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도 사람처럼 얼굴이 있다
영화도 사람처럼 얼굴이 있다
  • 이슬기 기자 (wonderkey@the-pr.co.kr)
  • 승인 2013.01.14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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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홍보의 마스터, 이윤정 퍼스트룩 대표
<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천만 영화 일등공신

[더피알=이슬기 기자] 지난해 한국영화는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다. 최초로 한해 관객 1억명을 넘어섰고, 천만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두 편이나 탄생하며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열었다. 이 중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고, <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천만을 넘긴 영화 두 편의 홍보를 맡은 ‘1st look’(퍼스트룩)의 이윤정(37) 대표를 만나봤다.

▲ 퍼스트룩 이윤정 대표.

<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 <러브픽션> <내 아내의 모든 것>, <코리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반창꼬> 등 지난해 퍼스트룩이 맡은 영화는 열편을 훌쩍 넘는다. 이 중 천만에 달한 두 편을 포함해 퍼스트룩이 동원한 관객이 1억의 절반가량, 활약이 두드러진다.

“작품분석에 가장 공을 들이고 있어요. 콘텐츠가 가지고 있는 내적인 장점과 약점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심도 있게 분석하려고 노력하죠. 그 다음에 작품의 장점을 어떻게 부각할까 고민해요. 저는 영화도 사람이랑 마찬가지로 저마다의 개성과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잘되는 비결을 묻자 그저 작품분석을 철저히 한다는 심플한 대답이었지만, 영화에도 얼굴이 있다는 말에 방점이 찍힌다.

“사람이 그렇잖아요. 조금만 살펴보면 장점만 있는 사람도, 단점만 있는 사람도 없어요. 영화도 강점이 있으면 약점도 있기 마련이고, 또 약점만 있는 영화도 없어요. 일단 영화화됐다면 콘텐츠에 분명한 강점과 하려는 이야기가 있거든요. 그걸 어떻게 잘 포착해서 관객들과 소통하느냐가 관건이죠.”

<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흥행 비결은

영화홍보는 다른 제품과 다르다. 관객은 영화가 상영관에 걸려있을 때 극장을 찾아야 한다. 한정된 시간, 같은 가격의 작품 중 선택을 받기 위한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영화가 가진 가치전달과 극장에 와야 하는 명확한 동기부여에서 승부가 난다. 과거에는 직관적 접근으로 관객몰이가 가능한 시절도 있었지만, 관객이 촘촘하게 연결된 지금에는 통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올해는 다양한 장르에서 좋은 작품들이 많이 선보였는데 비교적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고 봐요. 많은 분들이 작품을 알아보고 SNS로 활발하게 공유하면서 흥행으로 이어졌거든요. <부러진 화살>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전통적인 관점에서 시장성 있는 작품이 아니었음에도 관객들의 입소문으로 흥행을 하고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올해 1000만을 넘긴 영화 두 편을 모두 퍼스트룩에서 홍보했다. 혹시 ‘될 만한’ 작품을 고르는 눈이 탁월한 건 아닐까?

“부득이하게 일정 때문에, 혹은 색깔이 전혀 다른 경우에는 거절하지만, 작품을 고른다는 말엔 조금 어폐가 있어요. 저희 회사가 7년 정도 됐거든요. 그간 해온 것들이 있으니까 작품을 맡기는 회사들도 우리가 잘할 것 같은 작품을 제안하고... 합이 잘 맞아서 결과가 좋았던 것 같아요.”

이윤정 대표는 명필름에서 영화마케팅을 시작해 29살인 2005년 퍼스트룩을 시작했다. 지난해 퍼스트룩의 활약은 요행이 아니라, 영화마케팅 분야에서 꾸준히 쌓은 결실에 가깝다.

“사명이 ‘1st Look’이잖아요. 그게 저희 회사의 사명이거든요. ‘처음의, 새로운 것’들을 계속적으로 추구하고 있어요. 장르나 내용에 상관없이 새롭다고 느껴지는 작품을 맡을 때 희열을 느끼고, 퍼스트룩의 색깔대로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죠. 처음에는 확신이 서지 않더라도, 흥행을 담보하는 작품이 아니더라도 연기, 연출, 장르, 풀어내는 방식 등 우리가 보기에 새롭고 의외성이 있는 작품을 선호해요.”

▲ 지난해 퍼스트룩에서 마케팅을 진행한 <도둑들>(위)과 <광해, 왕이 된 남자>(아래) 프로모션 현장.

영화마케팅, 디테일과 위기관리에서 승부 갈려

퍼스트룩의 이런 성향은 일의 진행에서도 그들만의 스타일을 만든다. 퍼스트룩은 이 대표만큼 직원들도 젊은 편이다. 때문에 여러 가지 면에서 대화와 소통을 중시한다. 이 대표는 퍼스트룩의 강점으로 클라이언트와의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을 꼽았다.

“마케팅이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제가 맞다고 생각해도 그게 진짜 맞는지는 아무도 모르거든요. 근데 일단 결정하면 믿고 가야하니까 결정하기까지 다같이 치열하게 갑론을박하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안목을 가진 사람들과 베스트를 만들기 위해 의견 조율하는 과정이 굉장히 즐거워요.”

영화마케팅은 캐스팅 단계부터 시작된다. 통상적으로 시나리오가 프로덕션에 들어가면 마케팅팀은 정해진다. 어떤 콘셉트와 이미지를 줄 것이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다. 좋은 시나리오에 좋은 매우들과 제작진이 만난다고 꼭 좋은 작품을 담보하지 않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또 기본적으로 트렌드에 민감해서 제작 기간 동안 시장 환경이 변하기도 하고 변수가 많다. 지난해 <도둑들>의 배우 김수현은 제작당시보다 개봉시점에 인지도가 높아져 이런 효과를 긍정적으로 보여준 예이다.

“영화마케팅은 디테일과 위기관리가 관건이라고 생각해요. 구조적인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같은 재료의 조합이라도 결과는 전혀 딴판이 될 수도 있거든요. 생명체 같죠. 굉장히 유기적이라 변수에 대한 즉각적인 조정이 필요해요. 작은 것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대이기에, 개인의 실수가 전체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죠.”

영화가 좋아 영화마케팅을 시작했다는 이 대표는 영화를 사람에 비유하는가 하면, 인터뷰 내내 ‘유기적’ ‘생명체’ 등의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도, 관객들과 소통하는 면에서도. 마케팅의 묘미를 충분히 즐기는 프로라는 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을 물었다.

“기록에 연연할 건 없다지만, 지난해 관객 1억명 이상이라는 대기록에서 우리 회사의 역할이 40~50%가량 되거든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만들어내는데 함께 했다는 게 뿌듯해요. 또, 영화의 가치를 관객들에게 인정받을 때 보람을 느끼죠. <완득이> 같은 경우 500만 정도 들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적으로 회자되고 좋은 영화로 인정받고 있어요. 단순히 재밌게 보고 스치는 영화는 아니거든요. 그런 영화로 관객들과 교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짜릿해요.”

왜 홍보비 증가가 문제인가

▲ 퍼스트룩 이윤정 대표.
한편, 대중문화계에서 영화의 입지는 예전에 비해 줄어든 상황이다. 90년대에는 가장 각광받는 문화산업이었지만 한류열풍이 뜨거운 지금 그 자리는 가요에 내줬다. 산업의 입지가 그렇다보니 굉장히 다양한 능력을 필요로 함에도 전문직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풍토가 아쉽다고. 전문직으로서의 자부심이 빈약해지는 편이고, 외부적으로 대행료나 인건비면에서도 십여 년 전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쪽으로 유입되는 인재도 점점 줄어가는 걸 느껴요. 요즘 영화를 열심히 보는 친구들은 영화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이나 이해가 높은 친구들은 아닌 것 같다는 인상을 받거든요. 단순히 흥미로워서 경험해보고 싶은 친구들은 사절이죠. 영화에 대한, 그리고 직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통찰이 있는 친구들과 일하고 싶어요. 고민과 사색의 깊이는 시간이 갈수록 각자 인생에도 차이를 줄 거라고 봐요. 또 그만큼 연차가 될수록 연봉도 적지 않은 수준으로 대우한답니다.”

지난해는 한국영화가 르네상스를 일으키기도 했지만, 실제로 홍보비가 제작비를 육박하는 수준으로 증가하는 경우도 있었고 이에 홍보비 증가에 대한 질타도 거셌다. 마지막으로 이런 우려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대답에 앞서 이 대표는 왜 홍보비가 제작비를 넘으면 안 되는지 되물었다. 근본적으로 마케팅의 방식과 미디어 환경이 다각화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 없이, 천편일률적으로 ‘홍보비가 늘어나는 것은 문제다’라는 진단만 쏟아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산업 내에서 각 콘텐츠의 시장성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잡고 그에 따라 집행규모를 달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콘텐츠 산업의 특성상 층위를 가르는 게 쉽지 않은 면은 있지만, 어려워도 결국 해결의 실마리는 자정노력에 있다는 것. 벤치마킹할만한 사례를 묻자, 아직 접하지 못했다며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아예 꿈꾸지 않을 순 없고, 장기적으로 산업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노력”이라며 향후 행보에 대해 자신감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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