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차 직원이 영업비밀 유출하고도 집행유예 받은 이유
삼성·현대차 직원이 영업비밀 유출하고도 집행유예 받은 이유
  • 한민철 기자 (kawskhan@naver.com)
  • 승인 2024.05.20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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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전 내부 영업비밀 유출했지만, "제3자에 제공하지 않았다"라며 감형
영업비밀 유출 행위 자체만으로는 심각한 범죄로 판단하지 않는 점, 솜방망이 처벌 원인

더피알=한민철 기자 ㅣ 영업비밀 누설 혐의로 기소된 전직 삼성과 현대차 직원들이 법원으로부터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이들이 국내 산업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행위를 저질렀다고 판단했지만, 영업비밀을 제3자에까지 유출한 증거나 정황이 없다며 감형 결정을 내린 것이다. 최근 정부 차원에서 산업기술 탈취 및 유출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지만, 법원이 ‘유출’의 기준을 제3자에 제공했는지에 두면서 사실상 솜방망이 처벌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삼성과 현대차의 영업비밀을 누설했다며 재판을 받아온 전 직원들이 법원으로부터 다소 솜방망이의 처벌을 받았다. 사진=뉴시스
삼성과 현대차의 영업비밀을 누설했다며 재판을 받아온 전 직원들이 법원으로부터 다소 솜방망이의 처벌을 받았다. 사진=뉴시스

지난 9일 수원지방법원은 영업비밀 누설 혐의로 기소된 전직 삼성 직원인 A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취재에 따르면, 삼성의 건설 부문 계열사 소속으로 EPC 등 핵심 기술 취급에 이어 인사 업무까지 맡았던 A씨는 지난 2022년 한화의 주요 계열사로 이직이 결정됐다.

그런데 A씨는 퇴사를 앞두고 삼성 서버에 저장된 EPC와 인사 파일 등 자신이 그동안 수행해온 업무 관련 자료 600건 이상을 유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A씨는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 중이었는데, 업무용 노트북으로 회사 서버에 접속해 기밀 자료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가 서버 저장 자료를 하드디스크에 다운로드했다면, 노트북에 해당 기록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개인 클라우드 저장소에 자료를 바로 다운로드하는 게 가능했는데, 이런 방식을 통해 노트북 하드디스크에 열람 및 저장 기록을 남기지 않고 자료를 유출한 것이었다.

삼성 측은 A씨 퇴사 후 업무용 노트북에 자료를 내려받았지만 저장한 기록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했다. 결국 A씨가 한화로 이직하고 나서야 수사기관에 그를 신고했고, 조사 과정에서 순순히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A씨의 행위가 영업비밀 침해에 해당한다며, 이것이 공정한 경쟁 질서와 국내 산업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심각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재판부는 양형 요소를 고려해 A씨를 집행유예로 감형한 것이다. 특히 피해자인 삼성 측이 A씨와 합의하지 않고 그에 대한 엄벌을 탄원했음에도 말이다. 

이처럼 범죄행위의 심각성에 비해 다소 가벼운 형량은 ‘제3자 유출 여부’로 갈렸다. 재판부는 A씨가 삼성의 영업비밀 자료를 유출한 것에 대해 이견이 없지만, 해당 자료를 한화 측에 제공했다거나 또 다른 이에게 경제적 대가를 받고 넘겼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이직 후 전 직장에서 수행해오던 업무의 참고를 위해 자료를 받았을 뿐이므로, 이를 타인에 유출했다거나 그러한 의도도 없었다는 A씨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참고할 목적”이라고 집행유예 

회사 영업비밀 자료를 유출했음이 명백함에도 제3자 유출의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사례는 또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올해 2월 영업비밀 누설 혐의를 받고 있던 전직 현대자동차 연구원 B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현대차 남양연구소의 연구원이었던 B씨는 지난 2020년,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인 M사로 이직했다. B씨는 아이오닉5 등 현대차의 주력 전기차 제품의 개발 및 기술 연구 경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당시 M사도 대규모 전기차 위탁 생산을 앞두고 있어 서로 ‘윈윈(Win-Win)’하는 이직이 될 수 있었다. 

B씨는 현대차 퇴사 직전, 전기차 기술 관련 자료를 외부로 유출했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사용하던 컴퓨터에서 자료의 파일 이름을 단순 교육자료와 연관된 키워드로 바꿨다. 인쇄기와 컴퓨터에는 실제 인쇄한 파일명이 기록에 남을 뿐, 그 자료 안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까지 회사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점을 이용했다. 파일명을 변경해 인쇄한 뒤, 해당 인쇄물을 연구소 밖으로 가지고 나간 것이었다.      
현대차 측은 B씨의 영업비밀 자료 유출 정황을 뒤늦게 파악해 신고했고, B씨는 지난해 9월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B씨가 유출한 자료에는 현대차가 미래 주력 제품으로 보고 있는 전기차 관련 핵심 기술이 담겨 있었다. 이를 퇴사 직전에 대량으로 인쇄해 외부로 가지고 갔다. 심지어 B씨는 M사로 이직한 이후, 중국계 자동차 제조 관련 회사로 다시 한번 자리를 옮긴 것으로 전해졌다. 

당연히 B씨가 유출한 현대차의 전기차 관련 내부 자료가 M사는 물론이고, 중국계 회사에도 넘어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법원은 B씨가 해당 자료를 개인적인 참고 목적으로 가지고 있었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자료가 M사나 중국계 회사에 전달된 증거가 없다는 점, 그가 해당 자료를 유출해 경제적 이득을 취했다고 볼 정황도 없다는 사실을 들어 집행유예로 감형했다. 

솜방망이 처벌에 매년 늘어나는 영업비밀 유출 사건

법원은 영업비밀을 유출한 것이 맞더라도 혼자만 해당 자료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적극적 유출 행위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감형 요소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A씨와 B씨는 내부 자료를 외부에 유출하지 않겠다는 보안서약서를 작성한 뒤 퇴사와 이직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퇴사 전 내부 자료를 유출해 서약을 어겼고, 직후 동종업을 영위하는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적극적인 유출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것인지 법원의 다소 너그러운 판단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물론 전 직장의 영업비밀 관련 자료를 이직한 회사에 건넨 정황이나 증거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까지 처벌할 수는 없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다만 산업계뿐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국내 산업기술의 탈취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보고 있고 대책이 시급하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음에도, ‘타인에게 영업비밀을 넘겼는지’ 여부를 감형 요소로 판단한다는 점은 영업비밀 유출 행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는 비난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국내 대형 IT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때 대부분 재택을 했는데, 그때 내부 기밀 유출이 많이 이뤄졌을 것”이라며 “작정하고 다른 사람 스마트폰을 통해 노트북 화면에 나온 자료 사진을 찍거나 외부 클라우드에 저장하면 이를 발각하기는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결국 영업비밀을 보안서약 사항까지 어겨가며 밖으로 유출한 행위에 전적인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걸 개인 참고용으로 보관하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 엄하게 처벌하지 않는다면 기술유출은 국가 경쟁력과 산업 발전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히는 행위임에도 결국 이런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가 핵심기술을 포함한 산업기술이 해외로 유출돼 적발된 건수는 지난 2019년 14건, 2020년 17건, 2021년 22건, 2022년 20건, 지난해 23건에 달했다. 해외로 유출된 사례 중 알려진 것만 이 정도일 뿐이다. 실제 산업기술을 유출해 국내 경쟁사로 이직했지만 드러나지 않은 사례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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