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 곧, 한국 드라마에 찾아온 또 한 번의 도약
이재 곧, 한국 드라마에 찾아온 또 한 번의 도약
  • 성장한 (sickarl@gmail.com)
  • 승인 2024.02.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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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칼의 PICK THE CULTURE]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이재, 곧 죽습니다’

더피알=성장한 | OTT 시대가 열리면서 한국 드라마에도 다양성의 바람이 불었다.

영화에서나 가능했던 소재나 수위를 담은 드라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미성년자 성매매를 다룬 ‘인간수업’이나 사람 죽이는 게임이 나오는 ‘오징어 게임’ 같은 드라마는 OTT가 아니었다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바람은 마침내 이 드라마를 탄생시켰다.

‘이재, 곧 죽습니다’(이하 ‘이재곧’)는 약 십여 년 전부터 서브컬쳐 내 주류 장르 중 하나였던 회귀물에 기반하고 있다.

회귀물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서 인생을 다시 한 번 사는 것. 이것은 회귀물의 기본이며 타임리프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두 번째는 짧은 기간을 여러 번 반복하는 타임루프물이다.

‘이재곧’은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는 독특한 설정을 보여준다.

본인이 아닌 다른 인물의 인생을 중간부터 이어서 산다는 건 회귀물에서는 흔한 설정이다. 이미 드라마화된 ‘재벌집 막내아들’도 이런 형태를 하고 있다.

‘이재곧’의 주인공은 타인 한 명이 아니라 열두 명의 인생을 살게 된다. 그리고 (예외도 있지만) 열두 명의 인생을 사는 동안 시간은 순차적으로 흐른다.

회귀물은 주로 과거로 돌아가기 때문에 미래를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다는 메리트를 갖고 시작하지만 ‘이재곧’에서 다음 인생이 시작되는 시점은 이전 인생이 끝난 이후이므로 미래에 대한 정보는 없다. 대신 세계나 시간이 리셋되지 않기 때문에 이번 생에서 다음 생을 위한 준비를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독창적인 설정은 그 자체로 이야기에 동력을 부여하는 장치가 된다.

미성년자 성매매를 다룬 ‘인간수업’이나 사람 죽이는 게임이 나오는 ‘오징어 게임’ 같은 드라마는 OTT가 아니었다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미성년자 성매매를 다룬 ‘인간수업’이나 사람 죽이는 게임이 나오는 ‘오징어 게임’ 같은 드라마는 OTT가 아니었다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서브컬쳐계 작품들 중에는 일종의 ‘소재는 좋았다’로 평가되는 작품들이 많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그 아이디어를 전개할 역량을 갖추지 못하여 급격하게 힘이 빠져 버리는 것이다.

‘이재곧’의 가장 훌륭한 점은 좋은 아이디어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이상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주인공이 다른 인물의 인생을 대리하게 되면서 그때마다 새로운 서사가 발생한다. 만약 주인공의 서사가 빈약했다면 에피소드마다 인물이 바뀔 뿐인 옴니버스 드라마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이재곧’은 주인공의 서사와 서브 주인공의 서사를 효과적으로 교차시켜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든다. 목적이 없었던 주인공은 서브 주인공의 서사로 인해 목적이 생기고,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서브 주인공의 서사를 활용하게 된다.

다양한 인물을 다루지만 서사가 난잡해지지 않고, 중심 서사와의 자연스러운 연계에 의해 몰입감과 깊이를 더해 준다.

대부분의 서브 주인공들과 그들의 서사는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어 에피소드마다 장르가 바뀌는 듯한 효과를 준다. 에피소드간 편차가 다소 있기는 하지만 무너지는 구간이 없어 텐션이 유지된다는 점도 칭찬할 만하다.

아쉬운 점은 서브 주인공들의 능력이 너무 출중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쉽게 흥미를 끄는 데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편의주의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감상을 떨치기는 어렵게 한다.

조연을 활용하는 방법도 눈에 띈다.

옴니버스식 구성에서는 서브 주인공이 퇴장하면 그와 관련된 인물도 같이 퇴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재곧’에서는 서브 주인공의 서사에 영향을 줬던 인물은 이후에 다시 등장하여 본인의 서사를 끝내는 경우가 많다. 이런 활용은 작중 세계를 보다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다만 조연들의 개연성에는 조금 더 신경을 썼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재곧’이 가지는 가장 큰 의의는 독특한 소재를 갖고 그것을 잘 활용하기까지 한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드라마화가 됐다는 점이다.

이 작품을 계기로 앞으로 한국 드라마의 지평이 더욱 넓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이제 와서 초를 치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열두 번의 삶을 얻는 게 징벌이라는 게 말이 되나? 아무리 생각해도 포상인데.

포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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