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산에 숨겨진 PR코드
만인산에 숨겨진 PR코드
  • 신인섭 중앙대학원 초빙 교수 (admin@the-pr.co.kr)
  • 승인 2013.07.19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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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섭의 PR 히스토리

[더피알=신인섭] 2009년 8월 23일 11:00시 KBS TV ‘진품명품’ 프로그램에는 여태껏 보지 못한 그야말로 ‘진품’이 등장했다. 만인산이었다. 지금은 북한 땅인 평안북도 초산(楚山) 고을 원님이던 부사(府使) 이(李)공이 선정을 베푼 데에 대해 주민이 감사하는 뜻의 표시로 드린 전별 선물이었다. 놀랍게도 평가한 값은 1억500만원이었다.

이름이 나타내듯 만인산(萬人傘)이란, 우산 모양으로 만든 일종의 송덕비(頌德碑)다. 원님의 선정을 감사하기 위해 여러 사람의 이름을 적어 만든 비단우산이다.

▲ 민속박물관에 있는 만인산(萬人傘). 이름 그대로 우산 모양으로 만든 일종의 송덕비로, 원님의 선정을 감사하기 위해 여러 사람의 이름을 적어 만든 비단우산이다.

사진에 보이는 만인산을 위에서 보면 우산대가 있는 가운데는 ‘만인산 초산부사 행이공(萬人傘楚山府使行李公)’이라고 쓴 한문이 보인다. 떠나는 초산 부사 이공에게 드리는 만인산이라는 뜻일 것이다. 자세히 보면 우산 둘레에는 다섯줄로 둘러가며 가득히 쓴 글자가 있다. 이는 사람의 이름으로, 떠난 이부사에게 감사하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생각된다.

아울러 노란 색의 우산 뿐 아니라 연두색의 테두리에도 이름이 적혀 있다. 그리고 늘어진 줄이 여섯 개 보인다. 대단한 정성이 들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천인산이라고도 부른 이 만인산이란 수많은 사람이라는 뜻에서 나온 숫자이다. 초산 이공의 만인산은 고종 때 초산 부사를 지낸 이만기라는 사람의 소장품이다.

경복궁 안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에는 또 다른 만인산이 전시돼 있는데 어진 정치를 한 관원이 이직할 때에 선물로서 뿐만 아니라 PR의 도구로서도 이용됐다. 지방의 훌륭한 관리의 이름을 두드러지게 쓰고, 그의 선정을 증명하는 여러 시민의 이름이 적힌 만인산을 높이 들고 경복궁 앞을 돌아다녔던 것.

명성PR의 수단이었던 ‘만인산 행렬’

조선시대 경복궁 앞에서 광화문까지는 이른바 육조(6曹)거리로 이조(吏曹), 호조(戶曹), 예조(禮曹), 병조(兵曹), 형조(刑曹), 공조(工曹)의 여섯 정부부처가 있는 거리였다. 아울러 영의정과 좌우의정, 오늘날의 서울시, 법을 다루던 사헌부 등도 이 거리에 있었다. 아마도 그 당시 한국에서 가장 크고 넓은 거리였을 것이다.

따라서 정치의 중심가였으며 지방 관리의 선정을 PR하기에는 가장 좋은 장소였다. 그래서 만인산을 들고 북을 치고 행진을 하며 돌아다니는 행렬이 줄을 이었고, 이는 서울 장안의 구경거리였다. 정부도 이 만인산 행렬을 장려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다만 만사가 그렇듯이 만인산 행렬도 때로는 잘못 이용되기도 한 듯한데, 사실과 다르거나 또는 과대한 행사로서 인식되기도 한 연유에서다.

역사란 흥미로운 일면이 있다. 동일한 지역, 장소이건만 시대에 따라 각기 전혀 다른 옷을 입는다. 한일합병 이후 한국 최대의 건물로서 경복궁을 완전히 가리고 만세불멸이라고 자랑하던 일본제국주의 위용을 떨치던 조선총독부 건물은 없어졌다. 사라졌던 광화문이 제자리를 다시 찾았다. 경복궁은 훤히 들여다 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 경복궁 앞에는 정부 종합청사가 들어섰다.

얼마 전까지도 광화문 동쪽 거리에는 문화관광체육부가 있었고 옆에는 미국 대사관이 있으며 또한 방송통신위원회가 있다. 그리고 세종로 네거리, 교보빌딩 옆에는 고종 50세 등위 40주년을 기념하는 비각(碑閣)이 있다. 세종로는 1960년 4월 19일 학생혁명으로 100여명의 젊은 대학생이 목숨을 잃은 ‘피의 화요일’의 현장이다. 그 결과 자유당 정권은 무너졌고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후 하와이로 망명길에 올랐다.

시대에 따라 경복궁앞 거리는 육조거리(개화기), 광화문통(일제시대) 그리고 세종로(광복 이후)로 이름이 바뀌었고, 세종로 네거리에 있는 비각을 제외하곤 옛날 건물은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지금도 경복궁 뒤에는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가 위치하고 있다. 여러 정부부처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기는 하나 여전히 정부종합청사가 광화문 바로 앞에 우뚝 서 있다.

이렇게 볼 때 100여 년 전까지도 힘의 핵심이던 육조거리를 누비던 만인산 행렬은 현대적 의미에서 보면 대단한 명성 PR을 위한 행사였음은 틀림없다.
 



신인섭 교수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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