 이재용 회장과 대통령 사이의 승마 지원에 대한 부당한 요구가 있었다면서도, 합병 성사와 승마 지원 요구 수용 사이에 인과 관계에 대해서는 부정한 바 있다. 

“이 사건 합병 안건은 2015. 7. 17.자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찬성 의결됐다. 이 사건 합병을 둘러싼 삼성그룹의 최대 현안은 국민연금공단이 위 주주총회에서 합병에 찬성하는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었는바, 피고인 이재용이 대통령과 단독면담을 한 2015. 7. 25.경에는 이미 국민연금공단이 위 주주총회에서 합병에 찬성하는 의결권을 행사하여 최대 현안이 해결된 후였다. …(중략)… 피고인 이재용이 2015. 7. 25.자 단독면담에서 대통령에게 이 사건 합병 및 외국 자본에 대한 경영권 방어 강화를 화제로 삼아 그와 관련한 청탁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 2017.8.25. 서울중앙지법 2017고합194 판결문

“피고인 박근혜와 이재용이 단독면담을 한 2015. 7. 25.은 엘리엇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합병 안건이 2015. 7. 17.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찬성 의결돼 합병이 일단락된 이후이다. 따라서 위 단독면담 당시를 기준으로 보면, 외국자본에 대한 경영권 방어 강화 방안은 삼성그룹이 중·장기적으로 추진할 현안으로는 볼 수 있을지언정, 이재용이 그것을 단독면담에서 피고인에게 청탁까지 해야만 할 삼성그룹의 시급한 현안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 2018.4.6. 서울중앙지법 2017고합364 판결문

국민연금과 삼성 측 관계자들은 합병 이슈와 관련해 수차례 만나고 연락하며 논의를 거쳤다. 

검찰은 그 과정에서 이재용 회장을 비롯한 최지성 미래전략실장, 장충기 미래전략실 사장 등 당시 삼성 측 임원들이 국민연금의 당시 전문위원회 위원들과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 등을 만나 합병 찬성을 청탁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미래전략실 임원이 청와대 등을 통해 연금 전문위원을 소개받아 합병 찬성을 청탁했고, 2015년 7월 7일에는 삼성전자 서초사옥 회의실에서 이재용 회장과 최지성 실장 등 삼성 측 임원들과 홍완선 본부장, 주식운용실장, 리서치 팀장 등이 면담하는 과정에서도 청탁이 있었다는 것이다. 

“피고인 이재용, 피고인 최지성, 피고인 김종중, 피고인 이왕익은 2015년 7월 7일 삼성서초 사옥 C동 39층 회의실에서 홍완선, 주식운용실장 한○○, 리서치팀장 채○○ 등과 면담을 진행했다. 당시 홍완선은 보건복지부장관 문형표로부터 이 사건 합병을 전문위원회에 부의하지 말고 투자위원회에서 찬성 처리하라는 강력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위 피고인들은 위 면담에서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할 수 있도록 합병가액 할인, 할증을 통해 물산의 합병비율을 재조정해 달라’는 홍완선의 요청을 거부하고는, 신규 순환출자 발생 위험은 숨긴 채 ‘합병이 되면 순환출자 고리가 7개로 줄어든다’고 홍보하는 한편, 물산 경영진과 이사회가 경영상 판단에 따라 합병 시너지 효과를 실질적으로 검토해 주도적으로 합병을 결정한 것처럼 허위로 설명했다. 그리고 ‘합병이 무산될 경우 플랜 비(Plan B)는 없다. 이번에는 무조건 성사시켜야 한다’며 합병에 찬성해 달라는 취지로 청탁했다.”

- 검찰 공소장

반면 삼성 측은 ‘만남과 면담은 사실이지만 청탁은 없었고, 합병을 추진하는 회사의 인원이 주요 주주를 만나 합병 찬성을 요청하는 정상적인 IR 활동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국민연금이 자신들이 주요 주주로 있는 회사와 미팅하는 것은 통상적으로 이루어지는 IR의 일부로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삼성은 합병 당시 연금 외에도 GIC, 메이슨, 디멘셔널(Dimensional Fund Advisors) 등 여러 기관 투자자와 미팅했습니다. 국민연금 전문위원회 위원장과의 면담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대화 주제는 합병 시너지, 합병비율의 적법성, 바이오산업의 미래 등에 대한 것이었고 이런 주제들은 삼성 측으로서는 합병 성사를 위해서 충분히 개진할 수 있는 내용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7월 7일 이재용 피고인 등과 국민연금 사이의 미팅도 그 면담 내용을 정리한 것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것이 합병비율, 주주 환원 정책, 지배구조 개선 방향, 그룹의 사업 방향 등과 같이 주주와 회사 사이에서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내용들이 오고 갔을 뿐이고 검사님들이 밑도 끝없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허위의 설명이 이뤄진 바는 전혀 없습니다. 한편, 이 부분 공소사실은 합병 찬성을 청탁했다는 것인데요. 이러한 대화를 나눈 것을 두고 청탁이라고 할 수 없다는 건 법률을 떠나 상식에 비추어 보더라도 당연한 것 같습니다.”

- 2023.9.15.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 2020고합718, 변호인 쟁점 기일 PT  

국민연금도 삼성 측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 준 적이 있다. 2016년 12월 14일 국민연금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재용 회장과의 면담을 포함한 삼성 측 관계자와의 합병 관련 만남을 지적한 언론보도에 대해 “합병회사의 비전, 시장과의 소통강화 방안 등 청취를 위한 공식적으로 수행한 검토 과정으로 국제 기준에 부합한다”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당시 국민연금 측은 “삼성그룹 오너와의 면담은 APG와 같은 해외 연기금도 이미 수행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합병 추진 당시 네덜란드 연기금 APG 자산운용의 팀장이었던 박유경 씨도 올해 4월 7일, 이 사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2015년 7월 8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이재용 회장과 합병 등에 관해 45분 동안 논의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국민연금은 SK 합병 건에는 반대했지만,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는 찬성했다. 사진=뉴시스
국민연금은 SK 합병 건에는 반대했지만,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는 찬성했다. 사진=뉴시스

국민연금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건뿐만 아니라, SK 합병과 만도 인적분할 등의 사례에서도 최종 결정 전에 해당 기업 측과 면담한 바 있다.

국민연금은 보도자료에서 “면담을 통해 합병의 추진 배경과 합병 후의 비전, 합병을 통한 시너지 창출 계획 그리고 합병비율의 변경 여지 및 주주 환원 정책 등에 대한 의견을 들었음”이라며 삼성 측의 청탁이 있었다는 의혹을 일축했다. 

특히 삼성 측은 위 2015년 7월 7일 삼성-국민연금 미팅을 포함해 미래전략실 임원들이 국민연금 관계자들을 만나 합병 찬성을 청탁했다는 검찰 측 공소사실은 이미 과거 국정농단 사건에서 부정됐다고 밝혔다. 

“(2015년 7월 7일) 공식적인 면담 자리에서 피고인 이재용, 최지성이 기금운용본부 측의 질문에 답을 하고, 합병이 성사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하는 것이 이례적이라거나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보기 어렵고, 기금운용본부 구성원에 청탁하기 위한 행위라고 보기도 어렵다. 또 위와 같은 부탁이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다고 볼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다.”
“설령 홍완선이 피고인 장충기로부터 합병에 관한 청탁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대통령에 대한 청탁이라고 볼 수는 없고, 달리 위와 같은 청탁 내용이 홍완선을 통해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다고 인정할 증거도 없다.”

- 2017.8.25. 서울중앙지법 2017고합194 판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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