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대신 ‘깊이’ 택한 대한항공 광고
‘욕망’ 대신 ‘깊이’ 택한 대한항공 광고
  • 더피알 (thepr@the-pr.co.kr)
  • 승인 2013.03.1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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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항의 C.F.(Corporate File)

[더피알=박재항] 축구를 매우 좋아하는 고등학생 아들이 불쑥 물었다. “위대한 메시가 어떻게 농구를 하는 코비 브라이언트와 같은 광고에 나올 수 있는 거죠?”

광고업에 종사하는 아버지로서 일반적인 대답을 해주었다. “두 명 모두 축구와 농구, 자기가 뛰는 분야에서 최고니까, 둘을 함께 묶어서 다른 경쟁자들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걸 강조할 수 있겠지. 그런데 어느 제품 광고야?” 터키항공사 광고였다.

아들과 얘기를 주고받을 때만 하더라도 메시와 코비가 함께 출연한 그 광고를 보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2010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팀 선수들이 대거 출연해 화제가 됐던 CF와 그 뒤 주요한 글로벌 잡지들에서 본 일련의 터키항공 인쇄광고물들이 떠오르면서, 대략 목적과 내용이 그려졌다.

메시와 코비를 이기는 기내서비스는…

한 어린이가 비행기 캐빈으로 걸어 들어오다가 메시를 알아보고 깜짝 놀란다. 메시가 어린이에게 선물로 사인볼을 주려고 사인을 하려는 찰나, 뒤에서 누군가 어린이를 부른다. 코비 브라이언트가 엄지손가락으로 농구공을 돌리는 묘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어린이가 코비에게 달려가자 메시는 축구공으로 자리에 앉은 채 드리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코비 역시 공돌리기 보다 고난도의 재주를 선보인다.

 

▲ 메시와 코비를 등장시킨 터키항공 광고.

 

어린이의 호감을 사기 위한 두 슈퍼스타의 경쟁이 가열돼 트럼프 카드로 탑이나 풍차를 만드는 마술사와 같은 모습까지 보여준다. 그러나 정작 승자는 아이스크림을 가지고 온 승무원이 된다.

메시와 코비 같은 슈퍼스타들로 고객 이미지를 고급 승객으로 가져가고, 아이스크림과 그를 가지고 온 승무원으로 기내 서비스의 높은 품질을 전달하는 유머러스한 전개로 편안한 분위기까지 알리고 있는 것. 항공사 광고에서 보통 쓰이는 소재들이 총망라돼 있는 셈이다.
 
광고회사나 광고인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거쳐야 하는 업종들이 있다고 한다. 자주 언급되는 품목으로는 담배, 자동차, 항공사가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품질이나 서비스의 차이가 별로 크지 않다는 것이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제대로 맞힐 사람이 드문 제품과 서비스이다.

그래서 광고를 통해 경쟁자와 다른 감성적인 이미지를 심어줘야 하기 때문에 광고인에게는 도전으로 여겨지고, 그만큼 성과를 이룬다면 인정을 받게 된다.

전형적인 항공사 광고의 요소

항공사의 경우 ‘편안함’을 이야기하는 광고들이 많았다. 편수가 많아서 원하는 시간에 모신다는 일정의 편안함, 예약부터 수속까지 절차상의 편안함, 안락하게 모시는 기내서비스의 편안함 등 세분화되기는 하지만,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을 무색하게 하는 편안함을 많은 항공사들이 주요한 무기로 내세웠다.

편안함이란 큰 그릇에 ‘안전’ ‘정시’ ‘가격’ 등이 담겼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게 승무원. 특히 여성승무원이다. 거의 20년 전, 어느 교육 시간에 강사로 나간 선배가 이렇게 말한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무엇이든 숨어 있는 코드를 찾아야 하고, 알고 있어야 해. 항공사 광고에 왜 스튜어디스들이 꼭 나오는지 알아? 여행의 숨겨진 코드, 욕망이 바로 ‘섹스’이기 때문에 그런 거야.”

 

▲ 2008년‘미국, 어디까지 가봤니?’로부터 시작된 대한항공 캠페인은 전형적인 항공사 광고에서 탈피해 자기 나름의 시각과 방식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항공사로 자연스럽게 대한항공을 부각시켰다. 사진은 미국여행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은‘중부’ 편 광고 장면.

 

대한항공 광고에서 인상 깊고 기억나는 부분으로 많은 사람들이 좌석에서 잠든 승객에게 담요를 덮어주는 여성 승무원 얘기를 하곤 했다. 아시아나항공의 ‘아름다운 사람들’이란 슬로건도 원래의 의도대로 감성적인 부분으로까지 확장되지 못한 채, 여성 승무원의 외모에 치중돼 수용된다.

이에 더해 싱가포르 에어라인은 자사 여성 승무원의 유니폼이 항공사 유니폼 중에서 가장 섹시하다고 꼽혔다는 가십성 기사를 대놓고 자랑하기까지 했다. 재미있게 얘기할 요소가 많은 버진아틀랜틱 항공도 주력 광고에는 항상 슈퍼모델과 같은 여성 승무원들의 미모와 자태를 앞세우고 있다.

여성 승무원과 함께 대한항공 광고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오랜 세월 함께 했던 것이 바로 ‘우리의 날개’란 슬로건이었다. 원래 대한민국의 유일한 국적기로, 아시아나 출범 이후는 확고한 경쟁우위요소로 ‘우리의 날개’는 태극 마크와 함께 대한민국 대표 항공사로 대한항공의 이미지를 깊이 새겼다.

그리고 가끔 새로운 도시에 취항할 때마다 그를 기념하는 광고가 나오곤 했다. 그것도 해외에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대한민국의 자부심’과 연결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방식의 국민적 자부심, 곧 애국심을 자극하는 방식은 해외여행을 하는 국민들이 많아지고, 다민족이 어우러져 살며, 문화의 동시 향유가 이뤄지는 사회 변화에 비추면 고루해 보였다.

 

▲ 대한항공의 2008년‘미국, 어디까지 가봤니?’ 광고 캠페인.

2008년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로부터 시작된 대한항공의 캠페인은 그런 시대 변화를 제대로 반영했다. 단순하게 어디에 가봤다는 자체로 얘깃거리, 자랑거리가 되는 시대는 지났다. 겉만 보고 다니는 여행객에서 속살을 파헤쳐 자기 나름의 시각과 방식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항공사로 자연스럽게 대한항공을 부각시켰다.

 

‘취항도시(Destination)’를 소재로 한 광고 역시 항공사 광고의 대표적인 유형 중의 하나이다. 취항도시를 고지하는 수준을 넘어서,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가 문제다.

취항도시, 한 방, 그 이상을 향해

1983년 영국항공(British Airways)의 ‘맨해튼 착륙(Manhattan landing)’ 편은 취항도시를 소재로 한 대표적인 항공사 광고이다. 항공사 광고, 아니 20세기 광고의 최고 걸작 중의 하나로 지금도 회자된다. 그 광고에서 강조한 요소는 규모이다. 맨해튼 인구보다 많은 사람들이 매년 영국항공을 이용해 대서양을 오간다는 게 핵심 카피이다. 맨해튼이라는 상징 지역을 활용, 광고 효과와 비주얼도 스필버그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장대한 규모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한몫했다.

사실 1980년대 초·중반에 영화와 같은 대작 광고들이 많이 등장했다. 애플의 ‘1984’는 그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어쨌든 영국항공의 ‘맨해튼 착륙’은 방영되자마자 전설이 됐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워낙 성공적이어서 그런지, 후속 캠페인으로 연결되지는 않고 전설의 ‘한 방’으로만 남았다. 

미국으로부터 시작된 대한항공의 캠페인은 바로 위의 영국항공의 규모와는 다르게 깊이를 추구한다. 그리고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았다. 미국의 50개주를 모두 돌고, 이후 일본, 캐나다 그리고 한국까지 새로운 경험과 생각거리를 보여준 후 작년부터는 아프리카의 진면목을 선사하고 있다.

5년 이상 캠페인이 진행되면서, 항공사 광고의 새로운 스타일 유형을 대한항공이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의 틀을 글로벌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맞이하며 깨고, 일관성 있게 지속적으로 진행하면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본다. 스타일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박재항

이노션 마케팅본부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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