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인사’로 학교를 변화시키다
‘배꼽인사’로 학교를 변화시키다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3.07.08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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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라이브러리] 새로운 학교문화…서울윤중초등학교 고성욱 교장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살포시 포갠 두 손을 배꼽 위에 얹고 배시시 웃으며 인사하는 아이들. 그 앞으로 은발이 성성한 한 노신사가 ‘맞절’을 한다. 그렇게 한 여름 더위 속에서 20여분간 이어지던 인사는 아이들이 모두 학교를 떠난 후에야 비로소 마무리 된다. 계절이 추우나 더우나, 날씨가 궂으나 맑으나 한결같이 4년간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직접 등하굣길을 책임지는 서울윤중초등학교 고성욱 교장선생님(60). 햇볕에 그을린 까만 피부 위로 묻어나는 은근한 웃음은 근엄한 교장선생님이 아닌, 푸근한 할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게 했다.


[더피알=강미혜 기자] 캐주얼한 차림에 동그란 까만 뿔테를 한, 약간은 긴 머리의 고 선생님은 흡사 예술인의 모습과 닮았다. “예술하세요?”란 우문에 돌아온 현답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예술이지, 그보다 더한 예술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도 “혼자 있는 방에 에어컨 틀면 학생들에게도 미안하고 국가적으로도 낭비”라며 가만히 더위를 식히는 고성욱 선생님은 올해로 교편을 잡은 지 38년째다. 4년 전 윤중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부임하면서부터 시작된 아이들과의 등하굣길 ‘배꼽인사’는 학교 안의 낯익은 풍경이자 그의 일상이 된 지 오래.

낮은 자세로 아이들과 매일매일 눈을 맞추다 보니 그만큼 매일매일 더 가까워졌다. 이종혁 광운대 교수는 “고 선생님이 실천하시는 작은 소통이야말로 우리 아이들의 인성을 올바르게 키우는 참교육의 모델이 아닐까 생각한다”는 말로 소통라이브러리의 운을 뗐다.

이종혁 아이들의 등하교 시간에 맞춰 매일 인사하고, 일일이 안전을 케어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것도 4년씩이나. 언뜻 보면 큰일이 아닌 것 같지만, 막상 하려고 보면 결코 쉽지 않은 일일 텐데요.

고성욱 공식적으로 출장을 가거나 외부회의가 없는 한 거의 날마다 학생들과 얼굴을 보며 인사하고 안아줍니다. 오전 등굣길에 아침 8시부터 8시 40분까지, 오후 하굣길엔 저학년과 고학년 나뉘어 2~3차례 각각 20여분씩을요. 4년간 꾸준히 해온 덕분에 우리 아이들 어디 가서도 절대 뒤지지 않을 만큼 배꼽인사는 참 잘 합니다.(웃음) 4년 간 아이들을 매일 보다보니 이젠 전교생 얼굴이 눈에 훤히 들어와요. 이 녀석은 성격이 어떻고, 저 녀석은 누가 데리러 오고, 또다른 녀석은 동생과 매일 다닌다는 그런 소소한 것들이 말이죠.(웃음)

이종혁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교장선생님은 전체 조회에서나 뵈는 그런 어려운 분인데…. 어떻게 스스럼없이 아이들과 배꼽인사를 할 생각을 하셨어요?

고성욱 예전 평교사 시절부터 꼭 해보고 싶던 일이었어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나이가 많다고 해서, 선생님이라고 해서 그냥 인사를 받으려고만 하면 아이들과는 절대 소통할 수 없다고요. 소통은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나누어야 하는 것인데, 그러려면 먼저 서로를 마주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등하굣길 아이들과 직접 인사를 하기로 했고, 지금도 계속 하는 것입니다.

이종혁 4년간 매일 봤으니 교장선생님과 아이들 간의 친밀도도 남다를 것 같습니다.

고성욱 제가 지난주 손을 다쳤어요. 상처가 깊이 나서 꿰맸기 때문에 통증이 꽤 심했어요. 그래서 일주일 정도 교문 앞에 못 서있었는데, 어느 날 지나가던 1~2학년생들이 ‘교장선생님, 어디 갔었어요? 왜 우리 보러 안오셨어요?’ 하고 아, 글쎄 따지는 게 아닙니까.(웃음) 그런 상황 속에서 묻어나는 따뜻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종혁 사회적 소통이란 건 큰 게 아니라 선생님께서 하시는 이런 작은 행동들, 실천들, 변화들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선생님께선 왠지 조회시간이나 졸업식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전혀 다른 스타일로 커뮤니케이션하실 것 같으세요.

고성욱 기본적으로 원고를 읽고 이야기 하는 건 안합니다. 아이들과 말을 하고 메시지를 전하고 싶지, 글을 읽고 싶은 건 아니니까요. 사람들은 흔히 지루한 말을 들으면 ‘꼭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같은 얘기를 하네’라고 합니다. 안해도 좋을 말, 답답한 말이란 뉘앙스를 풍기는 것이죠. 저는 실제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긴 하지만, 남들이 잘 듣지도 않고 피부에 와닿지도 않는 원론적인 말을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우리학교는 조회도 일절 하지 않아요.

이종혁 조회를 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라도?

고성욱 아이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초등학교 1학년생과 6학년생의 수준은 천지차이에요. 1학년들에게 맞춰 훈시를 하게 되면 6학년 학생들은 당장 꼰대같은 소리라며 지겨워하고, 6학년생들 눈높이에 맞춰 얘길 하다 보면 1학년 아이들은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한 채 멍하니 서있어요. 나란히 세워놓고 똑같은 얘길 하는 건 한쪽은 무조건 포기하는 것과 같은 것이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메시지를 제대로 전할 수 없는 형식적인 조회는 걷어내자 생각했고, 대신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각 학년, 각 학급의 담임선생님들을 통해 전합니다.

이종혁 말씀을 듣다보니 학교가 아이들 중심으로 변화하는 데 있어서 행정가로서 교장선생님의 역할이 참 크다고 생각됩니다.

고성욱 집단 사이즈에 따라 리더의 역할이 다릅니다. 개별 학급이 변하는 데에 담임선생님의 역할이 중요하듯이, 학교 전체가 변하려면 교장이 변해야 합니다. 그런데 일선 학교를 보면 조금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동업자 입장에서 얘기하기 어려운 부분이긴 합니다만, 우리나라 학교 교장들의 문제는 창의적이지 않다는 점에 있어요. 실제 많은 학교장들이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다른 학교의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을 똑같이 적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이 좋게 보면 벤치마킹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개별 학교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관행화된 학교경영이에요. 우리 교육계는 이런 관행들, 습관들을 깨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종혁 교육계의 관행을 깨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요, 선생님께선 등하굣길 인사 외에도 학교 내 관행을 깨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하고 계신가요?

고성욱 제가 4년 전 학교에 부임하면서 선생님들과 약속 하나를 했어요. ‘첫 해엔 학교가 해오던 관습이나 전통들을 절대 터치하지 않겠다, 하지만 과도한 행사는 지양한다’고 말이죠. 어떤 행사를 한다고 하면, 왜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묻고 담당선생님이 저를 설득시키면 행사를 진행시키고 그렇지 않으면 안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학교의 기본, 선생님의 원칙으로 돌아가서 교육과정에 충실하자는 취지에서였어요. 이러저러한 이벤트에 의한 학생과 선생님들의 피로도를 줄이고, 학교의 기본적인 것들을 실천해나갈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었거든요.

고 선생님의 이런 교육철학은 서울윤중초등학교의 문화를 바꿔놓았다. 우선 오전시간이 심플해졌다. 불필요한 각종 행사 대신 독서시간으로 고정됐다. 매일 아침 8시40분부터 9시까지 전교생이 온전히 책읽기에만 집중한다. 독서시간 4가지 원칙도 있다. 첫째, 날마다 읽는다. 둘째, 누구나 읽는다. 셋째,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 넷째, 그냥 읽기만 한다.

고 선생님은 “독서시간엔 밥 짓는 분들을 제외하곤 학교 전체가 독서로 마비된다. 선생님들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면서 “우리 아이들이 책에서 멀어지는 가장 큰 요인이 독후감인데, 그런 부담을 없애고자 그냥 읽기만 한다는 원칙을 넣었다”고 설명했다. 글이라는 틀로 독서하는 습관을 묶어두지 않으니, 책읽기에 대한 아이들의 몰입도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와 함께 졸업식이나 입학식과 같은 큰 행사에서도 학교 특유의 ‘고루함’이 사라졌다. 지난해 졸업식엔 선생님들이 일명 ‘티쳐스밴드’를 결성해 아이들의 졸업을 축하했으며, 올해 입학식에선 1학년 각 반 담임선생님들의 인사말과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모두 담은 동영상을 제작해 환영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이런 선생님들의 노력에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들까지도 엄청난 호응을 보내오고 있다.

고 선생님은 “다른 건 몰라도 우리학교에 헌신하는 선생님들이 많다는 점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그 덕분인지 올해 학교 입학생이 25년 만에 처음으로 100명을 넘어섰다”고 뿌듯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종혁 틀 속에 있던 학교가 여러 가지 작은 변화들로 틀 밖으로 벗어나는 느낌입니다. 더욱이 이런 소통들이 조그마한 시골학교가 아닌 서울 도심 속 공립학교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더 특별하게 다가오고요. 초등학교 시절의 교육은 한 사람의 사회성을 형성하는 소통과 교감 측면에서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일 수도 있는데요, 선생님께서 하시는 아이들과의 인간적 교감이 지금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는 학교 폭력 개선에도 상당히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성욱 모든 폭력의 근원은 소통되지 않고 소외되는 것에서 생겨납니다. 우리 아이들의 학교 내 왕따, 폭력 문제도 결국은 내면의 소외감 때문이 아닐까요? 그런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선 학교도 변해야 하고 선생님들도, 또 학부모들도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과도한 경쟁을 경계해야합니다. 지금 우리 교육계를 보면 지나친 경쟁 분위기가 팽배해 있어요. 한 예로 아이가 ‘엄마, 나 학교에서 100점 맞았어’ 하면, 엄마들은 대개 ‘어, 그래 잘했어’ 하다가도 ‘그런데 너희 반에서 100점 맞은 애는 너 말고 몇 명이니?’하고 물어봅니다. 은연중에 아이들의 경쟁심리를 부추기는 것이죠. 이런 과도한 경쟁이 아이들의 심적 스트레스를 불러오고 학교 폭력으로 표출되기도 합니다.

이종혁 실제 우리 사회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인간적 소통을 하려 하기보단 ‘국제중학교 보내서 명문고 보내야지’ 하는 등의 경쟁심리가 깔려 있습니다. 학교란 공간에서부터 엘리트 중심으로 가는 이런 교육 분위기, 어떻게 보십니까?

고성욱 어떤 형태로든지 사회 집단에는 지적 능력, 경제적 수준 차가 있기 마련입니다. 또 사회가 발전해 나가려면 일정 부분 우수한 인재를 양성해 나가는 것도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차별적 교육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진 않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엘리트교육이란 걸 너무 통제하고 과도하게 견제를 해서, 실제보다 더 귀족적인 모양새로 만들어버리는 사회 분위기가 있어요. 특히 이름의 문제가 큽니다. 국제중학교, 외국어고등학교, 과학고등학교 등 드물게 몇 개의 이름을 갖는 학교들이 일종의 선민의식을 갖게 합니다. 자연히 선택받기 위해 과도한 경쟁이 일어나는 것이고요.

이종혁 선생님께서 아이들과의 ‘작은 소통’을 위해 앞으로 또 계획하시는 것들이 있나요?

고성욱 특별한 계획이라기보다 그저 학교만이 할 수 있고, 학교가 해야만 하는 고유한 성질의 것들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습니다. 물론 제가 하는, 또 하려는 일들이 누구에게나 꼭 맞는 일이라고는 볼 수 없겠지요.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원래의 것 위로 무언가가 자꾸 덧씌워져 본래 성향이 없어져버리는 것처럼, 교육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끊임없이 학교를 돌아보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모습으로 변화시켜나가고 싶은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시도들을 삐딱하다고 바라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우리학교 같은 학교가 한 군데 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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