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적으로 존재하기, 장애 가시화 프로젝트
급진적으로 존재하기, 장애 가시화 프로젝트
  • 이선종 (robin@domo.co.kr)
  • 승인 2024.02.08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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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종 - 문제의 주역 ⑥] 장애인 커뮤니티가 주시하는 미디어 속 장애인의 모습

학습된 대중문화적 편견 탈피, 장애인의 시선·이야기 모으는 노력
그 과정 속에서 나온 장애인 커뮤니티 DVP의 탄생과 성장 이야기

현대 사회의 다양한 고민과 어려움에 도전하는 브랜드 이야기를 담으려고 한다. 그들만의 독특한 관점과 리더십을 바탕으로 정의한 문제가 어떤 혁신적인 해결책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지 볼 수 있다.

더피알=이선종 |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 눈치 보지 않고
시설에서 나와 /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
이것이 이동권이고 / 살아갈 권리입니다
- 퍼플퍼스트의 ‘시민 호소문’ 중

2023년 9월, 장애인권리예산 농성장에서 발달장애인 단체 피플퍼스트 활동가들이 부른 노래의 일부다. 농성의 주된 이유는 장애인 이동권, 교육권, 탈시설 예산 증액이었고, 이 문제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장애인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부끄럽지만 난 아직 없다.

한국의 장애인 수는 2021년 기준 262만 5000명(전체 국민의 5.1%)으로 2011년부터 매년 평균 20만 명 정도 증가하고 있다. 장애인 수가 늘어나는 가장 큰 원인은 고령화와 만성질환이다. 이미 고령화 시대로 접어든 한국에는 앞으로 더 많아질 거란 말이다.

2022년 방영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내가 접한 가장 가까운 사례였다. 최근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후배가 들어왔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생각할 때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걸 본 내게 딸아이는 “영우(가명)는 원래 그래. 우리가 이해해야 해”라는 말을 해줬다. 당황한 나보다 훨씬 어른 같았다.

오늘 문제의 주역으로 다룰 이야기는 우리가 쉽게 만나기 어렵다고 느꼈던, 하지만 바로 옆에 있었던 장애인 커뮤니티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다.

DVP의 탄생

장애인의 삶을 충실히 반영하고 다양한 경험을 세상에 전파하기 위해 2007년 앨리스 웡이 장애인 커뮤니티 'Disability Visibility Project'(이하 DVP)를 창설했다. 이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냈고, 현재 많은 개인과 단체가 이 프로젝트에 기여하며 참여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목표는 장애인 커뮤니티가 언론과 교육, 정책 결정 과정에 더 많이 참여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장애인 개인과 가족, 그리고 이들과 일상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실제 경험을 폭넓게 알리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커뮤니티 창립자 앨리스 웡. 사진=disabilityvisibilityproject

앨리스 웡의 책 ‘급진적으로 존재하기’ 서문에서 “나는 지금, 이전의 어떤 시기보다 장애인들이 더 많이 눈에 띄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에 대한 재현은 흥미롭고 중요한 주제지만, 그것을 다루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는 더 많은 것을 원한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기대해야 한다. 그럴 자격이 있다. 미디어에서 장애인을 재현할 때는 깊이, 다양성, 뉘앙스를 고려해야 한다. 이것이 출판과 대중문화 업계가 맞닥뜨린 시대적 과제다”라고 했다.

#1 DVP 기준의 악당을 찾다

첫 번째로 장애인에 대한 문화적 공백은 미디어 산업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편향에서 비롯된다. 장애인 인구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콘텐츠와, 그들의 목소리가 왜곡되거나 누락되는 현상을 악당으로 삼았다.

이 공백은 장애인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사회적 배제를 미디어로 확장시켜, 중요한 정보와 자원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잘못된 인식을 강화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지고 왔다.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비장애인의 시선으로 장애인 캐릭터를 표현하거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피해자 혹은 영웅적 인물로 단순화하여 그려냄으로써 다차원적인 장애인의 실제 경험과 동떨어진 서사를 생산해냈다.

가수 아이유 신곡 ‘러브 윈즈 올’(Love wins all) 뮤직비디오에 관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낸 만평.  뮤직비디오에서는 청각과 시각을 잃은 두 인물이 캠코더 너머 행복한 세상에서 장애가 사라진 것으로 묘사됐다. 일각에서는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 그려졌다며 의견이 제기됐다.
가수 아이유 신곡 ‘러브 윈즈 올’(Love wins all) 뮤직비디오에 관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낸 만평. 뮤직비디오에서는 청각과 시각을 잃은 두 인물이 캠코더 너머 행복한 세상에서 장애가 사라진 것으로 묘사됐다. 일각에서는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 그려졌다며 의견이 제기됐다. 사진=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SNS 캡쳐

두 번째로 장애에 대해 보도할 때 종종 사용되는 언어와 표현은 부정적인 선입견이나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경향이 있다. 그로 인해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화되고, 장애인 스스로가 자신의 삶과 정체성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권한을 침해당한다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장애인의 관점과 의견을 소외시키는 일도 자주 발생한다. 이는 그들의 진정한 스토리와 관점이 공론의 장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세 번째로 누구나 미디어를 가질 수 있는 이 시대에 장애인 스스로 미디어 제작에 참여할 기회가 심각하게 제한되어 있다. 제작자, 극작가, 감독, 배우 등 미디어 산업 내 다양한 역할에서 장애인의 대표성은 미미하며, 이들이 담당하는 역할 또한 제한적이다.

이는 장애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풀어낼 기회가 희소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결국 대중매체가 제시하는 장애인의 이미지는 제한된 관점에서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미디어 내 구조적 문제와 도전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의 가시성과 의견을 존중하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따라서 다양성을 촉진하고 장애인 커뮤니티의 목소리를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며, 미디어 제작의 모든 단계에 장애인의 의미 있는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다.

또한 미디어 소비자로서 장애인의 경험과 필요를 이해하고 응답하기 위해 산업 전반에 걸친 교육과 표준을 마련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2 살아 숨 쉬는, 놀랍고도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한 플랫폼, DVP

앨리스 웡은 “과거를 기리는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장애인의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었고, 미국 장애인법(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 이하 ADA) 기념일마다 언급되는 ‘핵심 인물’ 대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보고 싶었으며, 아직도 백인 남성 중심적인 주류 문화에서 장애 재현의 다양성을 높이고 싶었다”고 전한다.

그녀는 구술사 활동 단체인 스토리코프와 함께 장애인들의 구술사를 기록해 국회 도서관에 아카이빙하는 ‘장애 가시화 프로젝트'(DVP)를 기획했다. 원래는 ADA 기념일을 염두에 둔 1년짜리 캠페인이었지만 현재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DVP 웹사이트 메인. 사진=disabilityvisibilityproject
DVP 웹사이트 메인. 사진=disabilityvisibilityproject

DVP에선 장애인이 자신의 경험과 도전, 성취를 직접 서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는 강력한 내러티브를 형성하며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의 삶을 이해하도록 돕고, 커뮤니티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구술 역사 녹음을 통해 수집된 이야기들은 교육, 연구 그리고 공공정책을 위한 데이터베이스로 보관되며, 공개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DVP는 이 커뮤니티의 목소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확산했다. 그중 가장 활발히 운영한 것은 2021년까지 100개의 에피소드를 방송했던 팟캐스트 시리즈다.

솔직하고 진솔하게 장애 경험에 대해 토론하는 방식으로, 장애인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구성원, 활동가, 학자, 예술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빙해 광범위한 주제를 다뤘다.

또한 장애인이 직접 참여한 책을 발간하거나, 장애인 관련 사건 및 이슈에 대한 공익 캠페인 등을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확산함으로써 미디어 문화 속 장애인의 존재와 목소리를 가시화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3 사회 변화를 이끄는 DVP

DVP는 장애인들을 커뮤니티로 모으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장애인에 대한 태도와 정책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2016년 2월, 대통령 후보 토론이 있었던 민주당 예비 경선에 장애인들을 초청해 #장애인은투표한다(#CripTheVote) 해시태그를 활성화했으며, 트위터에서 수많은 정치적 사건을 만들어냈다.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대표적인 장애인 운동가들의 놀라운 업적도 만들어졌다.

주디 휴먼. 사진=TED

주디 휴먼(Judy Heumann)은 2020년 오스카상 후보작 '크립캠프'(Crip Camp)에 출연했다. 뉴욕주 최초의 휠체어 공인 간호사 앤드리아 달젤(Andrea Dalzell)은 2020년 애플워치 광고에 출연했으며, 같은 해 'Good Morning America' 생방송에서 'Craig H. Neilsen Visionary Prize'를 수상했다.

커뮤니티 창시자 앨리스 웡은 오바마 행정부 전국장애위원회(National Council on Disability)에서 활동하며 장애인 프로그램에 대해 대통령과 의회에 자문을 제공했다.

코리 리(Cory Lee)는 포브스(Forbes) 여행 블로거로, 장애가 있어도 여행이 가능할 뿐 아니라 스릴 넘치는 여행자임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2018년 'New Mobility Magazine'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다. 그는 7개 대륙을 모두 가본 인물이다.

DVP의 모든 활동은 장애인이 자신의 경험과 도전에 대해 직접 말할 수 있는 무대가 되었고, 장애인이 사회에서 더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영향력은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대한 인식 변화, 법률 개정, 제도적 지원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4 약속의 완성은 곧 브랜드 메시지가 된다

- 협업, 연결, 그리고 기쁨의 기록 -
DVP는 장애인의 진짜 이야기라는 이니셔티브와 옹호 활동을 통해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옆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장애와 비장애.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이 단어 하나가 얼마나 큰 선을 긋고 있을까?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마음의 벽은 훨씬 강하다.

장애를 드러내는 것이 위험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던 미디어 학습 효과. 누구든, 언제든, 나의 정체성은 바뀔 수 있다. 누군가의 허가나 인정이 아니라 누구든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캠페인이나 메시지를 개발할 때 장애 커뮤니티의 주체성과 권한을 존중하는 것이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동이다.

실제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은 당장은 힘들겠지만 장애인과의 접점을 늘리면서 현실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 PR 전문가들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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