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로 눈 돌린 유한킴벌리 사연
‘시니어’로 눈 돌린 유한킴벌리 사연
  • 박재항 (admin@the-pr.co.kr)
  • 승인 2013.02.06 15: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재항의 C.F.(Corporate File)

[더피알=박재항] “네. 유한킴벌리를 제치고, 환경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업으로 3년 안에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모 프로젝트 제안서 발표 후에 우리에게 제안을 의뢰했던 회사 담당자가 “그러니까, 요는 우리 회사가 환경하면…”하고 물어보는 찰나 필자가 불쑥 끼어들어 단정적으로 건넨 말이다. ‘환경’하면 최초 연상되고 언급되는, 소위 TOM(Top of mind)으로 유한킴벌리가 꾸준히 70% 언저리로 나오던 시절이었다.

1994년 초였다. 국내의 한 기업이 자신들이 유한킴벌리보다 나무도 훨씬 많이 심고, 친환경 시설에 대한 투자도 많이 하는데 소비자와 사회에서 몰라준다며 친환경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는 계획을 제안해보라고 했다. 환경마케팅에 대한 기초를 습득하는 것에서부터 소비자들의 의식조사와 벤치마크까지 연구 계획을 세우고, 기업의 모든 분야에서의 실행계획을 짰다.

컨설팅비도 당시로서는 꽤 큰 액수였던 1억 이상을 불렀다. 그러나 조사계획의 사소한 부분과 그에 따라 몇 백만 원을 놓고 실랑이가 지루하게 계속되다가 결국 프로젝트는 시작도 하지 못한 채 접고 말았다.

클라이언트에게 아이디어를 제안했다가 불발로 끝난 프로젝트는 사실 한둘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앞서 언급한 환경 프로젝트는 실행하지 못해 가장 안타까웠던 것 중 톱3 안에 든다. 무엇보다 그 때 이미 살아있는 전설로 평가됐던 유한킴벌리의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이하 우리 강산)가 경쟁대상이라는 점이 20대 팔팔한 필자의 투지를 불타오르게 했기 때문이다.

‘우리 강산’ 캠페인의 숨겨진 성공요인

▲ 유한킴벌리의 '시니어가 자원이다' 광고 스틸컷.
환경하면 유한킴벌리가 떠오르고, 반대로 유한킴벌리하면 떠오르는 것을 물어봐도 환경 관련한 이미지나 문구가 떠오를 것이다. 유한킴벌리의 ‘우리 강산’의 성공요인에 대해선 대부분 1984년에 처음으로 환경캠페인을 시작했다는 ‘선도성’과 말로만 그치지 않고 꾸준히 나무를 심는 행사와 연계시켰다는 ‘지속성’과 ‘일관성’을 얘기한다.

색다른 캠페인을 먼저 시작하고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으로, 변하지 않는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어느 캠페인에나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강산’ 캠페인은 아주 모범적인 사례이다. 이와 동시에 캠페인 외부, 즉 기업 브랜드 관점에서 ‘우리 강산’ 캠페인의 성공을 지원한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캠페인 자체에만 집중해서인지 여기에 대해 언급된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다.

첫 번째는 유한킴벌리의 한국측 투자회사인 유한양행의 존재이다. 더 나아가면 유한양행의 상징적인 인물인 창립자 유일한 박사의 유산이다. 유한킴벌리는 1970년 한국의 유한양행과 미국의 킴벌리클락이 3:7로 투자해 만든 회사다.

킴벌리클락이 해외에 투자해 설립한 자회사 중 유한킴벌리만이 유일하게 진출 지역의 투자 파트너 회사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경우라고 한다. 그 정도로 유한양행으로 비롯된 ‘유한’이란 기업브랜드가 한국에서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브랜드 파워의 원천이 바로 유일한 박사였다.

법인(法人)이란 그 탄생부터 사회적 의무와 권리가 주어진다. 그런데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하도록 만드는 것은 바로 기업인이다. 기업인은 어떻게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나란 측면에서 최고의 이정표를 만든 이가 바로 유일한 박사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는 유산으로 손녀에게 학비 명목으로 미국화 1만달러, 딸에게는 당시 큰 가치가 없었던 묘역 부근의 땅 5천평만을 남겼다. 그 땅도 유한학교와 회사를 위한 동산을 만들라고 조건을 붙였다. 아들에게는 대학 나왔으니까 스스로 알아서 살라고 한 푼도 남겨주지 않았다. 나머지 모든 재산을 학교재단에 넘겼다.

그의 죽음 직후 유언장이 공개됐고, 그는 ‘존경’의 기준이 어떻게 바뀌든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 5인에 항상 꼽히는 불멸의 이름으로 남았다. 널리 알려진 재산의 사회 환원 이전부터 유한양행은 철저히 법을 지키며, 반사회적인 행위는 하지 않는 기업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런 올바른 기업으로서 유한양행이 쌓아온 신뢰와 명성, 유일한 창업자가 보여준 진정한 기업인의 자세는 여느 기업의 공익캠페인과 다르게 진정성을 이미 확보하고, 소비자가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로 유한킴벌리는 한국인의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을 바꾼 생활용품 부문의 독보적인 기업이었다. 1971년에 미용티슈인 크리넥스와 1회용 생리대인 코텍스를 한국시장에 최초로 내놓았다. 이어 1975년에는 최초의 화장실 전용 휴지인 뽀삐가 나왔고, ‘우리 강산’ 캠페인이 나오기 바로 전 해인 1983년에는 팬티형 기저귀인 하기스가 유한킴벌리를 통해 한국 소비자와 만났다.

1994년 당시 유한킴벌리는 아마도 많은 한국인들에게 가장 가까이 있던 기업 중의 하나였다. ‘우리 강산’의 초기 인쇄광고에는 유한킴벌리 기업 로고와 함께 대표제품이라고 할 수 있는 크리넥스 사진이 눈에 잘 띄게 들어가 있다. 친숙한 제품과의 연결을 통해 기업 이름이 낯설거나 환경 이슈를 이야기하는 게 느닷없다고 느낄 소비자에게 완충제 역할을 하도록 했다.

CSR에서 CSV로…새 캠페인의 숙제는

지난 1월호 <더피알>의 기사로 유한킴벌리의 새로운 캠페인이 소개된 바 있다(관련기사: 유한킴벌리가 시니어에 주목하는 이유). ‘시니어가 자원이다’라는 슬로건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급격하게 고령화 사회로 뛰어가고 있는 한국 사회에 적절한 내용이다. 광고는 ‘액티브 시니어’라고 명명한 이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하고, 어린 세대는 그것을 역시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권유한다.

유한킴벌리에서 진행한 ‘우리 강산’이 CSR인 데 반해, 이번 시니어 캠페인은 CSV (Creating Shared Value. 공유가치창출)의 일환으로 보인다. 실제 시니어사업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고, 사회공헌도 함께 꾀하는 프로그램으로 구분돼 있다. 물론 일반 소비자들은 캠페인의 미묘한 차이를 뚜렷이 구분하지는 못한다.

게다가 새 캠페인은 크리넥스처럼 뒷받침해 줄 제품 없이, 오히려 새로운 사업영역 개척을 지원해야 하는 입장에 놓였다. 유일한 박사의 고귀한 삶과 유산, 착한 기업상의 대표로서 유한이라는 기업브랜드의 후광효과도 예전 같지 않다. 유한킴벌리 내부에서 CSR과 CSV로 구분한 것에 더해, 서로를 연결시킬 고리를 마련해야 하는 대목이다. 그래야 ‘시니어’ 캠페인도 사람들이 더욱 쉽게 이해하고, ‘우리 강산’과의 시너지효과가 생긴다.

 

박재항

이노션 마케팅본부장(이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